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맛없는 맥주는 망한다…"아 옛날이여"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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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5.01.01 23:26
[기자수첩] 맛없는 맥주는 망한다…"아 옛날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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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이트 맥주를 맛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시원했다. 씁쓸하고 고리타분한 향의 OB맥주만 있던 시절, 물처럼 스르르 목을 타고 넘는 문화적 충격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하이트의 성공은 너무나 대단해서 OB맥주가 평정하고 있던 시장을 단숨에 뒤집었다. 크라운맥주라는 이름으로 지지부진하던 조선맥주는 주식회사 하이트로 사명까지 변경하면서 승승장구했다. 

물론 옛날 얘기다. 하이트가 내놓은 싱거운 맥주가 주를 이루며 다시금 맥주 업계는 나태해졌다. 우리나라 맥주 회사는  죽을 맛이다. 수입맥주가 밀어닥쳐 국산 맥주의 설자리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북한의 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다’는 말까지 나온다.

어쩌면 옛날이 좋았다고 할지 모른다. 맥주라고는 OB와 크라운 밖에 없던 시절에는 그저 OB만 제치면 그만이었다. 맥주 시장이 완전히 뒤집히고, OB는 외국 자본으로 넘어간지 오래지만 제대로 된 맥주가 나오지 않았다. 

미안하게도 시장은 기억력이 없다. 아무리 단골손님이었다 해도 더 나은 제품이 나오면 언제고 갈아타는게 소비자의 심리다. 더 훌륭한 제품들이 더 싼 가격에 진열대에 전시되는데야 수입 맥주를 마시지 않을 소비자가 있을까. 더구나 맥주 제조사들이 더 나은 맥주를 개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수입맥주를 수입, 라이센스 생산해 판매하는 쪽으로 눈길을 돌리고 있으니, 우리 맥주는 점차 쇄락의 길로 들어선다고 볼 수 있겠다. 

# 현대차, 크라이슬러, 푸조...김빠진 차 제조사

현대차와 크라이슬러, 푸조 같이 어려움을 겪는 회사들의 공통점이 있다. ‘맛’이 없다는거다. 그럭저럭 실용적이거나 연비가 그런대로 괜찮다는 정도인데, 그걸론 아직 부족하다. 김빠진 맥주, 맛없는 맥주라도 그저 취한다고 마셔주는 소비자 같은건 자본주의 세계엔 없는게 보통이다. 설령 있었다고 해도 문호가 개방되고 여러나라 맥주를 맛보면 자연히 등을 돌릴 수 밖에. 

그동안 현대차는 언제나 높은 수익성을 일등 과제로, 자랑거리로 삼았다. 따라서 안팔리는 차는 절대 만들지 않는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지금 엄청난 공룡으로 성장한 포르쉐나, 메르세데스-벤츠 AMG, 페라리, 람보르기니 같은 스포츠카 회사들을 보자. 모두 안팔리는 차만 만들어온 회사다. 이들은 시장이 원하는 차가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하는 차를 만들었고, 그게 성공의 비결이 됐다.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같은 최고급 자동차 메이커들도 비록 주인은 바뀌었지만, 최고를 추구하는 정신은 지금껏 남아 그룹사에 막대한 이익을 돌려주고 있다. 이들 역시 너무 외골수라 할 만큼 최고를 추구하던 브랜드였다.

마른 수건도 쥐어짠다던 도요타만 해도 이제는 막연히 시장을 따라가는게 아니라 자신들이 추구하는 방향을 세우고 이를 따르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슈퍼카 LFA를 내놓는가 하면 고성능 쿠페 RC F나 미래에서 온것 같은 초소형 SUV인 NX까지 내놓는데, 라인업이며 방향성이 심상치 않다.

뻔한 자동차만 내놔도 먹고 사는데야 지장 없을텐데 굳이 이렇게 모험에 뛰어드는건 나태로움의 결말을 눈치챈 위기감 때문이다. 미국의 둔감한 소비자들이나 중국 인도 같은 신흥시장에서야 아무차나 만들어내면 족족 팔리는 상황이었겠지만, 앞으론 그저 그런 자동차를 내놔선 살아 남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자동차 회사들도 이젠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이젠 더 이상 눈치 보거나 따라하는데 만족하지 말고 자기 색깔을 내야 한다. 신년도 됐으니 끝으로 우리나라 최대 자동차 회사에 당부 한마디만 하자.

현대기아차는 부디 안팔릴 차를 만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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