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지난해 12월 구입한 제네시스 3.3 4륜구동 모델. 차를 운행한지 벌써 7개월이 넘어섰고 주행거리도 1만4000킬로가 넘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핸들이 오른쪽으로 쏠리고 있다. 처음엔 그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어째선지 점점 쏠리는 폭이 커진다. 

일정하게라도 쏠리면 왼쪽으로 바로 잡은채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을 것도 같은데, 조향감이 약간 허술한 느낌이어서 고속도로에서 직진하는 중에도 계속 보타를 해줘야 한다. 커브길에 들어서면 더 이상한 느낌이 든다. 핸들을 잡고 돌면 꽤 잘 받쳐주는데, 손을 놓아도 핸들이 꺾인 그대로 멈춰있다. 다시말해 잘 풀리지 않는 느낌이어서 의식적으로 핸들을 진진 방향까지 풀어야 했다. 

 

이런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놀랍게도 기존 현대기아차를 타던 운전자들은 대부분 별다른 문제를 파악하지 못했다. 습관적으로 핸들을 보타하는게 익숙해 있어서인가보다. 동영상을 찍어서 지금 자신이 핸들을 조금씩 좌우로 꺾고 있다는걸 보여주니 그제야 놀란다. 아마 현대차 직원들도 같은 상황일 것 같다.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어서 이게 문제라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듯 하다. 

문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현대기아차 핸들을 설계하는 전문가를 찾았다. 차가 평탄한 길에서 꾸준히 달리는걸 보여줘야 할 것 같아서 주말의 한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만났다. 

◆ 괜히 '전문가' 아니네…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

현대기아차의 핸들을 설계하는데 많은 사람이 참여하지만, 각기 분야가 명확하게 구분 돼 있었다. 때문에 이 전문가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핸들의 여러 부분 중 한가지를 맡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중대한 역할을 하는 인물이었다. 

고속도로에서 만나기로 한건 괜한 기우였다. 전문가는 차에 앉은지 불과 10초만에 문제를 파악해냈다. 핸들을 두 손가락으로 살며시 잡아 오른쪽으로 한번 돌려보고 반대로 돌리더니 결함이 심각하다고 했다. 그는 "문제있는 차를 여럿 봤지만, 테스트했던 가장 문제 있는 차보다 더 문제 있는 차”라고 말했다. 또, “초기 생산분에 조향감 문제가 꽤 있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이 제네시스의 문제는 얼라인먼트가 아니라 핸들이 뻑뻑해지는 결함이었다. 오른쪽과 왼쪽의 반발력이 다르다고 했다. 과연 그 말대로 오른쪽으로 돌릴때는 매끄러웠지만, 반대로 돌릴때는 미세하게나마 분명하게 ‘턱, 턱’ 걸리는 느낌이 발생했다. 그런 문제가 있다면 차가 한쪽으로 쏠릴 가능성도 있고, 깊은 코너링을 할때는 핸들이 잘 풀리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탁 쳤다. 마치 쪽집게 점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원래 제네시스는 핸들이 기계적으로 잘 풀리지 않는 경향이 있어서 전동모터를 통해 풀어주게 돼 있는데, 이게 제대로 동작하지 않으면 잘 안풀린다고 했다. 2륜보다 4륜구동 모델이 더 안풀려서 더 확실하게 풀어줘야 이질감이 없다고도 했다. 
전문가는 자신이 몸담은 회사에서 불편을 끼치게 돼 죄송하다며 자신이 몸소 차를 수리해준다고 했다. 황송한 말이었다. 시간을 잡아서 알려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 현대기아차 서비스센터…문제 없는데요? 저 시간 없거든요. 

아무래도 설계자에게 차를 고쳐달라는건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제네시스를 몰고 현대기아차 직영 공장을 찾았다. 예약한 1시에 찾아가 차를 맡겼다. 접수증에는 '조향 감각이 이상하니 점검 요망’이라고 적었다. 

그러고 나니 어떻게 된다는 얘기도 없이 마냥 기다려야 했다. 접수를 받는 사람은 엔지니어는 아닌 듯 했다. 앉아서 기다리면 된다고만 했다.

센터안에서는 커피를 따로 제공하지 않았고, 유상으로 판매하고 있었다. 3000원짜리 커피와 2000원짜리 베이글을 먹고, 한시간쯤 지나니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상대방은 이제서 "어디가 이상하냐"고 물었다. “핸들이 이상하다. 조향감각도 이상하고 정상이 아닌것 같다”고 말했더니 더 듣지도 않고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내려오겠다는 건가. 어디가 이상한지 모르겠다고 하면 핸들을 돌려가며 보여줘야 하는데, 묻지도 않는걸 보면 역시 전문가인건가 싶었다. 

▲ 지난 6월초, 제네시스를 현대차 직영 공장에 입고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회사 로고를 붙이지 않았다.

2시간을 더 기다렸다. 접수 창구의 직원이 “다 됐습니다. 안녕히 가세요”라고 한다. 핸들 수리를 한건가 묻자 “저는 잘 모르는데, 전화 통화를 해보시죠”라고 했다. 그가 바꿔주는 전화에 너머에서 엔지니어가 어수룩한 말투로 대꾸했다. 엔지니어는 수리를 전혀 한게 없고 나름대로 점검을 해보니 문제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날은 아예 정비사의 얼굴조차 볼 수 없었다. 애초에 정비사와 만나자는 예약을 해야 한다고 했다.  

아래는 이날 통화 내용 전문. 

(전략)
점검을 해봤더니 아무 문제가 없는데요

M) 엔지니어님이 느끼는거 말고 저희가 느끼는것도 있잖아요.

전화드렸을때 얘기하셨으면 해보고 그러는데. 아까는 얘기를 안하셔서 그냥 넘어갔죠. 죄송하지만은, 지금 시간이 좀 없거든요. 차가 밀려있어가지고... 제가 볼때는 객관적으로 문제는 없는것 같은데, 쏠리는건 타이어 문제도 있을수 있고, 얼라인먼트에 문제도 있을 것 같은데, 나중에 시간이 되시면 한번만 더 들어오셨으면 좋겠는데

M) 제가 3시간 기다렸는데 얼굴만 좀 뵙고 가고 싶은데요. 

얼굴을요?

M) 그게 안되나요. 무슨 문제인지 말씀을 드려야 하는데, 파악을 못하신거예요. 보시면 확실히 아실텐데.

지금 제가 보더라도 해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안돼서요

M) 그럼 문제다, 아니다 이런것만이라도 말씀해주실 수 없을까요?

그건 운전을 해보면 바로 나오는데. 제가 안본게 아니잖아요. 죄송하지만은, 정확하게 진단하려면 부족하잖아요

M) 제가 4시간을 드렸는데 진단이 부족하다는건가요?

4시간은 아닌것 같은데. 예약을 1시5분에 들어갔으니까 2시간 정도를 했는데. 제가 이것저것을 하고 점검한 부분이고 그랬는데 제가 손님이 원하는 부분을 봐드리려면 시간이 없거든요. 

M) 그럼 처음부터 물어 보셨어야 하는거 아닌가요. 가만 앉아있으라고만 했지.

아니 그건 아니죠. 물어봤다고 그랬잖아요.

M) 물어볼때 핸들을 점검해달라 이렇게 말씀을 드렸어요

점검은 다 한거예요. 

M) 핸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는 물어보지는 않았잖아요. 엔지니어와 만나뵙고 얘기를 나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만나뵙는 시간이 전혀 없는건줄은 몰랐네요.

아, 지금 제가 또 하나 맡았는데 작업량이 많아요. 죄송하지만은 시간을 한번 더 내셔가지고, 작업자를 꼭 만나고 싶으면 매니저에게 얘기를 하면 만나실 수 있을거예요. 

M) 보통은 작업자를 만날수가 없군요

아뇨 필요에 따라서 직접 만날 수가 있어요. 스타일이 다르니까. 같이 운전할 수도 있어요.

M) 여튼 지금은 내려와 주실 분이 아무도 없나요.

내려갈 사람이 지금 없는데.

M) 아무도요?

차를 하나 맡으면 출고까지 하나를 맡기 때문에 제가 어떻게 말을 못해요.

M) 여기 접수처에 계신 분도 이런걸 얘기해주실 수 있는 분이 아니지요?

네. 

◆ 현대기아차는 수리중

차에서 가장 중요하게 개발돼야 할 부분은 대체 어딜까. 인간이 차를 조종하는 유일한 부분은 바로 핸들과 페달이다. 페달의 감각은 그리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지만 핸들의 감각은 아주 미세한 차이라도 운전자는 반드시 느낀다. BMW가 다른 브랜드보다 운전 감각이 좋다거나 하는 것들도 모두 다름아닌 조향감에서 오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기아차는 핸들 감각에 대한 투자를 거의 기울이지 않았다. 오히려 원가절감 효과를 위해 유압식 파워핸들 대신 그 자리에 C-MDPS를 장착했다. 더구나 현대차는 투싼 등 유럽 지향 모델은 핸들 구성을 두가지로 나눠 내수용은 원가가 싼 C-MDPS를, 유럽 수출형에는 이보다 훨씬 비싼 R-MDPS를 달겠다는 계획이다.

C-MDPS는 운전자 가까운 실내에 모터를 장착하는 방식이어서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반면 조향감각이 어색해지기 쉽다. R-MDPS는 엔진룸 아래의 바퀴 조향축에 붙어있어 기존 유압식과 비슷한 감각을 주지만, 방수처리를 해야 하고 사용 온도가 매우 높아 C-MDPS는 물론 기존 유압식 조향장치에 비해서도 30~40% 가량 더 비싸진다.

이번 제네시스에는 현대차 역사상 처음으로 R-MDPS(R-EPS)를 장착했지만 아직 완벽한 상태는 아니다. 한국GM 같은 경쟁사가 중형까지 일찌감치 R-EPS(DP타입)를 장착 해온 것에 비하면 턱없이 늦었고 기술 축적도 덜 된 셈이다. 처음 적용한 부품이라면 이걸 어떤식으로 시험하고,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 서비스 센터에까지 모두 전달해야 옳았다. 그러나 차를 설계한 사람이 우려하고 있는 것을 차를 판매하거나 수리하는 쪽에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제네시스가 밸트타입 R-MDPS를 처음 적용한 차지만 LF쏘나타는 듀얼피니언타입 R-MDPS를 처음 적용한 차다.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모르지만, 적어도 소비자 접점에 있는 직원들이라면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인지하고 회사내에 공유하는 분위기가 생기면 좋겠다. 그저 "내가 보기엔 별 문제 없더라”는 추정이나 방어적 태도로 점검을 끝내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하지 않을까. 

대부분 현대기아차에 장착되는 C-MDPS(좌측). 시계방향으로 제네시스와 BMW 등에 장착되는 벨트타입 R-MDPS(EPS). 현대 신형 쏘나타(LF)와 수출형 투싼 및 스포티지, GM의 준중형 급 이상에 장착되는 DP타입 R-MDPS.

모터그래프의 제네시스는 이후 다른 수리 업체를 찾아 얼라인먼트를 2차례 더 봤고, 서스펜션과 조향 관련 부품을 여럿 교환했다. 전에 비해 나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오른쪽으로 조금씩 쏠리고 있다. 원인은 아직 불명인데 조향 시스템 자체를 교체하려 준비중이다. 현대차가 문제를 인정해주지 않으니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든다. 

문제는 이 차만 이런게 아니라는 점이다. 가끔 현대기아차를 시승하다보면 이상하리만치 핸들이 쏠려있는 경우를 자주 겪게 된다. 지금 이 순간도 거리를 다니는 수많은 현대기아차의 핸들이 조금씩 삐딱하거나 자꾸만 보타를 해야 하는 상황일 것이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서비스센터에선 항상 문제 없다고 답했을거다. 그러나 사실대로 말하자면, 현대기아차의 핸들은 아직 수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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