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마을버스는 잊어라!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직접 타보니[시승기]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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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3.20 12:10
'우당탕탕' 마을버스는 잊어라!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직접 타보니[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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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전기 버스 시장은 위기다. 중국 업체들이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물량전'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많은 운수업체들이 중국 버스를 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도 현대차는 꾸준히 전기 버스 라인업을 늘리고 있다. 큰 차 '일렉시티'와 작은 차 '카운티'를 넘어 작년 말에는 중형인 '일렉시티 타운'까지 선보였다. 이들은 과연 중국 버스의 '가격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 일렉시티 타운을 직접 시승해봤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일렉시티 타운은 일렉시티의 전장(11m)을 9m로 줄인 중형급 마을버스다. 길이가 짧아졌지만, 일렉시티 모습 그대로다. 전면의 현대차 엠블럼 좌우는 검은색 유광으로 꾸미고, 양 끝에는 LED 모듈 여섯 개로 만든 주간주행등을 배치했다. 그 아래는 헤드램프와 방향지시등이 있다. 

이 차의 휠베이스는 4.42m로, 전장의 절반도 안 된다. 옆에서 보면 다소 신기한 비율이다. 한 체급 낮은 카운티(장축)와 비교하면 전장은 2m 긴데, 휠베이스는 고작 30cm 차이다. 물론, 이는 의도된 설계다. 회전반경을 줄여 좁은 길을 주파해야하는 마을버스의 용도를 고려한 것이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일렉시티 타운은 교통약자를 위해 저상형으로 만들어졌다. 일반 전기차라면 배터리팩을 바닥에 배치했겠지만, 지상고를 낮추기 위해 지붕 위로 올렸다. 직접 살펴보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배터리팩 3개가 장착돼 있었다. 아이오닉5 롱레인지 모델에 탑재됐던 72.6kWh 배터리팩이다. SK이노베이션이 만든 제품으로, 용량뿐 아니라 생김새도 동일하다.

현대차는 버스용으로 별도의 배터리를 만드는 대신 기존 제품을 활용해 효율을 높이는 방법을 선택했다.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해당 배터리 팩만 교체하면 되기 때문에 정비도 쉬울 듯하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일반 전기차와 달리 충전은 두 개의 DC콤보 충전구를 동시에 활용한다. 각각 최대 150kW의 급속 충전을 지원하는데, 하나만 꽂아도 충전은 가능하다. 현대차에 따르면 0~80%는 33.1분, 80~100%는 22.1분이면 완료된다(최대 충전 속도 기준). 즉,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하는데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셈이다. 배터리가 가득 찼을 때 주행거리는 약 350km다. 시내버스의 하루 평균 주행거리가 200km 초반인 점을 고려하면 하루에 한 번만 충전하면 된다. 노선이 짧아 자주 차고지에 들어오는 마을버스는 80% 급속충전으로도 운영이 가능하다.

차량 소개를 듣고 실내에 탑승했다. 일렉시티 타운은 승차용 앞문과 하차용 중문이 따로 있다. 전기차라기보다는 마을버스 그 자체다. 의자와 기둥, 손잡이까지 너무나 익숙하다. 그나마 차이가 있다면 저상버스답게 교통약자를 배려한 구성뿐이다.

사진=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카탈로그
사진=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카탈로그

중문에는 휠체어용 리프트가 탑재됐다. 운전기사가 직접 내려 수동으로 리프트를 펼쳐야 했던 구형과 달리 운전석에서 버튼 하나만으로 리프트를 펼 수 있다. 중문 바로 옆에는 의자를 접을 수 있는 '교통약자석'이 마련돼, 휠체어를 세우고 안전벨트로 고정하면 된다. 교통약자석에는 휠체어용 하차 벨도 따로 마련됐다. '딩동' 소리가 나는 일반 하차 벨과 달리 경고 부저가 길게 울리고 운전석 계기판에도 'STOP 장애인용'이라는 별도의 표시가 나온다. 

앞문과 뒷문에는 모두 초음파 센서가 달려있다. 승객이 문 앞에 서 있는 것을 운전자가 보지 못하고 문을 닫아버리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차가 길고 각진 만큼 사각지대도 많을텐데, 이런 안전 장비가 마련돼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각 문에는 끼임 방지 장치도 있어 팔이나 가방이 꼈을 때 문이 자동으로 열리기도 한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대형 면허가 있는 덕에 잠깐이지만 직접 주행할 기회를 얻었다. 앉자마자 의자가 아래로 쑥 들어가 당황했는데, 곧바로 '쉬익' 소리가 나며 의자가 다시 올라왔다. 진동을 줄여 운전자의 피로를 덜어주는 에어 스프링 기능이다. 

안전벨트를 매고 열쇠를 받았다. 최신 전기 버스지만, 시동을 거는 방법은 내연기관 버스와 동일하다. 왼쪽에 있는 릴레이 스위치를 눌러 전원을 연결하고, 열쇠를 꽂은 다음 ON 방향으로 약 2초간 돌리면 된다. 아무 소리도 나지 않지만, 계기판에는 주행 준비가 되었다고 표시가 뜬다.

거대한 스티어링 휠 뒤편에 디지털 클러스터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버스를 탈 때마다 시커멓게 변색된 아날로그 계기판이 영 불편했는데, 일렉시티 타운에는 무려 풀 디지털 클러스터가 적용됐다. 모양은 다른 현대차랑 비슷하지만, 상용차를 위한 정보가 몇 가지 추가됐다. 에어 브레이크 압력이나 24v 배터리의 실시간 전압 등이 대표적이다. 이 밖에 속도계나 출력계, 연비계 등은 전기 승용차와 동일하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변속 버튼은 왼쪽에 있는데 독특하게 전진(D), 중립(N), 후진(R)만 있다. 주차할 때는 중립에 둔 다음에 주차 브레이크를 당기면 된다. D 버튼을 누르고 브레이크를 살짝 떼자 부드럽게 미끄러지며 전기차 특유의 가상 사운드가 재생된다.

일렉시티 타운에는 ZF사가 만든 300kW(408마력) 모터가 뒷바퀴 쪽에 한 개 탑재됐다. 최고출력은 160kW(약 218마력)로 제한되는데, 이는 상용차의 특수성 때문이다. 저용량 모터로 최고출력을 사용하는 것보다 대용량 모터를 여유 있게 사용하는게 효율뿐 아니라 모터 수명에도 좋다.

사실 가속력에 대해서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160kW의 출력이 덩치에 비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데, 정지 상태에서 80km/h까지도 16.1초나 걸린다고 하니 기대감은 더욱 낮아졌다.

그러나 일렉시티 타운은 생각보다 더 경쾌하게 움직였다. 마을버스가 일상적으로 달리는 30~40km/h까지도 별다른 부침 없이 매끄럽게 속도를 높였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정숙성과 승차감은 놀라울 정도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조용하고 쾌적했다. 마을버스 특유의 삐걱거림이나 우당탕거리는 승차감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비결은 에어 서스펜션이다. 네 바퀴에 모두 에어 서스펜션이 적용돼 노면 상태에 관계 없이 조용하고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한다. 낮은 과속 방지턱만 넘어도 비명을 질러대는 판스프링과는 차원이 다르다. 차고 조절 기능은 덤이다. 가파른 언덕길이나 거친 노면을 달릴 일이 많은 마을버스인 만큼, 운전자가 주행 상황에 맞게 차고를 조절할 수 있어 유용할 듯하다. 특히, 휠체어나 몸이 불편한 승객이 편하게 탑승할 수 있도록 문이 열리면 차체를 오른쪽으로 기울여 주는 기능까지 적용됐다.

에어 서스펜션은 무거운 배터리를 머리에 이고 있는 버스를 안정적으로 지탱한다. 약 30km/h까지 속도를 높여 코너를 돌아봐도 불안함은 없다. 코너를 탈출하며 가볍게 가속 페달을 밟아주면 언제 기울여졌냐는듯 자세를 고치고 똑바로 나아간다. 스티어링휠도 승용차를 운전하는 것처럼 가벼워 부담스럽지 않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스티어링휠 오른쪽 레버를 올리면 회생제동을 0단계부터 2단계까지 설정할 수 있다. 0단계에서는 일반 내연기관차의 엔진 브레이크와 비슷한 수준으로 속도가 줄어든다. 1단계에서는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기만 해도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빠르게 속도를 줄인다. 일반적인 버스 기사들이 정류장에 정차하는 수준의 제동력이다. 2단계에서는 더욱 빠르게 감속하는데, 약간 과격한 기사가 속도를 줄일 때와 비슷하다.

완전 정차까지는 불가능하다. 속도가 충분히 줄어들면 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시내에서 가다 서기를 반복하는 마을버스인 만큼 원페달 드라이빙을 지원한다면 운전자의 피로를 줄일 수 있겠다. 

주행 보조 사양이 다소 빈약한 점은 아쉽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기대한 것은 아니지만, 차로 이탈 경고나 후측방 경고 등 시내에서 유용한 사양마저 없다. 특히, 차로 이탈 경고는 동급 내연기관 버스인 현대차 그린시티에 기본으로 제공된다. 최신 전기차임에도 해당 기능이 제외된 것은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현대차 일렉시티 타운

일렉시티 타운은 매력적인 운송수단이다. 시끄럽고 덜컹거리는 마을버스에 지친 시민들을 편하게 모시기엔 더할 나위 없는 차다. 관건은 가격인데, 현대차 관계자는 "경쟁 모델과 비교해도 꽤나 매력적인 가격일 것"이라고 자신했다. 참고로 일렉시티 타운은 아직 공식 출시를 앞두고 일부 지역에서 시범 운행 중이어서 정확한 판매 가격이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올해부터 보조금 규정이 현대차에 유리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전기 버스 보조금 지급 기준에 배터리 밀도가 포함되는데, '리튬-이온' 배터리보다 밀도가 낮은 '리튬-인산철' 배터리를 탑재한 중국 버스들은 보조금을 70%만 받을수 있다. 정부에서 나서 현대차를 노골적으로 밀어준다는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동안 중국산 버스의 안전성과 품질, 사후관리 등이 의문투성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렉시티 타운은 밀어줄 만한 가치가 있는 차가 아닐까 생각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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