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폭스바겐 사태, 현대기아차 소형 디젤까지 사라진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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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1.26 15:49
[기자수첩] 폭스바겐 사태, 현대기아차 소형 디젤까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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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는 지난 9월 미국의 폭스바겐의 디젤사태 이후 국내에서도 리콜을 실시하기 위해 이 차들의 배출가스를 다각도로 조사해왔다. 

시험 결과는 꽤 심각했다. 실험실에서 시험한 결과에 비해 일반 도로에서의 NOx(질소산화물)가 무려 31배나 높았던 것이다.

실험실에서는 좋은 결과가 나오고 도로에선 친환경 기능이 정지 되도록 꾸며진 ‘속임수 프로그램’이 들어 있는게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어떻게 해서 실험실에서만 좋은 결과가 나오는지 쉽게 알아채기 어려웠다. 환경부 연구관들은 그 원인을 알기 위해 여러가지 시험을 거듭해왔고, 비로소 그 결과를 발표했다. 

환경부 국립환경과학원의 엄명도 연구관은 “미국서 알려진 것과 달리 핸들 조작을 기준으로 실험 모드를 판단해 배출가스가 더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면서 “그보다는 훨씬 고도의 방법을 이용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 실험을 거듭할수록 질소산화물 배출량이 큰 폭으로 증가

26일 환경부에 따르면 폭스바겐은 이 차들이 실험실에서 첫번째 실험할때는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을 정상 작동 시키다가 일정거리 이상 주행하면 EGR이 점차 작동되지 않도록 꼼수를 부렸다. 따라서 실험을 5회까지 반복한 후에는 기준치 30배 이상의 NOx가 뿜어져 나오게 된다는게 환경부의 결론이다. 

에어컨을 가동했을때도 EGR의 작동을 크게 줄여 NOx의 배출량이 크게 늘어난 점도 확인 됐다. 이 부분은 앞서 2011년 현대차가 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이다.  

▲ '인증모드'외에 에어컨을 켜거나 고속도로 모드, 열간시동모드에서는 질소산화물이 크게 증가한다

환경부는 판매된 폭스바겐 티구안 등 15개 차종을 판매정지명령하고, 12만대 이상을 리콜하며 과징금은 141억원을 부과하는 등 강경한 조치를 취했다. 또한 제작차 인증취소 과정도 개시했다. 

# 현대차는 비슷한 사안에 '시정 권고'

EGR을 조작해 배출가스 시험을 통과하고, 일상 주행에선 이 친환경 장치가 작동되지 않을 수 있도록 조작한건 사실 현대차 더 먼저였다. 

앞서 지난 2011년 환경부는 현대기아차그룹이 현대차 투싼, 싼타페, 베라크루즈 및 기아차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 12개 차종에 특수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넣어 기준치의 11배가 넘는 NOx가 나왔다면서 시정 권고를 했다. 이들 차종에는 에어컨을 켰을때나 흡기 온도가 높을때 EGR 밸브가 작동되지 않는 기능이 더해져 있었다. 눈에 보이는 디젤 분진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환경부에 따르면 당시 현대차는 ‘에어컨을 켜고 시험하는 것은 규정에 나와있지 않으니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논리로 항변했다. 난처해진 환경부는 법규를 어긴건 아니라면서도, 실제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도덕적인 책임을 물어 해당 차종을 수리할 것을 ‘권고’ 했다. 리콜이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운전자들은 권고를 따르지 않고 그대로 차를 운행했다. 수리하면 환경 오염물질은 줄일 수 있지만 출력이 떨어진다는 점 때문이었다.

▲ 현대차 구형 싼타페를 실험실내에 넣고 배출가스를 측정하고 있다.

또, 당시 환경부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확대되면 미국의 도요타 급발진 사태처럼 될 수 있으니 언론이 품질 문제로 몰아가지 않았으면 한다”는 입장을 수차례 밝혔다. 이듬해 유사한 상황이 몇차례 더 벌어지자 국토부와 산업부, 환경부는  에어컨을 켜는 모드와 언덕을 올라가는 모드, 고속 주행 등 부하 상황을 더한 ‘5사이클 모드’를 도입하면서 에어컨을 켠 상태와 부하 주행을 의무 측정하도록 규정을 변경했다. 

# 실 도로 주행시험이 가져올 것들…디젤 소형차 사라진다

모든건 실험실 모의 주행이 실제 주행상황과 크게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다. 그저 기계적으로 만들어지던 시대에는 실험실에서 모사한 도로 주행 모드가 실제 도로 환경을 거의 반영했지만 요즘의 전자제어 엔진은 상황이 전혀 다르다.

흡배기 및 압축과 점화 타이밍 등 모든 것을 세밀하게 제어할 수 있는 전자제어 엔진이 대중화되자 제조사들은 자동차의 연비와 배출가스를 실험실 주행 모드에 최적화했다. 특히 디젤 엔진의 경우 문제가 심각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너무나 광범위하게 퍼진 제조사들의 도덕적해이로 인해 실험실 주행과 실 도로 주행에서의 격차가 점차 크게 벌어지게 됐고 심지어 폭스바겐처럼 '이 정도면 속임수'라고 생각하게 되는 지점까지 왔다. 

 실제 도로를 달리며 배출가스를 측정할 수 있는 RDE 배출가스 측정 장비

이같은 문제에 대응하고자 유럽(EU)에선 이미 수년전부터 엄격한 측정 방식을 추가하기로 했다. 2017년 9월부터 RDE(Realworld Driving Emission)을 기준으로 환경 규제를 시행하기로 했고 이번 폭스바겐 사태 이후 규제 시점을 앞당기겠다는 입장이다. 배출가스 규제치도 실험실의 2배 이내로 강경해졌다. 우리나라 정부도 한-EU FTA로 인한 통상압력 등을 고려해 EU와 동일한 규제를 동일한 시점에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현재 LNT(희박질소트랩)를 이용하는 자동차 중 이 규정에 부합되는 차는 단 한대도 없다. 가장 적은게 3배 정도다. 

선택적촉매방식(SCR)을 더하면 통과할 수 있지만 문제는 이 시스템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다는 점이다. 차량 설계를 완전히 바꿔야 하고 가격 또한 크게 오른다. 가솔린 차와의 가격차이가 수백만원에서 많게는 천만원까지 벌어지게 된다. 수입 디젤차의 경우 푸조 시트로엥 등은 전차종에 선택적촉매방식(SCR)을 적극 활용해 왔고 폭스바겐도 앞으로는 전 차종에 SCR을 이용하기로 했다. BMW 등 독일제조사들도 문제를 안고 있지만 가격이 비싼 프리미엄 차들의 경우 SCR의 도입으로 인한 가격 인상폭을 최소화 할 수 있다. 

문제는 국산차 제조사다. 현대차가 주력으로 내놓고 있는 2.2리터급 이하 디젤엔진들은 모두 SCR이 아닌 LNT만을 이용하고 있다. 따라서 현행 현대차 투싼, 싼타페 등 주력 디젤 차종과 기아차 스포티지, 쏘렌토, 카니발 등은 내후년부터 이대로는 판매할 수 없게 된다. 그랜저 디젤이나 내년에 출시할 기아 K7 디젤도 LNT만으로는 실 주행 테스트를 통과 할 수 없다.

국립환경과학원 교통환경연구소 엄명도 연구관은 "제조사들이 그동안 차값이 올라간다면서 법규만 간신히 맞추는 정도였는데, 이제는 그렇게는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유럽 자동차 회사들이 클린 디젤이라는 표현을 내세워 왔는데, 가솔린에 비해 NOx가 10배, 미세먼지(PM)가 직분사가솔린에 비해서도 5배 이상 나오는 엔진에 '클린'이라는 말을 붙이는건 옳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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