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릴은 곧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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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2.06 11:03
그릴은 곧 브랜드의 트레이드 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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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릴은 헤드램프와 함께 자동차의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또 그릴은 대부분 플라스틱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변화 효과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페이스리프트 모델은 99% 그릴 디자인이 변경된다.

하지만 아무리 자유분방한 디자이너라도 기능적 역할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그릴이다. 그릴은 엔진으로 빨려들어가는 공기의 통로이자 엔진의 열을 식혀주는 기능까지 도맡아야 한다. 

그릴 디자인은 경향을 따른다기보다 각 브랜드의 개성이 중시되는 방식으로 발전했다. 그릴 디자인에도 전통이 깃들었다. BMW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들의 ‘키드니 그릴(Kidney)’은 80년 넘게 유지되고 있고 BMW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아우디의 ‘싱글프레임 그릴(Single Frame)’, 렉서스 ‘스핀들 그릴(Spindle)’, 현대차 ‘헥사고날 그릴(Hexagonal)’ 등 이제는 여러 브랜드가 그릴에 이름을 붙여 개성을 강조하고 있다.

전통을 이어온, 또 전통을 만들고 있는 독특한 그릴을 살펴본다.

# BMW 키드니 그릴

BMW에 키드니 그릴이 처음 적용된 것은 1933년 출시된 소형차 303부터다. 키드니란 이름처럼 두개의 신장처럼 길게 나뉘어졌다. BMW를 소유하고 있는 콴트 가문은 키드니 그릴의 중요성을 언제나 강조했다. 세부적인 디자인은 조금씩 변경됐지만, 지금까지 기본적인 특징은 이어지고 있다.

▲ BMW M4.

최근엔 그릴바의 갯수가 색상을 변경하는 방식으로 새로움을 추구하는데, 안전 때문에 자율성이 그리 높진 않아 보인다. 예전처럼 그릴을 세로로 길게 만들수도 없는 상황이다. BMW는 헤드램프와 그릴을 연결시키면서 또 다른 변화를 추진하고 있다.

▲ ① 1933년 303 리무진. 최초의 키드니 그릴이 적용됐다. ② 1940년 328 캄 쿠페. 타원형으로 길게 늘어진 키드니 그릴. ③ 1989년 8시리즈. 키드니 그릴의 디자인은 조금씩 변경됐지만 두개로 나뉜다는 특징은 변하지 않았다. ④ 2011년 M3. 현재의 키드니 그릴은 큰 변화보단 세부적인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 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

아우디 싱글프레임 그릴의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싱글프레임 그릴 이전에는 평범한 네모 그릴이었다. 그릴 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디자인 콘셉트가 각이기도 했다. 클래식한 디자인 콘셉트를 꽤 오랫동안 유지한 셈이다.

▲ 아우디 A6.

아우디 그릴 디자인의 변화는 2003년 제네바 모터쇼를 통해 공개된 ‘누볼라리 콰트로’와 같은해 프랑크푸르트 모터쇼를 통해 선보인 ‘르망스 콰트로’ 콘셉트부터다. 아우디는 콘셉트카를 통해 싱글프레임 그릴을 선보인 후 2004년 A3 스포트백에 처음 적용했다.

▲ ① 1988 아우디 콰트로. 아우디는 이때만 해도 선과 면을 중요시했다. 네모반듯한 절도있는 디자인을 추구했다. ② R8의 모태가 된 2003 르망스 콰트로 콘셉트. ③ 누볼라리 콰트로 콘셉트. 싱글프레임 그릴의 시작을 알렸다. ④ 2004 A3 스포트백. 초기 싱글프레임 그릴 디자인이 적용됐다.

싱글프레임 그릴은 처음엔 사다리꼴이었지만 조금씩 각이 뚜렷해졌다. 현재는 육각 형태로 발전했고, 가로 및 세로 그릴바를 적용해 각 모델마다 개성을 부여하고 있다.

# 렉서스 스핀들 그릴

스핀들 그릴은 어느새 렉서스를 상징하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그 파격적인 디자인은 단번에 렉서스의 이미지를 바꿔놓았다.

▲ 렉서스 NX.

렉서스는 정숙성, 안락함이란 성격을 전면에 내세운만큼 외관 디자인도 무난했다. 스핀들 그릴 이전의 그릴은 너무나 평범했다. 별다른 콘셉트도 없었다. 그저 기능에만 충실했다. 그러던 2011년, 뉴욕 모터쇼에서 렉서스는 파격적인 디자인의 콘셉트카 LF-Gh를 공개했다. 콘셉트카에 적용된 스핀들 그릴은 곧바로 신형 GS와 ES에 적용됐다.

▲ ① 2002년형 LS430. 그야말로 무난한 대형차 디자인. 튀는 부분이 하나도 없다. ② 2009년형 GS350. GS는 언제나 렉서스 라인업에서 멋을 담당했다. 이전 세대 모델도 보수적인 렉서스 중에서는 꽤 시도가 많았다. ③ 2011년 공개된 LF-Gh. 스핀들 그릴의 시작을 알린 콘셉트카. ④ GS는 스핀들 그릴을 통해 완전히 다른 얼굴을 갖게 됐다.

렉서스는 스핀들 그릴 이후 마치 그동안 얌전한 이미지로 쌓였던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듯 더욱 과격한 디자인의 신차를 만들었다. LF-NX나 LF-LC 콘셉트카 디자인의 대부분은 양산차로 이어졌다.

# 현대차 헥사고날 그릴

그동안 현대차에 특별한 디자인 마케팅 용어가 없었을 뿐이지, 나름 2000년대 중후반부터 패밀리룩에 대한 개념을 갖고 있었다. 특히 유럽에서 판매되던 i시리즈는 현재 현대차 패밀리룩에 근간이 됐다고 볼 수 있다. 또 현대차 북미 디자인센터에서 제작한 2004 HCD-8 콘셉트나 2006 HCD-9 콘셉트 등도 현재 디자인의 뿌리라 할만하다.

▲ 현대차 i30 터보.

현재의 현대차를 대표할 수 있는 헥사고날 그릴은 2009년 공개된 ix-onic 콘셉트카에서 시작됐다. 이차는 투싼ix로 이어졌고, 2011년 블루2 콘셉트카에서 육각형태의 그릴이 더욱 뚜렷해졌다. 2012년에는 이름부터 육각을 강조한 헥사 스페이스 콘셉트가 등장하기도 했다.

▲ ① 2006년 HCD-9. 현대차 캘리포니아 디자인 센터에서 제작한 콘셉트카. 당시엔 플루이딕 스컬프처 같은 디자인 정체성이 없었음에도 묘하게 현재의 현대차 디자인과 닮았다. ② 2009년 ix-onic. 투싼ix의 모태가 된 콘셉트다. 헥사고날의 윤곽이 선명하다. ③ 2011년 블루2 콘셉트. 육각 그릴을 전면에 내세웠다. ④ 2012 헥사 스페이스. 양산차의 그릴 디자인과 큰 차이가 없다.

플루이딕 스컬프처 2.0으로 불리는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은 제네시스, 쏘나타, i40 등으로 이어지면서 현대차만의 확고한 색을 나타내고 있다.

# 지프 7슬롯 그릴

투박해 보이는 지프도 디자인에 있어서 확실한 정체성을 갖고 있다. 특히 고유한 그릴 디자인은 지프의 초기 모델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 지프 레니게이드.

공식적인 이름은 없지만 주로 ‘7슬롯 그릴’이라고 불린다. 지프 윌리스의 경우 세로 구멍이 9개였고 10개가 뚫린 모델도 있었다. 또 1974년 체로키는 구멍이 20개 정도는 됐다.

▲ ① 1943 지프 윌리스 MB. 그릴의 슬롯은 9개였다. ② 1997 랭글러. 그릴 슬롯은 7개로 변했지만, 디자인의 방향성은 변한게 없다. ③ 2008 리버티. 맡은 임무는 랭글러와 다르지만 얼굴은 비슷하다. ④ 최신 디자인이 적용된 그랜드 체로키. 지프의 디자인도 미세하지만 세련미가 생기고 있다.

하지만 점차 디자인 콘셉트가 확립되면서 7개의 구멍으로 고정되기 시작했다. 어쨌든 지프는 전체적인 디자인은 물론 그릴 디자인의 콘셉트도 원조 지프의 것을 잘 이어오고 있다.

# 롤스로이스 판테온 그릴

고대 신전의 디자인과 그 영엄함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판테온 그릴은 곧 롤스로이스의 역사다. 롤스로이스가 처음 차를 만들때부터 판테온 그릴이 달렸고, 그 디자인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 롤스로이스 팬텀.

최고급 브랜드 일수록 역사와 전통을 강조한다. 롤스로이스 또한 역사와 전통에 죽고 사는 브랜드다. 판테온 그릴이나 환희의 여신상은 롤스로이스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자리에서 롤스로이스의 품격과 위상을 높여줄 것이다.

▲ ① 1928년 제작된 롤스로이스 팬텀1. 신전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했다는 판테온 그릴의 윤곽이 뚜렷하다. ② 현재의 팬텀. 그릴바가 더욱 촘촘해졌을뿐 콘셉트는 변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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