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현대차 '연비 논란'…4.2%의 '꼬리자르기'
  • 김한용 기자
  • 좋아요 0
  • 승인 2014.08.14 10:31
[기자수첩] 현대차 '연비 논란'…4.2%의 '꼬리자르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어쩐일인지 다급한 행보를 보였다. 휴가 중이던 8월 5일, 갑자기 '연비 과장 사건’의 진원지인 미국 방문길에 오르더니, 돌아오자마자 대뜸 싼타페의 연비를 조정하고 구매자 전원에게 40만원씩 총 500억원 넘는 돈을 ‘쾌척' 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는 실상 ‘꼬리 자르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도 많다. 

12일 현대차는 국토부 주장에 따라 싼타페 2WD의 연비를 조정했다고 밝혔다. 이미 판매된 14만대의 싼타페를 구입한 소비자들에게는 최대 40만원을 ‘보상'한다고 했다.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최대 560억원, 중고차 판매와 구입 등을 고려해 '실 보상액'은 이보다 좀 낮아진다.

그런데 현대차가 내놓은 '조정 연비'가 묘하다. 국토부가 측정한 연비는 13.2km/l로 당초 싼타페의 연비인 14.4km/l에 비해 -8.3%(도심 -8.5%, 고속 -7.2%)나 부적합한데, 현대차가 조정한 연비는 -4.2%(13.8km/l)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법규는 5%의 오차를 허용하고 있어 이번에 발표한 13.8km/l는 현대차가 발표한 싼타페의 당초 연비인 14.4km/l의 허용 오차안에 들어갈 뿐 아니라, 국토부가 측정한 13.2km/l의 오차 범위안에도 든다. 사실 국토부가 내놓은 연비와 당초 싼타페 연비의 딱 중간 값이다.

▲ 싼타페 연비 조정. 정확히 오차 허용 범위 가운데다.

만일 국토부의 주장처럼 5% 넘는 오차가 난다면 현대차는 범법행위를 한 셈이 되므로 10억원(상한액)의 과징금을 내야 할 뿐 아니라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더구나 소비자에게는 보상(compensation)이 아닌 배상(reparation)을 해야 한다. 보상을 하면 40만원을 주고 끝낼 수 있는 사안이지만 '배상'을 하는 경우 각 피해자의 피해 규모를 일일이 따져 주행거리에 따른 모든 손해를 물어줘야 하므로 금액이 막대하게 커질 가능성이 있다.

앞서 현대차는 연비과장 사건이 일어난 미국에서도 ‘불법 행위'가 아니라 '착오'로 인한 것이었다며 소비자에게 ‘배상'이 아닌 ‘보상'을 하는 것으로 합의했다. 국토부도 8월말~9월 중순내 청문을 통해 현대차와 관련자들의 입장을 듣는다는 방침이지만, 결국 이례적인 이번 조치를 받아들여 현대차에는 과징금을 부과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백번 양보해 ‘보상’으로 진행 한다 해도 금액은 탐탁치 않다. 만약 당초 국토부 조사 결과대로 연비가 -8.3%로 낮춰졌다면 5년 주행 기준으로 1인당 79만원 정도를 보상 했어야 하는데, 현대차가 내놓은 조정 연비(-4.2%)로 하면 40만원 정도로 줄어들게 된다. 이로서 현대차가 지불할 총 비용도 1000억원 정도에서 500억원 정도로 줄었다.  

또한 이번 현대차의 '조정 연비'는 스스로 재측정하고 누구의 검증도 받지 않은 독자적인 수치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자가인증 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부적합’ 판정시 재 측정도 제조사가 하는게 마땅하다”면서 “연비가 13.8km/l로 나온 것은 국토부가 시행했다는 '가혹한 조건'에 맞춰 현대차가 자체 시험한 결과로 나온 값”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국토부가 '현대차가 자체 시험한 결과가 잘못됐다'고 지적한 사안인데, 잘못을 저지른 주체에게 재 측정을 시킨다는 건 이치에 맞지 않다. 마치 과속운전자에게 몇킬로로 과속 했는지를 묻는다거나 음주운전자에게 몇잔이나 마셨는지를 물어서 처벌하겠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