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현대차 제네시스는 왜 유럽에서 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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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4.06 16:59
[스케치북 칼럼] 현대차 제네시스는 왜 유럽에서 보이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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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현대차 제네시스가 유럽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 및 미국에서의 인기와는 상반된 모습이어서 보다 근본적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지난 2월까지 미국 시장에서 5366대가 팔렸다. 세계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의 각축장인 미국에서 BMW 5시리즈(6965대),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6745대) 못지 않은 높은 판매량이다.

국내에서의 존재감은 더 대단하다. 신형 제네시스는 국산 대형세단 시장에서 70%가 넘는 점유율을 기록하며 날로 강력해지는 수입차의 공세를 힘겹게 막아내고 있다. 특히, 작년에는 총 3만6711대, 월평균 3060대가 판매됐으며, 올해 1~2월에도 월평균 2835대가 팔리는 등 꾸준한 인기를 모았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돌풍'이라며 생산량을 늘리려는 움직임까지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부에서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들린다. 제네시스가 미국에서 잘 팔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구형 모델보다 판매량이 낮은 데다가, 국내에서도 신차 효과가 점차 사그라져 판매량이 줄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작년 진출한 유럽 시장에서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해 신규 수요를 만들어내기도 힘들다는 분석이다. 

◆ 유럽에서 '잊혀진 이름', 제네시스

신형 제네시스는 개발 단계부터 독일 프리미엄 3사의 준대형 3총사를 정조준한 유럽형 모델이다. 현대차 역시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담금질했고, 영국 스포츠카 브랜드인 로터스가 섀시 개발에 참여했다고 대대적으로 광고하는 등 제네시스에 담긴 '유럽산 DNA'를 강조했다.

 

이런 제네시스였기에 유럽 진출에 업계의 관심이 모아졌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현대차에 따르면 작년 5월 유럽에 출시된 제네시스는 6~12월까지 고작 163대, 월평균 28.2대꼴로 팔렸을 뿐이다. 게다가 올해 판매량도 1월 22대, 2월 26대 등 총 48대로 작년보다 줄어든 상황이다.

유럽에서 가장 시장이 큰 독일에서는 어떨까? 독일연방자동차청(KBA) 월별 판매량 자료를 살펴 봤지만 제네시스의 이름은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매월 10~15대 사이의 판매가 이뤄지고 있는 '기타 차종' 항목을 통해 제네시스의 판매량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제네시스 판매 전에도 '기타 차종'은 10대 전후의 판매량을 유지했으니 10대를 넘는지도 확인하기 어렵다. 

어찌나 적게 팔리는지 독일 자동차 매체 아우토모토운트슈포트에서 매달 '판매량이 적은 자동차'를 100여 종씩 공개하고 있는데, 여기서도 제네시스의 이름을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참고로 지난 1~2월 벨로스터는 26대, 스타렉스는 66대로 리스트에 포함 됐다.

도대체 제네시스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 유럽, 독일 3사 외엔 준대형 프리미엄 세단의 무덤

이런 성적표를 받은게 제네시스만은 아니다. 유럽 시장에서 경쟁하는 준대형급 프리미엄 모델은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등 독일 3사를 제외하면 모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유럽자동차공업협회의 작년 자료를 보면 렉서스와 재규어 등의 유럽 시장 점유율은 0.2% 수준으로 약 2만8000대 남짓 팔렸다. 인피니티나 캐딜락 등은 점유율로 표시하기도 민망한 수준이고 그나마 볼보가 1.9%로 체면을 세웠다.

그에 비하면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유럽에서 연간 60~80만대를 팔며 5.0~5.6%의 비교적 높은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더구나 준대형 세단은 유럽에서 그리 인기가 없다. 작년 유럽에서 많이 팔린 100개 모델을 뽑아보면 준대형은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 3개 모델 뿐이다. 

독일에서의 쏠림 현상은 더 심각하다. 준대형에서 아우디 A6와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는 작년에 총 11만5446대가 팔려 94.6%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볼보 S70과 재규어 XF가 뒤를 이었지만, 점유율은 각각 2.8%, 2.0%에 불과했다. 

렉서스나 인피니티, 캐딜락 등은 비참할 정도다. 올해 1~2월 렉서스 GS의 독일 판매량은 겨우 7대였고, 캐딜락 CTS는 8대에 머물렀다. 그나마 인피니티 Q70의 판매량은 제네시스처럼 알 방법이 없었다. 독일이 아무리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의 나라라고 해도 이 정도면 타국 차량의 무덤 수준이다.

2014 파리모터쇼에서 유럽 최초로 선보인 현대차 제네시스/사진=파리 김상영기자

◆ 제네시스, 혁신적 기술 외엔 답이 없다

왜 유럽에선 다른 준대형 프리미엄 모델들이 힘을 못 쓰는 걸까? 무엇보다 독일 3사에 대한 시장의 무한 신뢰를 꼽을 수 있겠다. 짧게는 50년, 길게는 1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어져온 독일 브랜드에 대한 신뢰는 우리의 상상을 훌쩍 뛰어넘을 정도로 단단하다. 젊은이들은 BMW를 몰고 싶어 하고 성공한 장년층은 메르세데스-벤츠를 몰고 싶어한다. 여기에 새롭게 아우디가 감각적 프리미엄 브랜드의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살리며 기세 좋게 치고 올라왔다.

역사와 전통은 서로 얽혀 파고들 틈이 없는 촘촘한 고리를 만들어 낸다. 단순히 시간에 따라 쌓이는 퇴적물이 아니라 피나는 기술과 혁신을 통해 만들어진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프리미엄이라는 타이틀을 달기 위해서는 커다란 덩치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화려한 옵션이 아니라, 소비자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기술이 녹아들어 있느냐다. 

아우디는 BMW나 메르세데스-벤츠에 비해 후발주자였지만, 경량화를 비롯해 낮은 공기저항과 사륜구동 콰트로, 뛰어난 효율의 TDI 엔진 등 앞선 기술을 통해 지금의 위치에 올라올 수 있었다. BMW는 1950년대 이미 자동차용 알루미늄 V8 엔진을 세계 최초로 만들었고, 뒷바퀴 굴림이 주는 운전의 즐거움을 극대화 시킬 줄 아는 그들만의 노하우를 완성시켰다. 벤츠의 안전과 안락함, 그리고 다양한 기술개발의 역사는 말하기 버거울 정도다.

볼보는 또 어떤가? 안전이라는 분명한 자기 색깔을 가지고 독일 3사와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으며, 렉서스는 하이브리드라는 장점을 가지고 버텨내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자기 기술, 자기 색깔이 없다면 살아남기 어려운 유럽시장에서 제네시스는 과연 어떤 무기로 승부를 펼치고 있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 현대차 HND-9 콘셉트카

제네시스의 유럽 판매 부진에 대해 현대 관계자는 '디젤 엔진 부재'와 '유럽 소비자의 보수성' 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그러나 이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설령 제네시스에 디젤 엔진이 달리고, 유럽인들이 좋아하는 왜건이 출시된다 해도 현대만의 기술과 분명한 색깔이 없다면 유럽은 잡히지 않는 허상으로 남을 뿐이다.

현대차는 미국과 유럽 시장에서 싼 가격과 긴 워런티 등으로 판매량을 늘리며 해외 시장에 안착했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어진 '저렴한 브랜드' 이미지는 프리미엄 세단을 지향하는 제네시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 제네시스가 이대로 묻히느냐, 아니면 제네시스로 인해 현대차의 가치가 높아지느냐는 브랜드 이미지를 뛰어넘는 혁신적 기술력에 달려 있음을 현대차가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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