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시승기] 혼다 NSX, 단 2바퀴..."이대로 도망가고 싶다"
  • 일본 도치기=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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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10.30 15:46
[단박시승기] 혼다 NSX, 단 2바퀴..."이대로 도망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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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치기현에 위치한 혼다 본사 R&D센터. 4km에 달하는 거대한 고속 주회로의 위용을 보는것 까지는 좋았는데, 불과 2바퀴만 돌 수 있다고 해서 실망했다. 짧은건 둘째치고, 이 차의 가장 중요한 장점은 슈퍼핸들링(SH-AWD)이 아니던가. 고속 주회로는 오로지 차선 변경 정도 밖에 테스트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번 2015 도쿄모터쇼에서 가장 중요한 모델을 남보다 하루 먼저 타본다는 점은 여전히 들뜬 기분이 들게 했다.

사실 NSX는 이미 제네바, 프랑크푸르트모터쇼에도 수년전부터 조금씩 공개돼 왔다. 그 콘셉트카부터 양산차까지 두루 봐온데다 심지어 영화속 아이언맨도 이 차를 탈 정도니 이젠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햇빛 아래서 보는 NSX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그동안 모터쇼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비현실적인 느낌을 줬다. 더욱 낮고, 더욱 넓은 이미지로 마치 람보르기니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 차가 거리에 돌아다니기 시작하면 아마 그 자체로 혼다의 브랜드 이미지가 크게 상승할게 분명해 보인다.

어큐라 버전의 NSX. 혼다버전은 우핸들이다. 

우측 통행 국가를 위한 좌핸들 버전과 일본, 영국, 호주 기자들을 위한 우핸들 버전이 있었다. 왼쪽 핸들 버전은 핸들을 비롯한 실내 대부분이 카본으로 둘러쳐져 있었고, 우핸들 버전은 그보다는 조금 단촐한 느낌이었다. 

시트 포지션은 바닥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극도로 낮지만 문이 열리는 부위가 넓어 타고 내리는데 어려움은 없다. 실내에 들어서면 기존에 타본 어떤 스포츠카와도 비슷하지 않은 독특한 인테리어로 인해 신선하게 느껴진다. 둥근 네모에 가까운 스티어링휠부터 모든 것이 낯설다.

M/D 버튼을 눌러 출발하도록 만들어진 자동변속 버튼은 혼다 레전드 하이브리드에도 이미 장착돼 있지만 국내는 아직 도입되지 않아 더 독특하게 보인다. 슈퍼카에 가까운 스포츠카임에도 불구하고 전측방 시야가 모두 좋고 머리공간도 매우 여유로워 기분이 상쾌해진다. 지향하는 방향이 좀 다른셈이다. 

 

# 달려라, 슈퍼카

초반에는 전기모터만의 힘으로 내달렸다. 아무 소리없이 적막 속에서 가속해 시속 60km/h까지 쭉 치고 나간다. 뒷바퀴는 리어 미드십 엔진과 연결된 모터, 양쪽 앞바퀴에는 36마력의 전기모터가 각각 한개씩 달려있다. 그래서 전기모드에선 전륜구동으로 출발한다.

앞바퀴의 양쪽 모터 움직임은 똑똑하다. 코너링을 하거나 전후 구동력 배분을 할때 각각의 바퀴가 적절한 대응을 해서 4륜구동을 구성한다. 그래서 이 차는 쉽게 미끄러뜨리거나 슬립을 일으키는게 쉽지 않다. 

서킷 중간에서 가속페달을 꾹 밟자 마치 괴물이 울부짖는 것같은 소리가 실내에 울려퍼진다. 이전까지 공백속에서 가속되다 갑자기 소리가 터져 나오면서 전혀 다른 세계에 돌입한다. 우왓 하는 외마디 소리와 함께 머리가 젖혀진다. 놀라운 느낌인건 물론이다. 하지만 시속 100km까지를 3초 초반에 끊는 자동차의 가속감은 이 정도가 당연하다고 생각된다. 

그보다 더욱 기묘한 느낌이 드는건 혼다가 말하는 제로-딜레이(Zero Delay) 때문이다. 운전자는 느끼지 못할테지만 이전까지 가솔린 엔진 자동차는 사실 꽤 긴 과정을 거쳐 가속하곤 했다. 가속페달을 밟으면 상황에 맞춰 적절한 공기를 더 흡입, 연료를 더 분사하고, RPM을 높이고서야 서서히 힘이 높아진다. 게다가 기어도 한단 낮추고, 힘은 변속기를 지나 프로펠러샤프트와 디퍼런셜을 지난 후에야 가속이 이뤄진다. 운전자 누구나 익숙해져, 느끼지 못하는 이 미세한 지연이 NSX의 가속에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전기 스위치를 켜듯 팟! 하고 가속돼 버린다. 이어 DCT 9단 변속기는 팟팟팟! 하고 순간적인 느낌으로  등을 두들겨 준다. 그런 점이 맞물려 마치 만화 영화속 번개호를 운전하는 것처럼 비현실적인 가속으로 느껴지고 만다. 

혼다 NSX의 파워트레인. 왼쪽이 앞이다. 

그런데 이 느낌은 그저 딱 5초 정도만 느껴졌다. 순식간에 시속 190km까지 치닫더니 갑자기 가속을 멈췄다. 옆자리에 앉은 혼다 직원은 “이 차는 일본 시장 전용으로, 속도 제한이 돼 있어서 그 이상 속도를 내지 못하게 돼 있습니다”라고 매우 친절하게 말했다. 그게 뭐야! 잠시 불만을 표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아 불쌍한 일본인들, 다행히 해외판에는 이런 제약이 없다고 했다. 

 

# 조용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압도하는 스포츠카

낮은 RPM에서는 사운드가 너무 적다. 아니 저속에선 적막 그 자체다. 아마 시내에서 얼토당토 않은 배기음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자신을 과시하려는 타입이라면 실망할지 모른다. 평소에는 부드럽게, 필요한 경우에만 박진감을 즐기는 운전자들만 겨냥한 차다.

뒤쪽에서 들리는 3.5 리터 V6 트윈 터보 엔진 사운드는 ‘V6로 어떻게 이런 소리가 만들어지는걸까’ 궁금할 정도로 호쾌하다. 진동은 극도로 억제됐다. V6이긴 하지만 실린더 각을 양쪽으로 75도까지 넓게 벌렸고, 오일팬 없는 드라이섬프 방식을 채택해 전체 엔진 높이를 낮췄다. 

혼다가 자체 제작한 엔진과 자체 제작한 9단 듀얼클러치변속기 사이에는 전기 모터가 내장 돼 이것만으로도 최대 출력 500마력, 최대 토크 56.1kg-m를 낸다. 앞바퀴에는 36ps의 모터가 좌우에 하나씩 내장 돼있어 시스템 전체에서는 573마력 / 65.9kg-m를 발휘한다. 비슷한 가격의 경쟁모델들에 비해 힘과 응답성이 좋다. 

알루미늄 합금 스페이스프레임과 초고장력 강판으로 만들어진 차체로 인해 굉장히 가벼울거라 예상했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더하느라 무게는 1725kg까지 늘었다. 보통의 슈퍼카보다 조금 무겁다. 

급가속을 하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급감속을 하는 경우도 딜레이가 거의 없다. 브레이크 패달에 발을 대는 순간 브레이크 패드가 디스크에 닿는 것보다 더 빨리 전기모터가 발전기로 작동하며 차를 감속시키기 때문이다. 핸들의 조향감도 극도로 예리하다. 이 모든게 제로-딜레이라는 철학에 맞춰진 설계다. 짧은 순간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어느덧 두바퀴를 모두 돌았다. 이렇게 재미있는 자동차를 단 두바퀴만 태우다니, 차라리 경험하지 않는 것만 못했다. 이대로 차를 몰고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었다. 

▲ 우핸들 NSX를 운전해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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