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케치북 칼럼] 프랑스는 왜 디젤차를 버리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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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3.20 09:00
[스케치북 칼럼] 프랑스는 왜 디젤차를 버리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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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에서 스케치북이라는 필명으로 인기리에 스케치북다이어리 블로그를 운영하는 이완님의 칼럼입니다. 한국인으로서 독일 현지에서 직접 겪는 교통사회의 문제점들과 개선점들, 그리고 유럽 자동차 제조사들과 현지 언론의 흐름에 대해 담백하게 풀어냅니다. 

 

국가적 차원에서 벌이고 있는 프랑스의 디젤차 퇴출 운동은 우리나라의 디젤차 열풍과 대비를 이뤄 주목하게 된다.

프랑스 자동차 회사들은 소형차, 그리고 디젤차 만드는 데 있어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다. 그런데 마뉘엘 발스 총리의 '디젤 정책 실패 선언'과 파리 시장의 디젤차 퇴출 공약 등으로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자동차 제조사들은 '누워 침뱉기'라며 비판했지만 이미 국민들 54%가 정부 정책에 찬성한다는 설문 조사까지 나온 상황에서 더 이상 버티는 건 의미 없어 보인다. 전체 차량의 70%가 디젤인 프랑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 스모그가 프랑스를 뒤덮고 있다

"공장도 별로 없는 파리 에펠탑 주변이 언제부턴가 누런 흑먼지로 가득해요. 이게 디젤차가 뿜어대는 유해물질 때문이라네요" 파리에 거주하는 어느 한인의 목소리엔 걱정이 가득했다. '유럽의 꽃' 파리가 스모그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당장 파리 시민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스모그의 주범으로 디젤차가 지목되었다.

자동차가 내뿜는 배출가스는 일산화탄소, 이산화탄소, 탄화수소, 질소산화물(NOx), 그리고 미세먼지(PM) 등, 크게 나누면 다섯 가지 정도가 된다. 이중 이산화탄소 등은 가솔린 엔진에서 많이 나온다지만, 질소산화물과 분진은 디젤 엔진에서 훨씬 더 많이 뿜어져 나온다. 물론 직분사 가솔린 엔진 역시 미세먼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이처럼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는 우리 인체에 악영향을 미친다. 독일의 한 자료를 보면 도심 내 질소산화물 발생 비중은 디젤승용차가 36%로 가장 높고, 그 다음이 공장으로 29%였다. 디젤을 연료로 쓰는 트럭, 소형 상용차, 버스까지 합치면 전체 질소산화물 배출의 64%는 디젤차 탓이다. 남의 얘기가 아니다. 서울도 환경규제 등으로 인해 미세먼지는 줄어드는 반면 질소산화물의 양은 오히려 매년 늘고 있다.

# 5년 후, 디젤 자동차는 파리를 달릴 수 없게 된다

점점 짙어지는 스모그를 없애기 위해 프랑스는 특단의 조치를 파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점진적으로 디젤차의 통행을 제한해 5년 후인 2020년엔 시내에서 디젤차를 완전히 사라지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오래된 디젤차를 가솔린이나 신형 디젤로 바꾸는 사람들에게 500유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로 바꿀 땐 6500유로, 전기차로 바꿀 땐 1만유로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또 파리 시내를 돌아다니던 디젤 버스 4500대 모두를 2016년까지 하이브리드 버스, 그리고 2025년까지 전기버스와 가스버스 등으로 교체할 예정이다. 하지만 디젤 퇴출의 결정타는 세제 개편이 될 것으로 보인다. 올해부터 당장 1리터당 30원 정도의 세금이 더 붙는데, 이는 디젤이 가솔린 보다 비싼 연료가 된다는 걸 의미한다.

# 계속된 디젤에 대한 경고 메시지들

프랑스 정부의 이 같은 결정은 갑자기 이뤄진 게 아니었다. 2010년에는 질소산화물의 유해성이 공개적으로 논의 되었고, 이듬해 프랑스 한 언론은 질소산화물로 인해 매년 프랑스에서만 4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있다는 충격적 내용의 기사를 내보냈다.

그리고 2012년, 세계보건기구는 디젤을 1급 발암물질로 규정한다. 호흡기 장애는 물론 폐암과 방광암 등의 위험이 디젤 배기가스로 인해 높아진다는 것이 국제기구를 통해 공식화 된 것이다. 일명 '클린 디젤'로 유럽을 휘젓던 자동차 제조사들에겐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상황이 이렇자 예전부터 디젤에 시큰둥했던 영국은 디젤 택시를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디젤차 비중이 높은 스페인 역시 프랑스의 행보를 지켜보며 대응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프랑스 이웃나라 독일은 아직까진 직접적 움직임은 없지만 유력 자동차 매체 등이 나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이제 반디젤 분위기는 프랑스만의 것이 아니다.

# 우리에겐 유로6가 있잖아?...뜻밖의 테스트 결과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현재 유럽은 EURO6라는 강력한 디젤가스 배출 규제 기준을 마련해 둔 상태다. 특히 문제가 되는 질소산화물의 경우 기준치는 킬로미터당 80mg으로 EURO5보다 80% 강화되었다. 미세먼지는 디젤 매연 저감 장치(DPF)로 잡고, 질소산화물은 배기가스 재연소 장치(EGR)나 요소 촉매 저감장치 (SCR)로 기준을 맞춘다. 이쯤 되면 노후된 디젤 차만 퇴출시켜도 충분할 텐데 왜 프랑스는 디젤 전체에 대한 퇴출을 정책의 종착역으로 삼은 것일까?

독일에 본사를 둔 국제 청정 교통 위원회(ICCT)라는 곳에서 한 가지 실험을 했다. 6개 브랜드의 유로6 기준을 통과한 15개 디젤차를 선정, 휴대용 배출가스 측정 시스템 (PEMS)을 장착하고 도로를 달린 것이다. 기존의 실내 측정법이 아닌, 말 그대로 일상 주행을 통해 실제 도로 위에 뿜어져 나오는 배기가스를 체크한 것인데 그 결과는 놀라웠다.

'RED' 방식으로 연비를 측정하는 자동차

15개 모델 중 단 1대만이 질소산화물 기준치 안에 들었을 뿐 나머지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심지어 기준치를 7배나 넘긴 자동차도 있었다. 연비측정방식 뿐 아니라 디젤 배출가스 측정법에도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EU는 2013년부터 실제 도로를 달리며 측정하는 RDE(Real-World Driving Emissions) 방식으로 전환을 꾀하고 있지만 제조사들의 로비로 인해 실행이 불투명한 상태다.

# 늦기 전에 현실적 방안 마련돼야 

2013년 우리나라는 처음으로 디젤차 판매가 가솔린 모델의 판매를 뛰어넘었다. 수입차의 경우 디젤 비율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한국 완성차 업체들도 속속 디젤 세단을 내놓고 있다. 여기에 SUV의 성장세도 디젤차 열풍에 한 몫하고 있다. 하지만 확실하게 검증되지 않은 배기가스 저감장치만 믿기엔 현재 상황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요즘 스모그와 황사 등으로 한반도 일대가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에서 날아온 미세먼지도 있지만 도심을 주행하는 디젤차에서 뿜어내는 질소산화물과 미세먼지 비중도 상당하다. 이렇게 가다간 프랑스처럼 차량 2부제를 실시하고, 그러다 안되면 디젤 퇴출을 선언하게 될지도 모른다.

지구 저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남의 나라 일이라고 방심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환경, 우리의 건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역설적이게도 디젤 열풍이 부는 이 시점에 우리는 디젤 자동차가 내뿜는 배기가스에 대한 종합적인 점검이 필요해 보인다. 때를 놓쳐 프랑스처럼 디젤 정책의 실패를 선언하기 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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