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데나 엔초페라리 박물관에서 만난 전설적인 페라리
  • 모데나=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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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5 17:53
모데나 엔초페라리 박물관에서 만난 전설적인 페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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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출장의 대미를 장식한 것은 모데나에 위치한 ‘엔초페라리 박물관’이다. 붉은 페라리가 은은한 조명 아래 서 있는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 벅차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경이로운 광경이 아직도 아련하다. 이곳을 그냥 지나치려 했다니. 두고두고 후회할뻔 했다. 

똑바로 페라리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오지 않는다. 그러나 엔초페라리 박물관은 안전 띠 하나 없이,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닌 페라리를 코앞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관람객의 수준도 높으니 가능한 일이겠다. 마치 거대한 미술관처럼 한적하고 여유롭다. 난 내게 처음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알게해 준 F40 앞에서 한참을 쪼그려 앉아있었다. 그럼에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는 곳이었다. 한마디로 그곳은 천국이었다.

 

# Museo Casa Enzo Ferrari

모데나 대성당을 중심으로 서쪽에는 엔초페라리 공원이 위치했고, 동쪽으로는 엔초페라리 박물관이 서있다. 2012년 문을 연 박물관은 엔초의 아버지 알프레도페라리가 사무실로 쓰던 공간에 자리잡았다. 당시 건물을 그대로 보존했으며, 그뒤로는 기하학적 디자인의 본관이 세워졌다. 붉은 벽돌 공장과 모데나의 상징색인 노란색의 현대적인 건물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있는 ‘박물관’의 특성을 더 명확하게 보여준다.

▲ 모데나 엔초 페라리 박물관.

알프레도의 공장은 훗날 엔초가 레이스카를 만들던 작업장이 됐다. 또 스포츠카 제작을 위해 돈이 필요했던 엔초는 건물을 매각해 자본을 확보하기도 했다. 

엔초는 자서전 ‘페라리 80’에서 공장에서 뛰어놀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고 얘기했다. 공장 옆에는 작은 운하가 있었고, 운하를 따라 포플러 나무가 심어져 있었다. 엔초는 그의 형과 줄자로 백미터를 측정해 달리기를 하곤 했었다. 엔초의 목표는 당시 백미터 세계 최고 기록인 10.8초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또 겨울엔 스케이트와 썰매를 만들어 타곤 했다. 

▲ 그리 많은 수의 페라리가 전시되진 않는다. 때에 따라 테마를 달리하는데, 마세라티 100주년을 기념한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어려서부터 승부욕이 남달랐던 엔초는 10살때 그의 아버지와 함께 볼로냐 서킷에서 열린 자동차 경주를 보게됐고, 첫눈에 레이스에 매료됐다. 소년의 꿈은 한낱 꿈에 머물지 않았다. 13살때부터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고, 21살때부터 레이스에 참가하며 드라이버의 역량을 발휘한다. 당대 최고의 레이싱팀 알파로메오에서 드라이버로 맹활약을 펼쳤다. 이후 스쿠데리아 페라리를 창설했지만, 알파로메오의 방침에 따라 팀은 해체됐고 그는 고향 모데나로 돌아오게됐다.

▲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2차 세계 대전으로 모데나에 지은 페라리의 공장이 파괴되면서, 엔초는 본사와 공장을 마라넬로로 옮겼다. 그리고 1947년 페라리 S.p.A.를 설립하고 자신의 이름을 딴 스포츠카를 만들기 시작한다.

# 파바로티와 엔초의 우정

본관에 들어서면, 엔초가 알파로메오팀에서 몰던 G1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반긴다. 현재 알파로메오는 고난의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분명한건 알파로메오가 없었다면 페라리는 존재하지 않았을거다. 페라리도 이점을 부정하지 않는다. 엔초 박물관 측은 G1 외에도 다양한 알파로메오의 레이스카를 보유하고 있다.

▲ 알파로메오 G1.

박물관에선 때마침 모데나를 대표하는 인물 엔초와 성악가 루치아노파바로티의 끈끈한 우정과 그들의 열정을 보여주는 ‘파바로티 영상전’이 진행되고 있다. 새하얀 박물관 천장과 벽엔 엔초의 일대기를 다룬 영상에 파바로티의 노래가 깔렸다. 또 파바로티의 공연 실황 영상도 상영됐다.

▲ 페라리 166 Inter Aerlux. 페라리는 1947년부터 레이스카 제작 기술을 토대로 로드카를 만들기 시작했다.

엔초는 같은 모데나 출신인 파바로티를 열성적으로 응원했다. 둘은 37살의 나이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 격려하고 존중하는 좋은 친구가 됐다. 특히 파바로티가 신예 성악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을때 엔초는 그를 마라넬로 공장에 초대하기도 했다. 당시 파바로티는 중고로 구입한 마세라티 세브링을 타고 있었는데, 마라넬로 공장을 다녀온 후 페라리에 푹 빠졌다. 결국 파바로티는 엔초의 유작, F40을 구입하게 된다.

▲ 파바로티가 몰던 마세라티 세브링.

박물관엔 파바로티가 타던 마세라티 세브링을 비롯해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스카프, 노르살리노 모자 등이 전시됐다. 또 아레나 오페라 박물관의 협조를 통해 파바로티의 공연 무대 세트들도 전설적인 페라리와 함께 놓였다.

▲ 눈물과 감동없인 볼 수 없는 F40.

# 페라리 V12의 거룩한 계보

페라리는 전통적으로 V12 엔진을 사용했다. 엔초는 작은 엔진을 싫어했다. 심지어 우리에게 디노로 익숙한, 그의 아들 알프레도페라리를 위한 차도 페라리의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그저 디노를 “페라리와 가장 가까운 차”라고 설명하기만 했다. 디노엔 V12 엔진이 아닌 V6·V8 엔진이 탑재됐기 때문이다.

▲ 호몰로게이션을 떠나 페라리는 한정판 모델을 자주 출시했다. F50은 큰 감동은 없었다.

페라리를 대표하는 250, 365, 테스타로사, 456, F50, 엔초, F12 베를리네타 그리고 라페라리까지 전부 V12 기통 엔진을 품고 있다. 그중 페라리 50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F50과 엔초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엔초, 존재 자체가 페라리라는 라페라리 등 한정판 모델이 연달아 서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그들 뒤로 V8 엔진이 장착된 F40, 288 GTO, 458 이탈리아도 전시됐는데, 마치 형님을 모시는 모양새다.

▲ 엔초 역시 디자인이나 설계에 있어서 여전히 호불호가 강하다.

한시간에 한번씩 엔초와 파바로티의 영상이 상영됐는데, 네번을 봤다. 페라리의 아름다운 선과 굴곡은 한 발자국만 옆으로 옮겨도 느낌이 달랐다. 또 빛의 방향에 따라 정렬적으로, 때론 강렬하게 시선을 끌었다. 나는 마치 사랑이 싹트고 있는 여인을 보듯 눈을 떼지 못했다. 쓰다듬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느냐 힘들었다. 

▲ 라페라리는 여러모로 독특한 페라리라고 할 수 있다. 훗날에도 많은 역사적인 의의를 갖은 페라리로 기억될거다.

천국을 빠져나오긴 쉽지 않았다. 전설적인 페라리 한가운데 있으니 페라리를 보고 있으면서도 페라리가 보고 싶었다. 파가니 본사, 람보르기니 박물관 등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강한 끌림이 있었다. 엔초 페라리 박물관은 역사와 전통, 그리고 승리에 대한 갈증과 열정을 품고 있는 페라리와 이를 만든 엔초가 무엇보다 가슴 깊숙히 다가오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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