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깎아주지 않는 국산차, 눈감는 공정위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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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8 12:52
[기자수첩] 깎아주지 않는 국산차, 눈감는 공정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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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깎아팔 수 없으니 상품이라도 많이 드려야죠”

현대차의 대리점 직원들은 볼멘 소리를 한다. “현대차 지점의 영업 사원들은 다 현대차 정직원들이니까 기본급이 많고, 판매 수당은 적어요. 그러니까 베짱 장사를 할 수가 있지” 한숨을 쉬더니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손님들이 원하는대로 블랙박스도 주고 내비게이션도 주고, 이래저래 끌려다닐 수 밖에 없어요“라고 하더니, “우리는 계약만 하고 차는 본사에서 받는데, 굳이 (현대차 영업소) 지점을 갈 이유가 뭡니까”라고 되물었다. 똑같은 차를 계약하는 곳만 다른데도 대리점보다 지점을 찾는 손님이 많은 점이 이상하다는 말이었다. 

심지어 최근엔 현대차 점유율이 떨어지고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금기시 돼 있는 할인 판매도 이뤄지고 있다고 했다. “원래 깎아 파는건 금지인데요. 대리점과 달리 우린 수당을 받으니까, 그걸 달라고 하는 손님도 있어서 어쩔 수 없어요”라고 털어놨다.

드라마에 등장한 현대자동차 직영점

# 불법인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국산차에는 왜 눈감나

현대차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대리점에 단일 가격을 강제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사업자의 가격 결정권이 침해되고 경쟁이 저하돼 소비자가 누려야 할 혜택이 줄어든다. 

일선 대리점에서는 이같은 정책이 조금씩 무너진다. 다양한 상품을 제공하기도 하고 경우에 따라 깎아팔기도 한다. 이게 자연스런 현상이지만 본사가 알게 되면 여러가지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이 두려워 공개되길 꺼린다. 

사실 제조사가 대리점에 판매 가격을 강요하는 행위, 즉 '재판매 가격 유지행위' 자체가 위법이다. 현대차 대리점이 가격을 깎아 팔지 못하게 하는 점은 불공정거래로 볼 수 있다. 

공정위는 지난 2007년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딜러(대리점)에게 가격을 강제하고 상품권을 지급하지 못하도록 했다는 점에서 공정거래법을 위반했다면서 시정명령을 내린 적이 있다. 하지만 국산차 제조사들에게 이런 법은 통하지 않는다. 

우선 가격 강제 행위는 암암리에 일어나는데다 일반적으로 자동차 제조사가 우월적 위치에 있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워낙 갑을 관계가 명확하다보니 대리점 입장에서 강압적인 상황을 털어놓기 어렵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사건의 경우도 당시 유진앤컴퍼니가 억울하게 딜러 지위를 잃게 되면서 각종 비밀 문서를 공개하고 직접 신고하면서 밝혀진 일이지, 조사만으로는 알기 어렵다는게 공정위 측의 설명이다.  

더구나 현대기아차 등 국산차 제조사들은 위탁판매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제재가 더 어렵다. 제조사들은 자신들이 생산 및 판매하는 제품을 대리점에서 대신 계약 해주고 수수료만 받는 '판매 위탁'을 하는 것인만큼 제조사가 정한 가격대로 판매해주는게 당연하다고 주장한다. 

'명확한 위탁판매'의 경우 공급자가 판매 가격을 정하더라도 당연히 문제가 없다. 하지만 이 때문에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위장하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 악용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국산차의 경우도 재고에 대한 위험이 사실상 대리점에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로 볼 수 있고 미국에서는 이와 유사한 경우에 대한 판례도 여러차례 나와있다. 

불보듯 뻔한 상황을 놓고 ‘증거없다’고 손놓고 있는건 우습다. 가격에 대한 고유 권한을 대리점이 갖도록 해야 소비자도 다양한 혜택을 떳떳하게 누릴 수 있을 것이고 국산차 제조사들도 내수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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