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이 현실로' BMW R18 타고 제주도 여행하는 법 [르포]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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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5.19 14:30
'상상이 현실로' BMW R18 타고 제주도 여행하는 법 [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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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바이크를 직접 제주도에 가져가 신나게 달리면 얼마나 좋을까. 바이크 마니아라면 한번쯤 해봤을 법한 상상이다. 그러나 이를 실제로 해 본 라이더들은 녹초가 되버린 몸과 마음과 정신에 혀를 내두른다. 

항구까지 먼 거리를 이동해 바이크를 선적하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닌데, 오랜 주행의 피로감을 그대로 안은 채 곧바로 배를 타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한다. 설레는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진이 다 빠져나간 상태다. 라이딩기어와 헬멧 등의 욕심껏 챙긴 장비도 이제는 부담스러운 짐이다. 벌써부터 집에 가고 싶은 생각이 굴뚝같지만, 막상 이 고생을 또 해야 한다니 막막하기만 하다.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바이크를 타고 제주도를 일주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굳이 바이크를 직접 끌고가지 않아도 제주도에서 멋진 바이크를 탈 수 있는 방법이 생겼다. BMW모토라드가 마련한 '그랜드 제주 투어'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125만원을 내면 2박3일 동안 유류비 부담 없이 바이크를 마음껏 탈 수 있다. 숙박과 식사는 물론 전문 작가의 근사한 기념사진까지 챙길 수 있다. 라이딩기어만 챙기면 된다.  

# 천천히 달려도 좋아

투어를 직접 경험해보기 위해 제주로 날아갔다. 이번 투어에는 프로그램 운영 전반을 이끄는 클릭앤라이드(CNR) 박경수 대표가 안내를 맡았다. 바이크로 세 번이나 유라시아를 횡단했고, 오랜 기간 BMW모토라드 부산·경남 본부장을 맡아온 전문가다.

BMW R18 트랜스컨티넨탈
BMW R18 트랜스컨티넨탈

박 대표는 첫날 제주공항 인근 개러지를 시작으로 제주도를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나가는 일정을 안내했다. 운이 좋으면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서부 해안로를 따라 협재해변과 차귀도를 거쳐 모슬포, 용머리해안, 중문관광단지 등의 포인트를 통과한다. 알뜨르비행장과 산방산 등 제주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명소들도 경유해 간다.

제주도를 함께 달리기 위해 선택한 모델은 R18 클래식이다. 맞바람을 꽉 틀어막는 배거나 트랜스컨티넨탈과 달리 어느 정도는 바닷바람을 영위할 수 있고, 결정적으로 두 차량보다 가볍다. 물론 이곳에서는 취향에 따라 다른 R18 시리즈들을 선택할 수도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투어는 규정 속도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투어는 규정 속도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2박 3일간 함께할 파트너를 골랐다면, 라이딩기어 착용을 마치고 출발할 차례다. 기대감을 품고 1802cc 2기통 공랭식 박서 엔진을 급히 깨웠다. 실린더 특성상 엔진이 깨어나며 차체가 좌·우로 요동친다. 스로틀을 연신 감으면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처럼 이쪽저쪽으로 요동치는데, 주행 상태를 롤(ROLL)에서 락(ROCK)으로 바꾸면 특유의 진동은 더 두드러진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투어는 규정 속도 범위 내에서 이뤄진다. 기어를 3단 이상 올릴 일이 없을 정도로 아주 천천히 운행된다. 누군가는 아쉬울지 모르겠지만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박서엔진 특유의 고동감을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2000~4000rpm에서 쏟아져 나오는 16.1kg.m의 최대토크 탓에 낮은 엔진 회전수를 유지하면서도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다. 묵직한 클러치를 쥐었다 폈다 하며 여유롭게 변속하는 느낌도 썩 괜찮다.

빠르게 달렸다면 놓쳤을 것들을 만끽하는 재미도 있다.
빠르게 달렸다면 놓쳤을 것들을 만끽하는 재미도 있다.

인터폰으로 인스트럭터에게 각 포인트를 소개받으며 나긋한 주행을 이어가면 R18의 색깔이 오롯이 드러난다. 크루즈 컨트롤을 작동시켜 놓으면 마치 자동차로 오픈 에어링을 즐기는 것처럼 여유가 넘친다. BMW와 다소 거리감이 있는 푹신한 승차감을 만끽하다 보면 마치 고급 세단을 탄 느낌도 든다. 크루저를 크루저답게 즐길 수 있는 순간이었다.

빠르게 달렸다면 놓쳤을 것들을 만끽하는 재미도 있다. 곳곳에서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환호해 주고, 올레길을 걷는 이들이 반갑게 손을 흔들어 준다. 렌터카의 창문을 내리고 엄지를 치켜세워 주는 이들도 많다. 제주는 여러모로 라이더들에게 친절한 곳이다.

# 피로를 잊게 만드는 라이딩 라운지

오랜 주행에 피로가 몰려올 때쯤 강정마을에 도착한다. 해군기지와 크루즈 선착장이 들어서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지만, 항구를 벗어나자마자 특유의 고요한 분위기가 이어지는 곳이다. 이곳에 BMW코리아와 CNR이 운영하고 있는 얼리블랙 제주 라이딩 라운지가 자리 잡고 있다.

얼리블랙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짜임새를 갖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얼리블랙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짜임새를 갖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언뜻 봐선 바다가 보이는 좋은 곳에 마련된 숙소 같지만, 얼리블랙은 그 자체만으로도 훌륭한 짜임새를 갖고 있는 복합 문화공간이다. 카페를 겸한 1층에는 1250 GS를 테마로 한 조형물과 R18이 전시되어 있다. 음료를 받아 들고 안쪽으로 이동하면 라이더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굿즈들로 가득하다. 자리에 앉으면 유리 탁자 하부가 박서 엔진으로 만들어진 걸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된다.

3층에 마련된 숙소의 만족도도 높다. 모든 객실은 통유리창으로 설계해 강정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산방산 너머로 떨어지는 일몰을 볼 수도 있다. 침구류도 푹신한 데다, 침대 주변으로 USB 포트와 전원 콘센트를 넉넉하게 구비해 충전 소요가 많은 라이더의 여건을 잘 배려했다. 방 안에도 모토라드 관련 굿즈들을 짜임새 있게 전시해 라이더를 위한 공간이라는 걸 잘 알 수 있게 한다.

안쪽으로 이동하면 라이더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굿즈들로 가득하다.
안쪽으로 이동하면 라이더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굿즈들로 가득하다.

모든 라이더는 친구라는 말이 있듯, 얼리블랙은 만남의 광장 역할도 한다. 방문 목적이 없더라도 라이딩을 즐기다 잠시 들렀다 가는 라이더들이 많다. BMW 모토라드 뿐만 아니라 할리데이비슨, 혼다, 로얄엔필드, KTM 등 가지각색의 바이크 오너들도 이곳을 찾는다. 제주 도민은 물론, 배에 바이크를 싣고 육지에서 넘어온 이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각자의 바이크를 두고 '입토바이(입+오토바이)'를 타다 보면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

# R18, 한라산을 오르다

"제주에는 자동차 전용도로나 고속도로가 없습니다. 그 말인 즉슨 제주에서 바이크가 못 가는 길은 없다는 뜻입니다"

제주에서 바이크가 못 가는 길은 없다
제주에서 바이크가 못 가는 길은 없다

박경수 대표의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어떤 도로에 가도 제약이 없었고, 자동차를 이용했다면 가지 못했을 산 길목이나 해안도로를 달리는 것도 가능했다. R18은 해안가를 끼고 있는 자그마한 비포장로부터 야트막한 개울까지 거침없이 달려줬다. R18의 낮은 차체 때문에 신발이며 바지가 몽땅 젖어도 그저 즐겁기만 하다.

제주의 방방곡곡을 지나 핸들을 한라산 방향으로 틀었다. 한라산을 주파하는 1131번 지방도(516도로)를 따라 강정마을로 돌아가는 코스다. 도로 특성상 커브 길이 반복되지만, 대부분은 속도를 크게 낮추지 않아도 통과할 수 있는 자이언트 코너다. "사이드가 좀 긁혀도 괜찮으니 기울일 수 있는 만큼 기울여 보시라"는 인스트럭터의 안내에 하체에 힘을 꽉 주게 된다.

사실 R18은 생각보다 차체를 기울이기가 힘든 바이크다. 차체 아래쪽에 위치한 묵직한 박서 엔진이 무게 중심을 꽉 잡아주고 있기 때문이다. 린 인(Lean in)에 가까울 정도로 몸에 어느 정도 하중을 실어줘야 충분히 기울어진다. 어찌어찌 차체를 기울이고 나면 오뚝이처럼 자연스레 원상태로 돌아오는데, 반복되는 코너에서 점점 뱅크 각을 늘려나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사실 R18은 생각보다 차체를 기울이기가 힘든 바이크다.
사실 R18은 생각보다 차체를 기울이기가 힘든 바이크다.

코너를 탈출하자마자 스로틀을 강하게 감으면 마치 프로펠러 항공기에서나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소리가 귀를 때린다. BMW가 항공기 엔진 제작사였다는 헤리티지를 반영한 걸까. 고회전 영역에서 스로틀을 연신 감아대면 당장 이륙 직전 활주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밀려든다. 불규칙적이고 거친 고동감을 토해내는 할리데이비슨과는 또 다른 맛이다.

1131번 지방도로 끝자락, 중문관광단지 인근으로 이어지는 쭉 뻗은 내리막에서는 마치 날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받는다. 자동차와는 다른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바이크만의 매력 아닐까.

# 제주도에 생긴 또 하나의 BMW 드라이빙센터

대배기량 바이크를 '경험'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자동차는 면허증만 있다면 타볼 수 있지만, 바이크는 갖춰야 할 게 더 많다. 그 대상이 BMW 모토라 등 같은 프리미엄 브랜드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점에서 BMW코리아와 CNR이 만든 제주 라이딩 라운지는 특별하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 바이크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는 점만 놓고 보면, 제주도에 만들어진 또 하나의 드라이빙센터라고 해도 되겠다.

여전히 라이더를 보는 시선은 좋지 않다. 그 인식이 개선되기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여전히 라이더를 보는 시선은 좋지 않다. 그 인식이 개선되기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이런 경험을 제공받을 기회와 장소가 더 많아지면 좋겠지만, 현실은 쉽지 않아 보인다. 여전히 라이더를 보는 시선은 좋지 않다. 그 인식이 개선되기까지는 얼마나 긴 시간이 걸릴까. 국내 바이크 산업 기반이 몰락하지 않았다면 레저 스포츠로서의 라이딩 문화가 더 빨리 정착할 수 있었을까. 제주공항을 이륙한 비행기가 김포공항 활주로에 앉을 때까지 온갖 생각들이 스쳤다. 고민에 그치지 않고 직접 움직이고 있는 박경수 대표의 말도 오랜 시간 머릿속을 맴돌았다.

"빠르게 달리지 않아도, 시끄러운 배기음을 내지 않아도 바이크는 그 자체만으로 도로의 왕입니다"
"품위 있는 안전한 주행만으로도 라이딩이 즐거울 수 있다는 인식과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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