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무슨 차에요?"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 -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중에서

"아버지가 크라운을 타고 다니는 동안은 우리 집은 괜찮아." - 오쿠다 히데오 <스무 살, 도쿄> 중에서

일본의 문학 작품들을 읽다 보면 크라운이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등장인물의 사회적 위치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고급차의 대명사로 흔하게 사용된다. 우리나라로 친다면 현대차 그랜저와 비슷하겠다. 여러 세대에 거쳐 오랫동안 판매된 고급 세단이고, 해외보단 내수 시장이 주력이었으며, '성공의 상징'으로 통해왔다는 점은 똑 닮았다.

(왼쪽부터)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스포트, 세단, 에스테이트
(왼쪽부터)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스포트, 세단, 에스테이트

# 내수용 고급차, 토요타의 미래가 되다

이번에 출시된 16세대 크라운은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기반으로 다양한 차체 타입을 갖추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크라운'을 목표로 크로스오버, 세단, 스포트, 에스테이트 등 라인업을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는 오는 6월 세단과 SUV의 장점을 결합한 크로스오버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다.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16세대)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16세대)

크라운 크로스오버는 현대적인 감각을 바탕으로 토요타의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품고 있다. 전면부는 앞으로 툭 튀어나온 해머 헤드 디자인과 그 위를 가로지르는 주간 주행등이 적용됐으며, 후면부 역시 수평형 LED 테일램프로 독특한 느낌을 강조했다. 새롭게 디자인된 크라운 엠블럼도 인상적이다.

실내는 직관적이면서도 편안한 공간으로 만들어졌다. 12.3인치 멀티 인포메이션 디스플레이에는 첨단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인 토요타 커넥트가 적용됐다. 이를 통해 실시간 내비게이션, 무선 통신 기반 음원 스트리밍, U+스마트홈 등 다양한 콘텐츠를 사용할 수 있다. 8개의 에어백과 토요타 세이프티 센스로 안전성도 높였다.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16세대)
토요타 크라운 크로스오버 (16세대)

파워트레인은 TNGA-K 플랫폼을 바탕으로 2.5리터 및 2.4리터 터보 엔진 기반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구성됐다. 2.5 하이브리드는 자연 흡기 엔진과 e-CVT를 결합해 시스템 최고 출력 239마력을, 2.4 터보 엔진이 탑재된 듀얼 부스트 하이브리드는 6단 자동변속기와 수랭식 리어모터를 적용해 340마력을 낸다.

배터리팩도 특별하다. 바이폴라 니켈 메탈 수소 배터리를 장착해 전류 흐름과 전기 저항을 최소화했으며, 각 배터리셀의 출력도 향상했다. 배터리 전류가 높아짐에 따라 가속 성능과 응답성은 더욱 향상됐다.

# 쿠페부터 왜건, 픽업까지 있었다고?

언뜻 봐선 토요타가 크라운의 헤리티지를 바탕으로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크라운은 출시 초기부터 다양한 라인업을 갖고 있었다. 세단과 왜건은 물론이고 쿠페와 픽업트럭까지 있었다. 다양한 차체 타입도 크라운의 전통 중 하나로 봐야 하는 셈이다.

토요타 크라운 쿠페 (3세대)
토요타 크라운 쿠페 (3세대)

그중 쿠페는 크라운 역사상 가장 파격적인 모델로 평가받는다. 4세대(1971~1974)에서 등장한 크라운 쿠페는 고급차 특유의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느낌 대신 미국 머슬카와 비슷하게 과감하고 스포티하다. 당시로선 다소 낯선 스타일인 탓에 인기 저조했지만, 최근에는 시대를 앞섰다는 점에서 재평가 받고 있다. 

크라운 픽업트럭도 쿠페 못지않은 진귀하다. 2세대 크라운(1962~1967)에서 처음 등장한 이후 3세대(1967~1971)까지만 생산됐기 때문이다. 비록 짧은 생을 보냈지만, 이는 토요타의 중형급 픽업트럭인 하이럭스가 잇고 있다.

토요타 크라운 픽업 (3세대)
토요타 크라운 픽업 (3세대)
토요타 크라운 왜건 (11세대)
토요타 크라운 왜건 (11세대)

크라운 픽업트럭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다른 차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승용차 기반의 픽업으로선 드물게 2도어는 물론 4도어 버전까지 있었고, 적재함을 하드톱으로 덮어 세단과 비슷한 감각을 냈다. 사다리꼴 프레임 대신 X형 플랫폼을 도입해 강성을 높이고, 고하중의 화물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된 것도 특징이다.

왜건의 명맥은 비교적 최근까지 이어졌다. 2세대에서 처음 등장한 크라운 왜건은 11세대까지 계속됐고, 크라운 세단이 12세대로 풀체인지된 2003년 이후에도 계속 생산돼 2007년까지 판매됐다.

# 가장 보수적인 차의 진보적 변화, 크라운 애슬리트

크라운은 단순히 차체 타입만 다양했던 건 아니다. 오랫동안 판매되고 있는 스포츠 트림 '애슬리트'는 전통적인 고급 세단 소비층을 넘어 더 다양한 소비자를 끌어들였다.

토요타 크라운 애슬리트(14세대)
토요타 크라운 애슬리트(14세대)

애슬리트는 크라운 특유의 권위적인 요소들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 크롬 장식을 최대한 배제하고, 그릴도 블랙 메시 타입으로 교체했다. 여기에 한층 스포티한 디자인의 휠과 파격적인 컬러를 채택했다. 순정 컬러로 하늘색과 연두색은 물론, 핑크색까지 제공할 정도였다.

파워트레인도 달랐다. 11세대 애슬리트는 수프라에 적용됐던 직렬 6기통 엔진을 탑재해 280마력을 발휘했고, 12세대는 렉서스 GS에 탑재됐던 3.5리터 V6 자연 흡기 엔진으로 315마력을 냈다. 일반적인 크라운이 200~250마력이었던걸 고려하면 꽤 고성능이었던 셈이다.

토요타 크라운 애슬리트 (15세대)
토요타 크라운 애슬리트 (15세대)

최근 단종된 15세대 애슬리트는 '역대급'에 성능을 냈다. 렉서스 LC500h에 탑재된 3.5리터 V6 엔진+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공유해 시스템 최고 출력은 359마력에 달했다. 워낙 강력하다 보니 일본 모터스포츠에서는 크라운을 앞세워 경기에 출전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 무라카미 하루키가 사랑한 차

오랜 기간 역사를 이어온 크라운은 일본의 대표적인 문학작품에서도 등장한다.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대표적인데, 그는 자기 작품에서 크라운에 대해 제법 상세한 설명을 기술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1984년형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에 등장하는 1984년형 토요타 크라운 로얄살롱

그의 대표작 1Q84에에서는 주인공의 독백을 통해 "실내는 고급스럽고, 시트 쿠션은 뛰어나다. 바깥 소음은 거의 들어오지 않는다"며 크라운 슈퍼살롱을 칭찬했다. 또, "음향 장비의 음질이 뛰어나다"라거나 "차음에 관해서라면 토요타는 세계에서 손꼽는 기술을 갖고 있다"며 토요타가 고급 세단을 설계하는 데 중요하게 생각하는 철학들도 정확하게 꿰뚫었다. 토요타와 렉서스가 오디오 시스템과 정숙성에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 우리에게도 익숙했던 그 차, '신진 크라운'을 아시나요

사실 크라운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 도로를 달리고 있었던 자동차였다. 신진자동차(한국GM의 전신)가 2세대 크라운을 라이선스 생산 방식으로 들여와 4세대까지 판매했다. 

신진 크라운(3세대)
신진 크라운(3세대)

이 '신진 크라운'은 1967년 처음 등장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판매되던 자동차 중 가장 크고 고급스러운 모델이었고, 자연스레 당시를 대표했던 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노년층에서 크라운을 여전히 고급차의 대명사로 기억하는 이유다.

단숨에 한국 시장을 장악한 크라운은 3세대 크라운(신진 뉴 크라운)과 4세대 크라운(신진 크라운 S)도 빠르게 도입했다. 당시 경쟁 모델은 현대차가 들여왔던 포드 20M이었는데, 1972년 제휴 관계가 끝날 때까지 비교적 긴 기간 동안 고급 승용차의 위치를 지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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