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트라이더] (1) 예상치 못한 대회 참가, “카트에 퐁당 빠지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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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7.18 10:08
[카트라이더] (1) 예상치 못한 대회 참가, “카트에 퐁당 빠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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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더웠던 유월의 어느 날. 일요일이었지만 알람은 새벽 5시에 울렸다. 눈을 뜨자 마자 책상에 놓인 헬멧과 레이싱 장갑을 쥐어들고 집을 나섰다. 그날은 난생 처음으로 서킷에서 승부를 겨루는 날이었다. 

며칠전 한 선배로부터 메시지를 받았다. 카트 대회에 나갈 생각있냐고. 너무 갑작스런 얘기였는데, 왠지 모르게 끌렸다. 카트라니, 또 대회라니. ‘녹색 지옥’ 뉘르부르크링도 달려봤지만, 정작 서킷에서 앞차를 추월하거나 뒤를 힐끔거리며 자리 싸움 해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더욱이 카트라곤 주구장창 가속페달만 밟아도 부족했던 레저카트 두어번 타본게 전부였다.

▲ 일요일 오전. 선수들과 스텝들은 경기 준비에 여념이 없다.

결국, 올시즌 야마하 SL 컵에 신설된 ‘MZ220’ 클래스에 출전하게 됐다. 일반인 누구나 참가할 수 있는 클래스다. 카트의 저변 확대를 위해 탄생한 클래스다. 레저카트와 선수들이 타는 레이싱카트의 중간 정도로 보면 되지만, 레이싱카트에 훨씬 가깝다. 결코 만만한 클래스는 아니었다.

◆ 스포츠카트에 오르다, 시속 60km의 롤러코스터

MZ220 클래스에서 사용되는 스포츠카트는 레이싱카트와 같은 섀시를 사용한다. 여러 부품도 동일하다. 가장 큰 차이점은 엔진이다. 스포츠카트는 4행정 220cc 엔진이 장착됐다. 최고출력은 12마력 정도. 레저카트는 6.5마력, 레이싱카트는 18마력 정도다. 또 레이싱카트는 2행정 1사이클이다.

▲ MZ220 클래스에 사용된 스포츠카트. 레이싱카트와 구조는 동일하다.

스포츠카트의 엔진은 크기만 다를뿐이지, 일반 자동차의 성격과 비슷하다. 엔진회전수가 급작스럽게 치솟은 2행정에 비해 반응은 다소 느리지만 입문용 답게 다루기 용이하다.

스포츠카트는 시속 60km를 살짝 넘는다. 말이 시속 60km지 체감속도는 시속 200km쯤은 되는 것 같다. 카트에 앉으면 머리가 고작해야 무릎 높이 정도에 위치하고 바람과 차체의 모든 진동, 충격을 온몸으로 버텨야 한다. 또 등 뒤에서 들리는 엔진 소리와 배기음도 속도감과 공포감을 고조시킨다.

▲ 선수들의 레이싱카트. 2행정 1사이클 100cc 엔진이 탑재됐다.

한뼘을 조금 넘는 스티어링휠은 원초적이다. 조향비는 1:1이다. 팔뚝의 근육을 쥐어짜내며 돌려야 한다. 스포크의 위치도 일반 자동차와는 달라 처음엔 다소 난감하다. 시트는 섬유강화플라스틱(FRP)로 제작됐다. 엉덩이가 비정상적으로 크다면 카트를 포기해야 한다. 시트포지션은 따로 조절할 수 없으며 안전벨트도 없다. 안전벨트가 없는 것은 충돌사고 시 카트 밖으로 몸이 빠져나오는게 더 안전하기 때문이다. 안전을 위해 헬멧, 장갑, 슈트, 목 보호대 등을 착용해야 한다.

▲ 어린 선수들은 본인이 직접 카트를 고치고 세팅까지 한다. 미케닉의 역할까지 담당하고 있었다. 참 대견스러웠다.

◆ “뜻대로 되는건 없다” 

7시 40분부터 파주 스피드파크에서 드라이버 브리핑이 시작됐다. 간단하게 경기 규칙과 출전 동의서를 작성하고 본격적인 경기가 시작됐다. MZ220 클래스에는 총 10명의 선수가 출전했다. 5명씩 A조, B조로 나뉜다. 주최 측의 재량으로 경기에 처음 출전하는 선수들과 경험이 있는 선수들은 각기 다른 조에 배치됐다. 나는 B조에 속했다.

▲ 본건 있어서 경기 전에 직접 서킷을 걷기도 했다.

브리핑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연습주행이 시작됐다. 카트 경험이 없다보니 시트에 앉는 것조차 쉽지 않다. 프레임이나 각종 와이어가 그대로 드러나 있기 때문에 조심스러웠다. 마른 편임에도 시트의 엉덩이 부분은 갑갑했다. 조금도 움직일 수 없게 밀착됐다.

출발신호가 떨어졌다. 연습과 예선은 큰 욕심없이 카트에 적응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1.2km에 달하는 서킷에 진입했다. 가속페달에 발을 살짝 대는 것만으론 속도가 높아지지 않는다. 꽤 깊숙히 밟아야 그제야 엔진이 반응한다.

▲ 파주 스피드파크는 꽤나 다이나믹한 코너의 연속이었다.

일단 한계치나 스티어링의 감을 전혀 알 수 없어서 가속과 브레이크의 반응만 신경 쓰기로 했다. 그럼에도 스핀의 연속이었다. 코너 앞에서 하드 브레이킹을 하면 어김없이 돌고 또 돌았다. 특별히 스티어링 조작을 하지 않았는데도 스핀하는 이유를 전혀 알 수 없었다. 이는 카트를 처음 타본 동료 기자에게서도 발생한 문제였다. 스핀을 피하기 위해 일찌감치 속도를 줄이며 코너에 들어가면 또 어김없이 추월당했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 어찌보면 스핀은 흔히 있는 일이었다.

사실 날 더 힘들게 한건, 체력. 바퀴를 거듭할수록 스티어링휠을 잡고 있기 힘들 정도로 팔뚝 근육이 부풀어 올랐다. 방향을 꺾는 것 조차 힘겨워졌다. 평소 운동을 소홀히 한것도 아닌데 긴장한 탓인지 온몸의 근육도 수축됐다. 나중에 알았지만 횡가속도를 온몸으로 버틴 탓에 시트에 눌린 옆구리와 연료통을 꽉 잡고 있던 무릎과 허벅지는 시퍼렇게 멍이 들었다.

◆ “아는 만큼 보인다”

카트 경기는 그 속도만큼이나 진행이 매우 숨가빴다. 15바퀴의 연습주행을 마친 후 문제점을 파악하기도 전에 예선이 시작됐고, 예선의 진행 속도도 무척 빨랐다. 첫 출전에 이미 혼은 반쯤 빠져나가 있었다.

예선주행 전에 치뤄진 일반 선수들의 야마하 KT100 클래스를 유심히 살폈다. 우리나라 모터스포츠의 유망주들이 대거 포진해있는 클래스다. 선수들은 변성기나 지났을까. 어린 선수들은 아주 살벌하게 카트를 몰았다. 한때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PC게임 ‘카트라이더’의 실사판이었다.

▲ 선수들의 경기를 유심히 봤다.

코너에서도 속도를 유지하지 위해 미리 방향을 틀고 코너에 진입했다. 당연히 코너를 탈출한 후 재가속도 빨랐다. 가속페달과 브레이크 페달의 조작법도 일반 자동차의 서킷 주행과는 조금 달랐다. 카트는 작은 만큼 훨씬 민감하고 조작의 타이밍도 신속해야 한다. 스티어링 조작도 마찬가지다. 차의 반응을 살피며 대응하려하면 이미 늦는다.

▲ 레이싱카트를 시동이 꺼지면 마치 봅슬레이처럼 밀면서 타야 한다. 어린 친구나 여성드라이버에게는 꽤 버거운 일이다.

◆ “트라우마를 극복하라”

첫 예선에는 4위에 그쳤는데, 최종 예선에서는 운좋게 한바퀴를 남기고 앞서가던 선수가 스핀해 유유히 그를 앞질렀다. 그래서 결승은 3번 그리드에서 출발하게 됐다. 결승의 전망을 더 밝게 한 것은 강력한 우승후보였던 2번 그리드 선수의 카트가 예선에서 약간의 충격으로 출력이 저하된 점이었다.

팔뚝이 아렸지만 결승은 7바퀴만 돌면 되는 상황. 투혼을 불태우기로 마음먹었다. 연습과 예선을 거치는 동안 랩타임도 매번 1초씩 줄여가고 있었고, 조금이나마 카트에 익숙해졌다.

▲ 아직 코너를 신속하게 도는 법을 마스터하지 못했다.

작전은 이랬다. 출발과 동시에 2번 그리드의 카트를 추월하고 1번 그리드 선수를 계속 쫓아가면서 경기를 마무리. 선두를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했고, 우승후보였던 2번 그리드의 선수가 후미 그룹의 추월을 잘 차단해준다면 큰 무리없이 경기를 마무리할 것 같았다.

출발과 동시에 작전대로 2위를 근소하게 앞지르며 나갔다. 첫 코너에서 진입하기 직전에 카트 반쯤은 앞서 있었다. 인코스를 먼저 점령해 코너에 진입했는데, 속도가 너무 빨랐던 나머지 곧바로 스핀했다. 욕심이 지나쳤다. 본의 아니게 내 뒤를 쫓던 선수에게 민폐를 끼쳤다.

그래도 스핀을 많이 해본터라, 중심을 빨리 잡았다. 하지만 1위는 이미 멀찌감치 갔다. 이왕 이렇게 된거 끝장을 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이글이글 타올랐다. 나를 쫓다 동시에 스핀한 다른 선수는 완전히 코스를 이탈해 복귀에 시간이 걸렸다. 내 뒤엔 아무도 없다는 생각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잃을 건 없다. 속으로 한바퀴, 두바퀴 세면서 경기에 집중했다. 승부욕은 극에 달하고 있었다. 조금씩 3위를 달리는 선수와 가까워졌고 4랩부터는 꽁무니에 바짝 붙었다.

▲ 무섭게 빠른 친구들. 훗날 이 친구들이 어디서 어떻게 활약할지 모를 일이다. 미리미리 친해져야 한다.

하지만 카트는 여간해선 추월하기 쉽지 않았다. 또 상대는 고수였다. 비록 카트의 출력이 떨어졌지만 예선에서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고, 여러 대회에도 나간 실력파였다. 추월을 위해 이리저리 라인을 바꾸다보니 오히려 간격이 조금 벌어졌다. 아무래도 코너에서의 추월은 어려워보였고 코너를 빨리 빠져나와 직선주로에서 승부를 보자고 마음 먹었다.

마지막 바퀴. 여전히 철옹성은 뚫리지 않았다. 직선주로가 야속하리만큼 짧게만 느껴졌다. 이제 코너는 다섯개 남았다. 더 이상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어린 선수들이 그랬듯 코너에서 차를 내던졌다. 카운터도 미리 쳤다. 첫바퀴의 스핀은 잊었다. 앞차가 아웃-인-아웃으로 헤어핀을 돌때 인-아웃으로 코너에 먼저 머리를 내밀었다. 그 과정이 깔끔하진 않았지만 결국 역전에 성공했고 조 3위로 경기를 마감했다.

◆ 녹다운, 그리고 카트에 빠졌다

고작 7분여의 사투를 끝냈을 뿐인데, 카트에서 빠져나오기 조차 힘들었다. 그래도 그동안 잠자고 있던 승부욕이 온몸으로 배출됐다. 다시 타면 더 잘할 것 같은 아쉬움도 물론 있었다. 그래서 카트에 관심을 갖기로 했다. 때로는 기자의 신분으로 기회가 된다면 또 다시 선수로, 카트와 더 친해지기로 했다.

앞으로 카트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와 국내 카트 대회에 대한 소식을 풀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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