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 가다] 미국 LA 피터슨 박물관...이것이 개인 박물관의 '클래스'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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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7.30 07:00
[현장에 가다] 미국 LA 피터슨 박물관...이것이 개인 박물관의 '클래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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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자동차 생산이 세계 5위, 국내 브랜드가 세계 4위로 올라섰습니다. 그만큼 자동차가 경제나 생활에 중요하게 자리잡고 있는 셈이죠. 그런데 정작 자동차에 대한 지식은 부족한게 현실입니다. 국민을 위한 지식 정보 제공에 소홀했기 때문입니다. 세계의 자동차업체들이나 단체들은 박물관이나 전시장을 짓고 다양하고 기발한 방법으로 정보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모터그래프 기자들이 세계의 자동차 박물관과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직접 경험한 이야기들을 전달해드립니다. 

▲ 피터슨박물관 건물의 외관.

 

미국 LA에는 한국인 교민들과 여행객들이 정말 많지만, 그곳에 살면서도 서부 최대 자동차 박물관인 피터슨박물관(Petersen Automotive Museum)을 모르는 이들이 많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너무나 큰 땅덩어리로 인해 말, 마차, 오토바이, 자동차 같은 다양한 탈것들과 역사를 같이 했다. 차 없이는 생활하는게 불가능한게 미국이고, 그러다보니 전국민이 차에 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곳곳에 크고 작은 자동차박물관이 생겨났다.  

총 3층으로 이뤄진 이 박물관은 1층을 실제 70년대 미국과 같이 꾸며놨고 2층은 다양한 자동차들을 콘셉트에 맞게 꾸몄고 3층은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었다. 2층 주제관은 주기적으로 주제가 바뀐다.

150여 개의 차종이 이곳에 있는데 이 차들 각각에는 다양한 스토리가 담겨 있었다. 차종이 너무 많으니 몇 가지 주요 관람 포인트만 설명해보려한다. 

# 주차장 - 그린 몬스터 초음속 자동차

주차장에서부터 로켓같이 생긴 자동차가 위용을 자랑한다.  ‘그린 몬스터’라면서 왜 빨간색이냐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 차는 기록을 세울때까지 여러대가 만들어졌고 당초 초기 모델들이 초녹색이었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 그린몬스터.

이 차를 만들고 운전한 사람은 아트아폰스(Art Arfons)라는 사람이다. 2차대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52년에 드래그 레이스(drag race, 미국에서 인기 있는 모터 경주의 한 형태)를 위한 자동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시속 137km 정도의 속도밖에 내지 못했다. 이후 거의 10년간 여러 가지 자동차엔진, 프로펠러 비행기 엔진을 이용해가면서 속도를 향상시켰다.  

나중엔 시속 300km 정도의 속도를 냈지만 여기 만족하지 못한 그는 당시 미국 최고 초음속 전투기였던 F104의 고장 난 엔진을 불과 600달러에 사서 차에 장착시키기로 했다고 한다. 

그가 이 엔진을 고친 후 첫 시험을 위해 시동을 걸었는데, 걸자마자 인근 집들의 창문이 깨지고, 인근 닭장에 불이 붙는 등 웃지 못할 헤프닝이 있었다. 

아폰스가 만든 이 차는 1964년에 보나빌에서 무려 927km/h의 속도를 냈다고 하니 참 놀라운 이야기고, 그야말로 인간승리라 할 만하다. 하지만 그가 제트엔진으로 최고속을 낸 것을 알게 된 다른 팀들에서도 제트엔진을 적용해 불과 2주 후 그의 기록을 깨뜨렸다. 그는 또 더 높은 튜닝을 통해 기록을 깨기도 하면서 속도를 조금씩 높여가며 경쟁은 계속됐다.

로켓에 인간이 얹혀 가는 듯한 이 무시무시한 레이스는 당시 와이프의 만류로 당분간 그쳤다. 

하지만 이로부터 20년이나 지난 1989년, 아트아폰스는 다시 레이스에 도전했고 시속 563km까지 도달했다. 1991년에도 다시 도전을 했다고 하는데 당시 그의 나이는 65세로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참 대단한 인물이다.

그간 만들어진 그린 몬스터는 총 27대. 여기 전시된 차는 그중 가장 속도가 빨랐다는 64년도 모델이다. 

# 1층 - 과거 미국 거리 풍경에 들어온듯

1층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에 들어온 것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자동차 컬렉션들도 대단하지만, 거리에 있던 랜드마크들을 그대로 가져오거나 재현한 점이 특징이다.

1920-1940년대 거리를 재현했다. 

주유소부터 자동차 딜러, 보험회사, 식료품 가게 등을 표현해 모터리제이션(motorization, 자동차가 사회생활 속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광범위하게 보급된 현상을 일컫는다)을 통해 자동차가 보급되면서 일어난 삶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가게 등이 활발해지고, 딜러들이 차를 파는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상점 실내까지 고스란히 재현했다. 아이보리 비누나 필립모리스 담배의 초창기 모습이 눈에 띈다. 

포드 모델T가 영화에 등장하는 배경이라거나, 진흙에 빠진 차를 빼주면서 돈을 받는, 마치 하이에나 같았던 당시 약삭바른 장삿꾼 모습도 밀랍인형으로 잘 재현해 놓았다.  

당시의 삶을 정말 꼼꼼하게 재현해서 소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를테면 가게에 가득 진열된 제품이 당시 유행한 '아이보리' 비누와 'P&G' 비누라는 식이다.

1900년대 중반 주유소를 재현해 놨다. 

주유소는 특히 기름을 넣는 주유기의 시대별 변천을 보여주고 있는데, 수도꼭지 돌려 열듯 손으로 열어서 주유하는 초창기 주유기부터 에탄올을 주유할 수 있는 최근의 자동화 기기까지 한눈에 볼 수 있다. 

자동차로 이동하는 문화가 확산되자 손님들의 눈길을 잡기 위해 눈에 띄는 건물들을 짓기 시작했다. 

재미있는 건 당시는 요즘처럼 네모 반듯한 집들만 있던게 아니라 자동차를 타고 가면서도 쉽게 볼 수 있도록 건물 자체를 특이하게 짓는 게 유행이었던 점이다. 덕분에 당시 강아지 모양으로 특이하게 지은 '도그카페'도 재현됐고, 주인 3명의 캐릭터를 만들어 벽에 붙인 팹보이스 자동차 부품점도 눈길을끈다. 팹보이스는 지금까지도 미국에서 꽤 인기있는 가게다. 

# 2층 - 할리우드의 자동차들 모두 모였네

할리우드 자동차들이 한 데 모인 전시관도 있다. 이 박물관 유일의 한국차 기아 쏘울이 있다. <그린 랜턴>이라는 미국 만화에 영감을 받아 만든 차다. 기아차는 이 뿐 아니라 배트맨 K5 등을 제작하기도 했다. 

 베트맨을 부르는 빛이 비춰진다. 밀랍인형이 당장이라도 베트카를 몰고 출동 할것만 같다

톰 크루즈가 <미션임파서블 고스트프로토콜>에 타고 나온 차도 있고, <배트맨2>에 나오는 ‘배트모빌'도 있다. 실제로 보니 어마어마한 크기고, 영화 속에서 보던 것보다 더 거창해 보인다. <007 시리즈>에서 할리베리가 타고 나왔던 차, <패스트앤퓨리어스2>에서 여자 주인공이 탔던 혼다 S2000도 전시 돼 있어 다채롭다.

▲ 분노의 질주(Fast and Furious)에 등장한 수키(Suki)의 S2000.

<달려라 번개호>에 나오는 마하5도 있는데. 이게 등장한 영화는 <스피드레이서>라는 워쇼스키 자매의 영화로 비록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우리나라 가수 '비'가 등장해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 한국의 연예인 비가 출연했던 헐리우드영화 스피드레이서(마하고고, 달려라번개호)

# 테마관 - 픽업트럭과 테일핀의 매력

피터슨 박물관은 전시 테마가 수시로 바뀌는데, 방문했을때는 수십 대의 픽업트럭을 전시하고, 역사를 소개하고 있었다. 

독특한 닷지 픽업트럭은 트럭 부위와 운전석이 얇은 축으로만 연결돼 험한 길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고안된 자동차다. 

'픽업트럭'은 말하자면 짐을 싣는 실용성과, 동시에 승용차의 편의성도 함께 다루는 차량이어서 경우에 따라선 승용차와 구분하기 어려운 차들도 여럿 있었다. 

▲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기의 꼬리날개를 흉내낸 테일핀이 대 유행 했다.
▲ 미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전투기의 꼬리날개를 흉내낸 테일핀이 대 유행을 하게 된다.

차량 뒤 꼬리날개(FIN)에 대해서도 테마 전시를 하고 있었는데, 2차대전 직후 자동차 디자인에 전투기 꼬리를 연상케 하는 날개를 달았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당시 나온 차들을 보면 하나같이 꼬리 날개를 달고 있었다. 공기 저항을 줄인다거나 직진성을 향상한다거나 하는 공기역학적인 기능이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런 건 전혀 없고 순전히 멋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설명 돼 있다.

요즘 자동차 디자인에도 이같은 재미요소가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당시에 비하면 요즘 차들은 다들 비슷하고 좀 심심한 것 같은 점은 아쉽다. 안정적 디자인이긴 하지만 창의성을 찾기 힘든 게 마치 현대인들의 삶을 반영하고 있는 것만 같다.

# '오토바이'까지 다양해

수많은 바이크들이 전시돼 있는데, 그 중에는 당연히 미국 전통 모터사이클인 할리데이비슨이 주를 이룬다.

여기 전시된 차량 중 가장 오래된 것은 1912년에 만들어진 할리데이비슨이다. 특히 할리데이비슨은 1903년부터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고 하니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회사라 할 수 있겠다. 최초의 모터사이클을 만든건 메르세데스-벤츠의 공동창업자 독일의 고틀립 다임러지만 판매한건 이쪽이라는 얘기다. 

▲ 가장 오래된 전시차량인 1921년식 할리데이비슨. 동력 자전거의 형태다.

비록 모터바이크지만 페달이 달려있어서 페달을 돌려 자전거처럼 전진하고 나서야 시동을 걸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생각보다 허술한 느낌에 웃음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저 독특하게 생긴 핸들은 할리데이비슨의 전통을 보여주는 것 같아 결코 비웃을 수 없었다. 이 회사는 이 전통을 유지해 100년 후엔 세계 바이크 마니아들이 꿈꾸는 '드림 모터사이클’을 만들게 되기 때문이다. 

▲ 트래블이 중요하게 여겨지던 시절의 자동차.

# 미국의 자동차 박물관을 다녀와 보니

지금껏 소개한 차들 외에도 피터슨 박물관에는 참신하고 놀라운 차들이 150개나 더 있다. 더구나 짧은 글로는 모두 담을 수 없는 감동적인 이야기들도 담겨있다.  이 차들을 직접 보면 차를 만들고 타고 다녔던 우리 선배들의 숨결이 그대로 느껴지는 듯하다. 

우리에겐 부족한 자동차에 대한 역사와 전통이 미국엔 있다. 따라서 과거의 자동차들을 모아만 놓아도 멋진 콜렉션이 되고, 과거의 영광이나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된다. 마치 요즘 우리가 신해철의 음악을 들으면서 과거의 향수에 젖는 것처럼, 미국인들은 과거 웅장했던 자동차들을 보면서 흐뭇해지고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와 다녔던 즐거운 추억을 떠올린다는 의미다. 

하루 아침에 이런 박물관이 만들어진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자동차 역사를 보존하는 공간을 만들어 다음 세대에게 우리 목소리를  전달할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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