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가격 200만원 오르나? 거꾸로 가는 보조금 정책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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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3.01.03 16:02
전기차 가격 200만원 오르나? 거꾸로 가는 보조금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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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부가 올해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상향 조정한다는 계획이다. 지금까지의 정책에 반하는 행보로, 전기차 가격이 200만원가량 오를 가능성이 높다는 비판이다.

현대차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전용전기차 아이오닉5

환경부는 지난달 15일, 업계 관련 종사자들을 초대해 2023년 전기승용차 보조금 개편안 설명회를 진행했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대 700만원이었던 국고 보조금을 680만원으로 줄이고, 100% 지급 기준을 차량 가격 5500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올리는게 주요 내용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급 기준이다. 환경부 측은 "보조금 수혜 대상이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오히려 정부가 제조사에게 '합법적으로 가격을 올릴 구실'을 만들어줬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국내에 판매되는 전기차 중 5500~5700만원 사이 모델이 단 한 대도 없기 때문이다.

폭스바겐 ID.4

환경부는 그동안 보조금 기준을 엄격하게 바꿔왔다. 자동차 업체들이 전기차 가격을 낮추도록 유도해 더 많은 전기차를 보급한다는 목표다. 지난 2013년에는 모두에게 1500만원을 일괄 지원했지만, 이후 배터리와 주행거리 등 몇몇 조건을 만들고 액수를 줄였다. 2021년에는 6000만원 미만, 2022년에는 5500만원 미만인 전기차에만 100% 제공했다. 

해당 정책은 실제 효과로 이어졌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 국산차는 보조금을 전액 받기 위해 주력 모델(롱레인지)의 가격을 5500만원 미만으로 책정했다. 수입차 브랜드 역시 이 기준에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폭스바겐 ID.4와 렉서스 UX, 폴스타2 등이 5490만원에 나온 것이 대표적이다.

만약 이번 개편안이 현실화되면 5500만원으로 억제됐던 전기차는 5700만원으로 올라갈 것으로 보인다. 보조금 제도의 헛점을 노린 제조사가 이 기회를 놓칠리 만무하다. 

기아 전용전기차 EV6
기아 전용전기차 EV6

실제로 몇몇 제조사들은 깡통 트림을 만들고 보조금을 전액 받고 있다. 현대차는 2022년 보조금 기준이 '인증 사양별 기본가격'으로 바뀌자 기존 아이오닉5에 없던 'E-라이트' 트림을 신설하고 5495만원에 맞췄다. 배터리 용량과 모터 출력, 구동 방식, 타이어 크기가 같으면 동일한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덕분에 아이오닉5는 트림별 가격과 옵션에 상관없이 모두 100%의 보조금을 받게 됐다. 'E-라이트'와 인증 사양이 같으면 5500만원이 넘든, 6000만원이 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상황은 기아 EV6도 별반 다르지 않다. 차량 구매 가격에 맞춰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환경부가 5500만원에서 5700만원으로 올리면 'E-라이트'도 덩달아 올라갈게 뻔하다. E-라이트가 올라간다는 것은 나머지 트림의 연쇄 인상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동일한 사양의 전기차를 최대 220만원 비싸게 구매해야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저렴한 전기차 보급을 위한다던 정책이 오히려 제조사의 가격 인상만 도와주는 꼴이 되서는 안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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