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러려고 전기차 샀나…충전 방해·주차 갈등 어쩌나?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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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16 11:15
내가 이러려고 전기차 샀나…충전 방해·주차 갈등 어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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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차 보급이 늘어나며 충전 방해 및 주차 갈등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기존 내연기관차와의 충돌은 물론, 같은 전기차 사이에서도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반복되며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는 모습이다.

# 전기차가 거슬리는 내연기관 운전자들…주차할 곳도 없는데

충전구가 없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례가 전기차인 척하며 주차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연출된 사진입니다)
충전구가 없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전기차인 척하며 주차하는 사례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연출된 사진입니다)

전기차 운전자 A씨는 최근 충전소에서 황당한 사건을 겪었다. 아무리 봐도 내연기관인데, 충전 케이블을 연결한 채 충전소에 주차된 차량을 발견한 것이다. 뭔가 이상해 차에서 내려 살펴보니, 해당 차량은 주유구를 열어두고 충전 케이블을 슬쩍 얹어 마치 전기차인 것처럼 꼼수를 부리고 있었다. 신고를 피하기 위해 전기차로 위장(?)하는 기행을 부린 셈이다.

또 다른 전기차 운전자 B씨는 이유도 없이 고성과 폭언을 들어야 했다. 아파트 충전구역에 내연기관 차량이 주차하는 것을 발견한 B씨는 "여기(충전구역)에 주차하면 충전이 급한 차주들이 이용을 못 할 수 있으니 차량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내연기관 차주는 짜증을 내며 "전기차 타니까 뭐라도 되는 줄 아는줄 아냐, (전기차에)불나서 내 차까지 불붙으면 책임 질 거냐"라며 비키지 않았다. 결국 B씨는 충전을 포기하고 다른 곳을 찾아야만 했다.

전기차 충전소 전경=현대자동차
전기차 충전소 전경=현대자동차

전기차 충전을 방해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돼있다. 전기차 충전 방해 금지법 제16조2항에 따르면 전기차가 아닌 일반 자동차가 충전 구역에 주차하면 과태료 10만원이 부과된다. 또한 제16조1항에 근거하여 충전구역의 앞이나 뒤, 양 측면을 포함한 충전구역 내에 물건 등을 쌓거나 주차하여 방해해도 과태료 10만원이 주어진다.

그러나 이런 규정이 잘 지켜지고 있지 않아 많은 전기차 차주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당장 충전이 필요한 상황인데 불법 점거 차량이 전화를 받지 않거나 이동을 거부하면 대책 없이 발만 동동 구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민신문고에 신고하는 것만으론 눈 앞의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뿐더러 밤늦게 타인에게 전화하거나 경찰을 불러야 하는 상황 자체도 스트레스다.

2년 동안 전기차를 몰고 있는 C씨는 "야근한 게 잘못도 아닌데 밤 늦게 전화해서 차 빼라 하면 오히려 내가 무례한 사람이 되어버린다"고 하소연했다.

# 충전 끝나도 옮기기 귀찮은 전기차 운전자들…14시간 주차는 불법 아냐

이같은 충전시비는 전기차 차주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급속보다는 완속에서 더 심각한데, 법의 허점을 노리며 버티는 경우도 허다하다.

쉐보레 볼트 EV 완속충전 모습
쉐보레 볼트 EV 완속충전 모습

완속충전소를 방문한 D씨는 충전 케이블이 연결되지 않은 채 주차된 전기차를 발견했다. 충전 방해 행위라 여긴 D씨는 국민신문고 앱을 통해 신고했으나 돌아온 답변은 '불수용(민원을 받아들이지 않음)'이었다. 전기차는 충전 목적이 아니어도 완속충전소에서 14시간 동안 주차가 가능하다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유권해석 때문이다.

실제로 완속충전소에 방치된 전기차(플러그인하이브리드 포함)에 과태료를 부과하기 위해서는 총 3장의 증거사진이 필요하다. 최초 신고사진부터 중간사진, 14시간이 지난 뒤 촬영한 사진 등이다. 이렇게까지 정성을 들여야만 신고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자 '전기차의 적은 전기차'라는 말도 나온다. 한 누리꾼은 "상식적으로 충전이 끝났으면 차를 빼주는게 맞지만, 현행 법대로라면 완속충전기를 독점하는 전기차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 솜방망이 처벌에 하향평준화되는 전기차 충전 문화

충전 방해의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점거 수수료가 있다. 충전이 끝나고 일정 시간 이상 이동하지 않으면 사용자에게 추가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식이다. 테슬라 슈퍼차저와 현대차그룹 e피트 등 완성차업체 충전 플랫폼에서 시행중이다. 그러나 전국 도로 대다수에 배치된 공공충전소는 점거 수수료 제도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가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는 충전이 끝난 후에도 이동하지 않는 차량에 대해 점거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일부 완성차 업체가 운영하는 전기차 충전소는 충전이 끝난 후에도 이동하지 않는 차량에 대해 점거 수수료를 부과하고 있다.

전기차는 지난해 국내에서 16만대 이상 팔렸다. 전년대비 63.8% 성장하며 큰 폭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정부는 올해도 보조금 지원 대수를 늘리며 전기차 보급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늘어나는 전기차에 비해 충전 문화는 터무니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바람직한 전기차 문화를 만들기 위해선 충전 에티켓이 필수다. 이를 위해 제도나 인식적 측면의 개선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단속이나 벌금 때문이 아니라더도 사회 구성원으로서 지켜야 할 매너를 함께 지켜나가야 한다.

충전소에 대한 인식도 변해야 한다. 충전소는 말 그대로 충전을 위한 장소로 이용해야 한다. 주차공간이 부족한 국내 실정에 전기차만을 위한 '주차 특혜'를 줘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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