[스케치북] 수동에서 자동변속기로, 독일도 변하고 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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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04 12:15
[스케치북] 수동에서 자동변속기로, 독일도 변하고 있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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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01.04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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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일이다. 독일에 거주하게 된 한국 여성은 독일인 중고차 딜러에게 차를 구입하기로 했다. 딜러는 어떤 차를 원하느냐고 물었고, 여성은 경차급 자동변속기 모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순간 딜러는 매우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하는 기간에 조건에 맞는 차를 구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이다. 결국 여성은 인터넷을 통해 겨우 매물을 발견했고, 거주지에서 100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직접 찾아가 한 달 반 만에 원하는 차를 살 수 있었다.

 

유럽은 수동변속기 모델이 많다. 특히 C세그먼트(아반떼급) 이하의 경우 자동변속기가 달린 차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독일은 큰 차들이 많은 편이어서 자동변속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태리와 프랑스 등 작은 차들의 천국인 나라에서는 대부분의 차량에 수동변속기가 달려 있다.

그런데 최근에는 이 같은 수동변속기 중심 구조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역에서 자동변속기 차량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 자동변속기 늘어나는 이유는 '도심 집중화와 노령화'

시장조사기관인 DAT에 따르면 1999년 독일 내 자동변속기를 장착한 승용차의 비율은 10% 수준에 불과했다. 그런데 2014년 조사에서는 25%까지 늘었다. 15년 만에 2.5배 증가한 것이다. 변화가 느린 유럽, 그것도 독일에서의 이렇게 빠르게 자동변속기 비율이 늘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이다. 참고로 미국의 경우 수동변속기 장착 비중은 3~4%, 국내는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변하는 것일까. 독일 자동차 클럽 아데아체의 한 전문가는 첫 번째 이유로 '도심 집중화'를 꼽았다. 사람들이 점점 도시로 생활의 터전을 옮기고 있는데, 차량 정체가 워낙 심해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럴 때 클러치를 밟고 단수를 바꾸는 등 일일이 변속기를 조작해야해 번거롭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운전자의 평균 연령층이 높아졌다는 것이다. 장년층 이상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운전 부담이 덜한 자동변속기를 선택한다는 것이다.

세 번째는 이유는 자동변속기의 연비가 좋아졌다는 것이다. 6단에서 8단, 최근엔 9단 자동변속기까지 달리면서 효율이 꽤 좋아졌다. 반면, 수동변속기의 경우 적절한 변속 시점을 찾아가며 운전을 해야 연비를 줄일 수 있는데, 능숙하지 않은 운전자들에겐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네 번째는 자율주행차 및 전기차 등 미래 자동차에 자동변속기가 장착되기 때문이다. 실용화 단계에 들어선 부분자율주행 시스템의 경우, 정체되는 고속도로에서 부분적으로 차가 알아서 운전한다. 이때 가다 서기를 반복하게 되고, 자동차는 스스로 기어변경을 해야 한다. 만약 수동변속기라면 사람이 해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는 자율주행이라 할 수 없다. 또,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도 개발단계에서부터 수동 보다는 자동변속기에 맞춰 만들어졌다. 

# 그렇다면 수동변속기 완전히 사라지는 걸까?

이처럼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고 기술이 발전하면서 수동변속기 천국이던 유럽도 자연스럽게 자동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한 독일 전문가는 20년 후쯤 되면 수동변속기와 자동변속기의 독일 내 비율이 적절하게 균형을 잡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자동과 수동이 반반 정도의 비율, 혹은 6:4 정도로 역전될 수는 있겠지만, 큰 치우침 없이 이 수준이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이유는 수동변속기만의 장점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수동변속기는 자동에 비해 저렴해 가격 경쟁력이 중요한 소형차 등에 유리하다. 또, 무게도 가벼워 기어 변속에 능한 운전자 입장에서는 연료효율을 높이는 데도 좋다. 무엇보다 유럽에는 운전의 재미를 찾는 운전자들이 굉장히 많다. 이 수요가 존재하는 한 수동변속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 업체도 PDK 같은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전면에 배치하며 변화를 꾀하고 있지만, GT4와 같은 오로지 수동변속기만 있는 원초적 차를 내놓으면서 전통적 팬들의 마음을 달래고 있다. 이들에겐 다단 자동변속기가 주는 안락함보다는 내가 직접 변속하며 느끼는 다이나믹한 운전의 즐거움이 더 중요하다.

또, 도심으로 사람들이 몰리고 있다고는 해도 독일의 경우 여전히 시골 및 인구 2만명 전후의 작은 도시에 사는 사람이 전체의 1/3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곳은 대체로 정체 구간이 적고 운전하기 좋은 외곽도로가 많아 수동변속기 차량이라고 해서 특별히 불편할건 없겠다. 

분명한 것은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에서는 자동변속기 수요가 점점 증가하고 있으며, 앞으로 그 비중이 더욱 늘어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수동 변속기 장점을 알고 있는 유럽인들이 완전히 이를 포기하는 일도 없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유럽인들의 손은 기어 노브를 쥐고 변속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일 것이다. 물론 완전 자율주행 시대가 일상화된 이후에는 모를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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