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 파가니 본사 가보니…수십억원의 예술품을 만드는 곳
  • 이탈리아=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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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10 17:41
슈퍼카 파가니 본사 가보니…수십억원의 예술품을 만드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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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라리 본사가 위치한 마라넬로에서 국도를 타고 동쪽으로 30분 정도 달리면, 인구 6천여명의 작은 도시 ‘산 세사리오 술 파나로(San Cesario sul Panaro)’가 나온다. 대다수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는 평화로운 도시. 이곳에서 10억원이 훌쩍넘는 세계 최고급 슈퍼카가 만들어지고 있다. 모터그래프는 희대의 슈퍼카 브랜드 ‘파가니 오토모빌리(Pagani Automobile)’를 만나기 위해 이탈리아로 날아갔다.

 

# 말로만 듣던 파가니를 만나다

이탈리아의 봄은 매우 화창하다. 그야말로 하늘색인 하늘엔 새하얀 구름이 떠있다. 끝없이 펼쳐진 평원을 가로지는 국도, 붉은 벽돌 건물이 촘촘히 들어선 고즈넉한 마을과 그 중심에 우뚝 솟은 성당은 마치 동화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풍경은 도저히 운전에 집중할 수 없게 만든다. 쉴새없이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달리다 반가운 표지판을 만났다.

산 사사리오 술 파나로는 워낙 작고 특색이 없는 도시기 때문에 비교적 짧은 역사의 파가니가 도시의 간판이 됐다. 표지판이 워낙 많아서 길은 잃지 않았고, 약속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도착했다.

 

당당하게 파가니 본사 바로 앞 도로에 차를 세우고 알싸한 스파클링워터를 한모금 넘길 찰나, 도무지 이 한산한 마을과 어울리지 않는 배기음이 들렸다. 점점 더 선명하게 들리는 우렁찬 배기음은 거짓말 조금 보태서 타고있던 피아트 500이 흔들릴 정도였다. 

파가니다. 그것도 와이라(Huayra)! 모터쇼와 유튜브를 통해 이미 여러 번 봤지만, 코앞에서 움직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다. 후진할때 마저 거친 숨을 토해내는 이 아름다운 물체가 정말 움직이는 것이었다니. 위장막을 쓴 와이라는 잠시 본사에 들어갔다가 세차를 하고 다시 나갔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이 차는 영화 트랜스포머 촬영에 사용됐던 차라고 한다. 테스트 및 홍보용으로 활용되는 차인데, 차체 보호를 위해 보호막을 씌웠다고 한다. 하루 종일 달리는 차라고 했다. 테스트 드라이버가 부러워졌다. 

 

# 파가니의 발자취

파가니는 칼같이 약속 시간을 지켰다. 정확히 오전 11시에 본사 문이 열렸다. 그전까지 계속 철장 사이로 얼굴을 내밀고 내부를 구경했다. 파가니 본사는 무척 아담했다. 작은 정원을 지나 들어선 본사 1층엔 쇼룸이 마련됐다. 쇼룸엔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6분 47초를 기록한 존다 레볼루션과 파가니의 초기 모델인 존다F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수입억원의 차를 판매하는 브랜드의 쇼룸치고는 좁고 산만했지만, 존다의 자태는 모든 것을 압도하기 충분했다.

 

본사는 2층 건물로, 1층엔 쇼룸과 카본파이버를 가공하는 작업실로 구성됐다. 2층엔 호라치오파가니(Horacio Pagani)의 집무실과 디자인팀이 자리했다. 원래 1층에서 차를 조립하는 과정도 이뤄졌는데, 작년에 새로운 조립 공장을 지었다. 공장 신설을 통해 생산량은 두배 가량 증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일년에 40여대를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열흘에 한대 꼴로 생산되는 셈이다.

 

작은 쇼룸이지만 파가니와 호라치오의 연대기를 설명할 수 있는 핵심적인 전시물이 놓였다. 버려진 모터사이클의 부품을 모아 15살의 호라치오가 직접 디자인 및 설계, 조립했다는 모터사이클과 르노 엔진을 활용해 20살때 제작한 F3 레이스카가 존다와 함께 전시됐다. 

아르헨티나에서 빵집 아들로 태어난 호라치오는 집안 형편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나무를 깎아 자동차 모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호라치오의 어린 시절, 아르헨티나의 국민적인 영웅은 축구스타가 아닌 F1 드라이버 후안마뉴엘판지오였다. 자연스럽게 호라치오는 슈퍼카 만들기에 꿈을 키웠고, 꿈을 쫓아 무작정 이탈리아로 건너와 어렵게 람보르기니에 입사했다. 

 

쇼룸 구석엔 파가니에 탑재되는 메르세데스-AMG의 엔진도 전시됐다. 파가니가 메르세데스의 엔진을 쓰는 것도 메르세데스팀에서 우승을 차지한 후안마뉴엘판지오의 영향이라는 얘기도 있다. 어쨌든 메르세데스-AMG는 파가니를 위해 특별한 AMG 엔진을 공급하고 있다.

 

라이프스타일 제품도 전시됐는데, 대부분 호라치오가 직접 디자인했다고 한다. 반팔 티셔프 하나에 십만원이 넘었으니, 웬만한 ‘팬부심’이 없으면 사기 힘들다. 와이라를 만들다 남은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모형도 웬만한 중고차 가격과 비슷했다.

# 파가니의 카본파이버 사랑

투어는 월요일과 금요일, 각각 오전 11시와 오후 3시에 시작된다. 회사 사정 상 그리 많은 것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에 한시간이면 프로그램이 끝난다. 쇼룸을 제외한 모든 공간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됐다. 하지만, 와이라의 여러 부품을 직접 손으로 만져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둘러본 곳은 파가니가 자랑하는 카본파이버 작업실. 호라치오의 카본파이버 사랑은 남다르다. 호라치오는 람보르기니에서 디자인 총괄자까지 오른 후 모든 차체와 패널이 카본파이버로 제작된 슈퍼카를 만들려했지만, 람보르기니는 이를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람보르기니를 떠난 호라치오는 카본파이버와 같은 복합소재를 생산하는 ‘모데나 디자인’을 설립하고, 자신만의 슈퍼카 제작에 돌입했다. 람보르기니는 20년이 지난 시점에 아벤타도르를 위한 카본파이버 공장을 지었다.

 

작업실에는 십여명의 작업자가 맡은 부위의 패널을 제작하고 있었다. 적게는 십여분에서 수시간 동안 작업해야 되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CFRP, Carbon Fiber Reinforced Plastics)는 탄소 섬유로 제작된 직물에 열경화성 수지를 침투시킨 것으로, 철보다 강하고 알루미늄보다 가볍다. 직물을 짜는 방식, 가공 방식에 따라 각기 다른 특성의 결과물을 만들 수도 있다. 

파가니는 부위 별로 다른 가공 방식을 적용한다. 특히 가장 와이라에서 중요한 부분인 카본파이버 모노코크에는 탄소 섬유 사이에 티타늄 실을 함께 엮었다. 이로 인해 일반적인 카본파이버에 비해 비틀림 강성이 크게 향상됐다고 한다. 파가니가 사용하는 탄소 섬유나 티타늄 실은 일본에서 수입한다고 한다. 카본파이버는 일본이 처음 만들어낸 신소재인만큼 가장 신뢰가 간다고 설명했다.

 

파가니가 소유하고 있는 모데나 디자인은 독자적인 오토클레이브를 보유하고 있다. 각 패널 별로 굽는 시간이 다른데, 평균 150도에서 1시간 30분 정도로 굽는다고 한다. 카본파이버 특유의 무늬가 일정치 않으면 어김없이 버려진다.

# 간소한 조립 공장에서 만들어지는 수십억원의 슈퍼카

카본파이버 작업실에서 나와 본사에서 500미터 가량 떨어진 신공장으로 향했다. 본사는 마치 가정집을 개조한 것 같았는데, 신공장은 규모도 크고 어엿한 공장의 분위기가 났다. 물론 여기서도 촬영은 금지. 사실 그렇게 많은 것을 보여주진 않았다. 오히려 차를 앞에 놓고 많은 얘기를 했을 뿐.

새로운 공장은 차량 조립 공간과 서비스센터으로 나뉘며, 부품 창고의 역할까지 하고 있었다. 별도의 조립 라인은 없고, 스탠드 위에서 뼈대를 먼저 조립한 후 각 부분을 연결한다. 부가티도 이런 방식으로 베이론을 만든다.

 

파가니의 쇼룸은 전세계에 20개 정도 있지만 서비스센터는 오직 본사에만 있다. 고장나면 무조건 항공편을 이용해 이탈리아로 차를 보내야 한다. 항공편은 파가니 측에서 섭외한다. 이날 서비스센터에는 여섯대의 와이라와 한대의 존다가 있었다. 특히 와이라 중 다섯대는 우핸들이었다. 이중 세대는 일본, 두대는 홍콩에서 왔다고 했다. 혹시 한국엔 몇대 팔렸냐는 질문에 담당자는 정확한 수치는 모르고, 호라치오가 잘 아는 고객이 있단 말만 했다.

조립이나 수리가 끝난 차는 본사 앞에서 만난 와이라처럼 보호막을 씌워 테스트를 진행한다. 주로 몬짜 서킷을 이용한다.

 

현재까지 파가니는 약 200여대가 만들어졌다. 와이라는 40여대가 판매됐다고 한다. 이미 계약만으로 올해 생산 물량은 가득찼다고 했다. 와이라의 기본가격은 지역마다 다소 차이가 있지만 약 100만유로(약 11억7천만원) 정도다. 주문생산, 수작업 등이 이뤄지기 때문에 다양한 편의사양 추가가 가능하다. 가격도 상상을 초월한다. 안전벨트 색상 추가는 850유로(약 100만원), 후방 센서는 1500유로(약 175만원), 후방카메라는 4900유로(약 575만원), 수납공간에 딱 들어맞는 가방 세트는 1만4950유로(약 1750만원)에 달한다. 가장 비싼 추가사양은 풀 카본 바디워크로 11만2500유로(약 1억3200만원)에 달한다. 입이 쩍 벌어지는 가격이지만, 와이라를 사는 고객의 대부분은 이미 존다를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같은 지구인들끼리 이래도 되나 싶다.

 

새로운 슈퍼카 브랜드가 소비자들에게 인정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현대차가 롤스로이스급의 차를 만들어 인정받는 수준이랄까. 단순히 성능이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를 압도한다고 한들, 부호들은 그들의 차를 선뜻 사지 않는다. 매년 새로운 슈퍼카 브랜드가 생겨나지만 기억에 오래 남는 경우는 없다. 1990년대 이후 탄생한 슈퍼카 브랜드 중에서 꿋꿋하게 살아남은 브랜드는 파가니와 코닉세그밖에 없다.

파가니가 가치를 높일 수 있었던 것은 호라치오의 힘이 절대적이다. 그는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에 모두 능통했고,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차도 하나의 예술품으로 평가받길 바랬다. 그래서 누구보다 비싼 소재를 사용했고, 최고의 인력을 끌어모아 부품 하나하나를 마치 수공예품처럼 만들었다. 예술품 사이에서 한시간은 너무 빨리 지나갔다. 다른 참가들도 같은 심정이었는지, 한동안 공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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