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박 시승기] 서킷서 롤스로이스 고스트∙레이스 타보니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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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6.01 16:57
[단박 시승기] 서킷서 롤스로이스 고스트∙레이스 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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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부터 달려간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에 갈때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영종대교에는 안개가 가득했다. 최근 사고가 떠올라 좀 을씨년스런 느낌도 들었다. 고스트(유령)과 레이스(혼령)을 만나러 간다는 실감이 났다.

1900년대 초 롤스로이스는 너무나 조용한 나머지 고스트라는 별명이 붙었고, 롤스로이스는 이를 살려 신차에 실버고스트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이후 그 유명한 팬텀, 쉐도우(그림자), 스피릿(영혼), 세라프(천사), 클라우드(구름), 던(동틀녁) 등의 이름도 있었다. 전통적으로 소리 없는 것들을 이름으로 붙여왔는데 그 중에 좀 무시무시한 이름만 살아남은 셈이다. 

▲ 1920년식 롤스로이스 실버고스트. 당시 차들은 차체 디자인이 모두 각기 다르다.

이런저런 생각 속에 도착한 BMW의 드라이빙센터 서킷에는 두대의 롤스로이스가 ‘나를 마음대로 타보라’는 식으로 자리잡고 앉아 위용을 드러내고 있었다. 롤스로이스 본사에서 온 영국인 인스트럭터도 차에 대해 성심껏 설명을 해준다. 롤스로이스 체험행사 답게 요즘 유행하는 말로 ’고급진’ 서비스는 기본이다. 

롤스로이스 고스트를 타고 공도를 달렸다. 바퀴가 빠르게 굴러도 바퀴 중앙의 R자는 거의 수평을 유지하는게 포인트. 

# 극단적인 고급차에는 없는 것들

이 차에는 없는게 태반이다. 모닝에도 달려있는 RPM게이지가 없고, 서스펜션을 조작하는 기능이 없다. 패들시프트도 없고 메뉴얼로 기어를 변속하는 기능도 없다. 불필요한 것을 제외하고 모두 자동차가 알아서 해준다는게 롤스로이스의 철학이다. 

반면 기능은 가득 채워져 있다. 서스펜션은 고속에서는 알아서 낮춰지고 단단해진다. 코너에서는 에어서스펜션을 이용해 코너의 바깥쪽을 높여준다. 제동을 하면 앞쪽 서스펜션이 높아지면서 노즈다이브를 극단적으로 제어한다. 이게 다 운전자 모르게 일어나는 일이다. 운전자는 그저 ‘왜 이렇게 운전이 쉬운걸까’ 고민하게 된다. 

자동차 전문지 기자라 할지라도 롤스로이스를 잡아 돌릴 수 있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는다. 

후드 안의 V12 트윈터보 엔진 또한 운전자가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부드럽게 시동이 걸리고 우아하게 차를 발진시킨다. RPM 게이지 대신 남은 힘을 보여주는 퍼센트(%)가 바늘로 나타난다. 평소엔 100% 던 것이 가속페달을 밟을 수록 줄어드는 방식이다. 가속페달을 아무리 끝까지 밟아도 10% 정도의 힘이 꾸준히 남는다. 시속 250km에서도 40% 가량의 힘이 남는다고 한다. 

어쨌거나 운전자는 차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저 핸들만 돌리고 패달만 밟으면 되도록 만든게 이 차의 철학이자 특징이다. 

# 극단적인 고급차에 있는 것들

시대를 초월하는 고급감이 이 차에는 있다. 대량생산이 일상화 되고 플라스틱으로 대변되는 현대적인 자동차에서는 얻을 수 없는 고급스러움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초기 자동차가 태동하던 시절, 마차를 만들던 코치빌더가 가죽과 원목 크롬을 가득 더해 최고급 자동차의 실내를 만든것 처럼 이 차에도 당시의 호사스러움을 재현해냈다.

파워 트레인에서는 570마력이라는 롤스로이스 최강의 스펙을 자랑하는 6.6리터 V12 트윈 터보 엔진에 ZF의 8단 자동변속기가 탑재 돼 있다. 변속기는 GPS 지도데이터와 연동해 교차로나 고속도로 출입구, 언덕과 내리막에 적절하게 반응하는 ‘위성지원 변속(Satelite-Aided Transmission;SAT)’ 장비를 장착했다. 

▲ 실내를 살필 수 있도록 롤스로이스 레이스가 제공됐다.

이 차는 지난해 공개된 최신 ’고스트 시리즈2’로 이전에 비해 약간 다르다. 얼핏보면 헤드램프에 LED 형상이 조금 바뀐 정도의 차이지만 실은 후드, 프론트그릴, 범퍼 등 전면의 상당수가 바뀌었다. 바뀐 곳이 어딘지 눈치채기 힘든 가운데 강인하고 와이드하게 변경된게 이번 페이스리프트의 특징이다. 

내부적으로는 흔히 ‘마법의 양탄자’라고 표현하는 우아한 승차감이 갈고 닦아져 무르익었고 엔진도 부드러운 느낌으로 세팅됐다. 롤스로이스 측은 이 차의 실내를 ‘치열한 비즈니스 가운데의 오아시스’라고 표현한다. 

시트는 더욱 감싸주는 형태로 바뀌었고 안정감이 높아졌다. 맞춤형 프로그램인 비스포크의 범위도 확장됐다. 국내서는 비스포크로 차의 실내외를 맞춤 선택하는 경우가 적다고 하는데, 이 정도 차를 살 정도면 자신이 원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선택하는게 좋겠다. 옵션을 선택한다면 내용에 따라 다르지만 짧게는 3개월, 길면 1년 후에 차를 인도받게 된다. 

# 레이스, 롤스로이스에 대한 ‘반전’

레이스는 강력한 동력성능과 다이내믹한 주행감각에 유려한 ‘패스트 백’ 디자인을 특징으로하는 2도어 쿠페 모델이다. 기존 롤스로이스를 기대했던 소비자라면 강한 배신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더 이상 뒷좌석을 위한 차가 아니라 앞좌석을 위한 GT(그란투리스모) 자동차로 명확하게 다시 태어났기 때문이다. 

A필러에서 리어엔드까지 이어지는 라인은 1930년대 자동차 디자인에서 유래한 패스트백 스타일을 현대적으로 되살린 것이다. B필러는 프레임리스여서 금속제 투톤 컬러의 극적인 효과를 더했다. 또 앞쪽이 열리는 코치도어 형태여서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이색적인 경험이 된다. 열고 내릴때도 편리하지만 닫을때는 버튼만 누르면 ‘스르륵’ 문이 다가와 닫힌다. 

 

실내는 고스트와 비슷하게 호화스럽고 장인정신이 넘치는 최상급의 공간이다. 고급 우드 패널과 최상급 가죽이 빈틈없이 채워져 플라스틱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사치스런 공간을 만들어내고 있다. 고스트는 좀 점잖은 실내로 세팅돼 있었지만 이 차는 외관과 마찬가지로 투톤 가죽 실내를 적용해 젊은 층이 선호하는 형태로 세팅돼 있었다. 천장은 ‘스타라이트 헤드라이너’라는 이름의 옵션을 제공해 별이 초롱초롱 빛나듯 연출했다. 

롤스로이스는 경험이다. 다소 높은 차체와 너무나 부드러운 서스펜션, 감춰진 여러 기능들이 단점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롤스로이스에 젖어들면 그 모든 것들이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지게 된다. 포르쉐, 페라리를 타던 소비자들이 모두 성장했을때, 자동차의 기계적인 부분을 신기한 장난감으로 여기지 않고 삶을 풍요롭게 하는 도구로 여길때 비로소 만족감을 극대화 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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