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경차 제도, ‘비관세 무역장벽’인걸 모르셨어요?
  • 김한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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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12.24 09:39
[기자수첩] 경차 제도, ‘비관세 무역장벽’인걸 모르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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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발표한 모터그래프 2014 10대 뉴스에 포함되지는 않았지만, 올해 네티즌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킨 차들이 있었다. 유럽에서는 슈퍼미니(supermini)라고 분류되는 폭스바겐의 초소형차 업!(UP!), 그리고 르노 트윙고, 신형 스마트 등이다. 업!이 1000만원 후반대의 가격에 출시될 것이라며 김칫국을 마시는 이도 있었고, 르노 트윙고가 SM1이라는 이름으로 국내 경차로 판매될 것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그만큼 색다른 경차에 대한 관심이 많다는 방증이다.

▲ 위로부터 신형 스마트 포투, 르노 트윙고, 폭스바겐 업! 국산 경차보다 길이는 짧지만 폭이 넓어 경차 취급을 받지 못한다. 

하지만 유럽산 소형차들이 불과 5cm 정도의 폭 차이로 인해 국내 들어오면 한 등급 높은 소형차 취급을 받게 된다는 점, 그 때문에 내야 하는 세금으로 인해 차값과 유지비가 훌쩍 뛴다는 점 때문에 네티즌들은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해외 소형차의 보편적 기준에 맞도록 우리 경차 기준을 확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 업계와 정부 모두 경차 제도를 비관세 무역장벽으로 활용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 일본에서 시작된 경차 제도...갈라파고스를 낳다

경차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일본과 우리나라 밖에 없다. 일본은 K-CAR라는 이름으로 경차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1945년 2차대전 패망 직후 일본은 한정된 자원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차를 보급해야 했기 때문에 100cc급에 차체 크기도 제한한 경차 제도를 만들게 됐다. 그러나 일본 경제가 발전하면서 소비자 눈높이가 높아짐에 따라 점차 상품성이 향상돼 일반 자동차와 경계가 모호해졌다. 1998년까지 차체는 꾸준히 커졌고 배기량도 660cc까지 늘어났다. 

하지만 절대로 넘지 않는 수치는 유럽산 소형차들의 최소한의 기준이다. 일본 K-CAR의 전장 전폭 기준은 세계 어떤 자동차회사도 만들지 않는 수준에 머물렀다. 따라서 어떤 나라 초소형차도 일본에선 맥을 못췄다. 세계에서 가장 짧은차, ‘스마트’도 일본에서는 폭을 줄인 전용 모델을 만들어야 했다. 심지어 한국의 경차도 일본에선 너무 크기 때문에 K-CAR 혜택을 받지 못했고, 경쟁력이 부족해 투입조차 하지 못했다.

▲ 점점 괴상해지는 일본의 K-CAR. 

반면 K-CAR의 높이 제한은 2미터까지 열려 있었기 때문에 이 한계에 맞춰 각지고 키큰 자동차들이 여럿 생겼다. 경차 비중이 25%를 넘고, 일본 국민들 눈도 그런 쪽에 맞춰진 것 같다. 소형차나 준중형차까지 세계 어디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깍두기’ 디자인이 태반을 차지했다. 그 결과 일본의 수입차 비중은 우리나라의 절반인 7% 정도에 머물렀다.  

# 누구를 위해 경차는 울리나...보호무역, 경쟁력 약화만

일본은 우핸들 차량이 기본인데다 2005년부터 발효된 우리의 배기가스법규는 미국방식을 채택하고 있어 일본 경차는 애초에 수입이 불가능해 경쟁상대가 아니다. 때문에 우리나라의 경차 규격은 일본 경차보다는 크고, 유럽 초소형차보다는 작게 유지되고 있다.

특히 차체 폭이나 길이는 안전을 위해서도 중요한데, 이 규격이 워낙 작아 쉐보레 스파크 같은 경우 국내 판매 모델만 범퍼 길이를 줄여 판매하는 등 안전에도 위협이 되고 있다. 현대차의 해외 전용 경차 i10도 신모델에서는 충돌시험 대비와 실내공간을 늘리기 위한다는 이유로 우리나라 경차 제한 크기를 넘어섰을 정도다. 

▲ 우리나라 경차 규정을 넘어선 해외전용 경차 현대 i10.

하지만 국내서도 경차에 주는 세금 혜택으로 인해 품질 좋은 유럽 초소형차들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알게모르게 기아 모닝이나 레이, 쉐보레 스파크 등 단 3종의 경차 판매가 전체 승용차 판매의 20% 가까이 차지하는 상황이다.

물론 자국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앞세우다보면 외국산 소형차가 들어오는 점이 큰 위협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일본 소형차들이 갈라파고스화 돼 괴상한 모습으로 변화되는 점이나 국제 경쟁력을 점차 잃어가는 모습을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해외 시장은 우리나라 시장에 비해 훨씬 크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계는 100을 만들어 80을 수출할 정도로 해외 시장 중점으로 성장해왔다. 이제 방어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국내 시장에서도 핸디캡 없는 치열한 경쟁을 시작해야 한다. 그래야만 해외에서도 당당히 경쟁할 수 있는 차가 만들어지고, 그게 국민과 제조사 모두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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