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독일에는 왜 김여사가 없을까?
  • 스케치북
  • 좋아요 0
  • 승인 2015.04.19 01:33
[스케치북 칼럼] 독일에는 왜 김여사가 없을까?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자동차의 나라 독일. 이곳 사람들의 운전은 생각보다 꽤 거칠다. 아우토반 진출로는 360도에 가깝게 회전하는 곳이 많은데, 대부분 속도를 별로 줄이지 않고 차의 탄력을 이용해 빠르게 치고 나간다. 우리나라처럼 속도를 줄이고 조심스럽게 빠저나가다 보면 졸지에 초보운전자 취급받기 십상이다. 굽이치는 산길에서조차 어찌나 빠르게 앞서나가던지 신기할 따름이다.

그러나 더 신기한던 것은 이렇게 거친 운전들이 법규 앞에서는 순한 양처럼 변한다는 것이다. 제한속도 표지판에 맞춰 정확하게 주행한다든지, 횡단보도 앞에서는 철저하게 보행자를 우선으로 생각한다든지, 마치 교과서에서나 나올 법한 운전자로 변신한다. 또, 주차장에서는 발레파킹의 달인처럼 차를 한 번에 쏙 넣으며, 아우토반의 1차로를 추월차로로 남겨두는 등 차로를 이해하고 달리는 모습은 스위스 시계처럼 정교하다. 무엇보다 흔히 말하는 '김여사'를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은 가장 인상적이었다.

우리나라에서 '김여사'는 운전이 능숙하지 않아 다른 운전자들에게 피해를 주는 여성운전자를 비하하는 표현이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전설적인 김여사들의 목격담과 사진, 동영상이 수도 없이 나온다. 대체 저런 사람들은 면허를 어떻게 땄는지 궁금할 지경이다. '김여사'가 없는 도로를 만드려면 까다롭기로 유명한 독일의 운전면허취득과정이 해법이 될 듯하다.

◆ 독일의 운전면허취득과정…대충은 용납 될 수 없다

독일에서 운전면허를 취득하기 위해 가정 먼저 해야하는 일은 응급처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이론수업은 그 다음이다.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사고에 보다 효과적으로 대응해 부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신경쓴 것이다. 

이론교육에 들어가면 입시학원을 방불케 하는 학구열이 불타오른다. 90분짜리 수업을 무려 12번이나 받아야 하는데, 합격률이 70%에 불과해 많이 떨어지는 편이다. 객관식에는 정답이 2개 이상인 문제가 많고, 5점짜리 문제도 있어 2개 틀리게 되면 바로 불합격이다. 집중해서 공부하지 않으면 시험에 떨어지니 그만큼 많은 노력을 쏟게 되고, 공부를 통해 자연스럽게 몸에 익은 법규는 도로 위에서 저절로 나타나게 된다.

▲ 독일 운전면허 필기 시험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5시간 정도 이론 교육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다. 과연 이 정도로 교통법규나 운전 상식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까는 의문이다. 

주행연습도 마찬가지다. 90분짜리 교육을 12번 해야 하고 다시 특별주행 코스를 13번 연습해야 한다. 특별주행 코스는 국도 주행과 고속도로 주행, 그리고 야간주행 등이다. 그러나 이 시간만 교육받고 주행시험을 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주차를 못 한다든지, 표지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든지 어느 한 부분에 특별한 약점이 발견되면 그걸 해결한 후에 주행 시험을 치뤄야 한다. 

최근에는 독일도 자동변속기로 시험을 치룰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유럽에서 수동변속기 면허가 없다는 것은 아주 부자이거나 아니면 운전을 안 하겠다는 뜻이다. 결국 수동변속기 면허를 따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어떤가. 독일은 이렇게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도 30%가량 떨어지는데, 국내는 운전면허를 너무 쉽게 준다. 면허를 따고도 차로 변경을 못해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진만 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릴 정도다. 특히, 2011년 운전면허 간소화 이후 이런 경향은 더 심해진 듯하다. 경제적 부담을 줄이면서도 철저하게 독일식 시험 과정을 고민한다면 우리나라 사정에 맞는 면허취득제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다.     

 

◆ 여성 운전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없다

여성 운전자를 낮게 바라보는 사회 분위기도 없으니 '김여사'라는 말이 생길 일도 없다. 면허취득이 워낙 어려워 남자와 여자가 모두 운전자로 수렴한다. 당연히 '김여사' 같은 여성 비하적 표현을 찾을 수도 없다. 잘못 운전한 사람에 대한 비판은 있지만, 여성이라서 받아야 하는 사회적 비난은 없다.

물론, 아무리 독일이라도 무개념 여성 운전자는 존재한다. 아우토반에서 깜빡이도 안 켜고 바로 코 앞에서 끼어들던 여성 운전자, 복잡한 시내에서 통화를 하면서 주차하느라 다른 차들을 모두 멈춰 세운 중년 여성의 기억이 생생하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둘 다 김여사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해당 운전자의 문제일 뿐, 그게 여성이라서 받아야 하는 비판은 아니다. 그렇게 말 만들어내기 좋아하는 독일인도 '김여사' 같은 표현은 아직 만들지 않았다. 굳이 비슷한 표현을 찾아 본다면 '존탁스파러(Sonntagsfahrer)' 정도다. 직역하면 일요일 운전자인데, 보통 제한속도 보다 느리게 달리며 교통 흐름을 방해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하지만 이 역시 여성에게 국한된 표현은 아니다.

독일 도로 위에는 왜 김여사가 없을까? 간단하다. 여성 운전자를 향한 사회적 편견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데는 철두철미한 면허취득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이 두 가지가 잘 맞물려 돌아간다면 우리나라에서도 김여사라는 불편한 말은 없어질 수 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