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뜨고 찢어지는 신형 번호판, 일단 내 돈 내고 교체하라? [MG수첩]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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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6 15:19
들뜨고 찢어지는 신형 번호판, 일단 내 돈 내고 교체하라? [MG수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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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번호판 결함에 대한 정부의 소극적인 대처가 도마 위에 올랐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전가하는 듯한 보상 방법과 각 부처 및 지자체의 일관성 없는 보상 정책이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평가다.

#반사필름식 번호판 왜? 손상되면 250만원 과태료

반사필름식 번호판은 지난 2020년 7월 도입됐다. 당시 정부는 필름이 부착돼 야간에 더 밝게 빛나 알아보기 쉽고, 주차된 차 등을 더 쉽게 인지할 수 있어 교통사고를 줄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손상된 필름식 번호판
손상된 필름식 번호판

그러나 도입된 지 1년여 만에 필름 이곳저곳이 들뜨고 뜯기는 등 쉽게 손상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는 해당 사안이 공식으로 지적됐고 관련 제도의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번호판 손상은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최대 2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될 정도의 중대한 위법 사안이다. 자동차관리법에 따르면 ‘번호판이 알아보기 어렵게 된 경우에는 재부착을 해야 하고, 누구든지 번호판을 알아보기 곤란한 자동차를 운행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이를 위반하면 1회 적발 시 50만원, 2회는 150만원, 3회부터는 무려 25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 한다.

# 정부, 초기 생산분 결함 인정…교체는 왜이리 어려워?

논란이 이어지자 정부는 초기 생산 물량에서 품질 결함이 있음을 인정하고, 교체 작업에 나섰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7월 배포한 포스터에 따르면, '자동차 등록 번호판의 번호를 육안으로 명확히 읽을 수 없을 정도로 필름이 손상된 경우' 무상 교체 대상이다. 

국토교통부의 필름식 번호판 무상 교체 안내
국토교통부의 필름식 번호판 무상 교체 안내

다만, 정부는 이런 사실을 널리 알리지 않았다. 일부 정부기관 홈페이지 팝업창을 통해 이 포스터를 게시하거나, 세종시와 같이 특정 지자체만 보도자료를 통해 교체 사실을 알렸을 뿐이다.

교체 방법도 명확하지 않다. 국토교통부는 발급 받은 지역과 동일한 지역에 거주할 경우 해당 지역 제작소에 방문해 무상 교체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서울시 120 다산콜센터에 직접 문의해본 결과 "일단 사비로 교체한 다음, 초기 생산된 번호판임이 입증되면 환급 신청이 가능하다"라는 안내를 받았다.

결국 피해는 차주들의 몫이다. 방치하다 과태료를 물거나, 자비를 들여 교체해야 한다. 한 차주는 "자동차는 우편이나 SMS로 리콜안내문이 오는데, 왜 번호판은 이런 시스템이 없는지 모르겠다"라며 "글씨가 자꾸 지워지길래 세차를 잘못했기 때문인 줄 알았다"라고 억울해했다.

새로 발급받은 번호판과 손상된 번호판
새로 발급받은 번호판과 손상된 번호판

가장 큰 문제는 결함의 원인과 관련 정보가 명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정부는 어떤 이유로 불량품이 나오게 됐는지, 언제부터 언제까지 만든 제품이 불량인지 밝히지 않고 있다. 개선된 제품 역시 어떤 부분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최근 구매한 신차에 필름식 번호판을 부착했다는 한 차주는 "들뜨거나 찢어지는 문제가 해결됐다고 들었다"라면서도 "품질 보증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부분이 바뀌었는 지도 모르겠다"라고 전했다.

# 훼손된 번호판, 상태 심각하네

그렇다면 훼손된 번호판은 얼마나 성능이 떨어지기에 교체해야 하는 것일까. 모터그래프가 보유한 법인차량으로 간단한 실험을 진행해봤다. 모터그래프는 앞서 지난 2020년 7월, 신형 번호판이 도입되자마자 교체한 바 있다. 당시 교체 공임과 가드 구매 비용까지 더해 총 3만5500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몇 개월도 안 지나서 볼록하게 숫자가 프린트된 곳 주위의 필름이 들뜨기 시작했고, 2년 반이 흐른 지금은 들뜬 필름 사이로 먼지가 껴 까맣게 변하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필름이 일부 찢어져 하얗게 도색된 안쪽 철판이 드러나기도 했다. 이 부분을 만져보면 표면은 녹이 슨 것처럼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손에 먼지와 흰 페인트가 묻어나기까지 한다. 

뒤쪽 번호판도 앞쪽과 마찬가지로 필름이 들뜨고 먼지가 껴 있다
뒤쪽 번호판도 앞쪽과 마찬가지로 필름이 들뜨고 먼지가 껴 있다

뒤쪽 번호판도 훼손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주행 중 튀는 돌이나 비·바람을 직접적으로 맞지 않은 탓인지 필름이 찢어진 곳은 없었지만, 앞쪽과 마찬가지로 볼록한 글자 주변이 들떠 있다. 들뜬 필름 사이로 먼지가 껴 까맣게 변하는 것도 앞면과 마찬가지다. 앞뒤가 모두 손상된 점으로 미뤄볼 때 훼손 원인이 주행 중 튀는 돌 등에 의한 것이 아니라 번호판 자체의 불량임을 추론할 수 있다. 

반사 성능도 확연히 떨어졌다. 비교를 위해 당일 발급받은 새 번호판이 장착된 차량과 나란히 주차해놓고 맞은편에서 자동차 헤드램프를 비춰보자 새 제품이 훨씬 더 하얗고 선명하고 밝게 반사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낡은 번호판은 글자 주변 필름이 들떠 난반사가 일어나고 먼지까지 들어간 탓에 이곳 저곳이 반짝반짝 빛났다. 모든 면이 마치 간판처럼 고루 빛나는 새 번호판과는 확실히 차이가 난다. 

손상된 번호판의 경우 밝기도 어둡고, 필름이 들뜬 부분이 하얗게 빛난다
손상된 번호판의 경우 밝기도 어둡고, 필름이 들뜬 부분이 하얗게 빛난다

정부는 초기 제품의 결함을 인지하고도, 이를 널리 알리지 않고 말 그대로 방관하고 있다.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후 1년이나 지났음에도 아직까지 불량 번호판을 제조한 제조사나 이를 승인한 정부 당국의 책임은 찾아볼 수 없다. 각 지자체에서 교체해주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아는 사람만 아는' 숨겨진 조치였다.

도입할 때는 기존보다 월등하다며 홍보하더니 정작 불량품 교체 소식은 쉬쉬하는 정부의 태도는 유감이다. 하루빨리 문제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교체 작업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태도가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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