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만들길 잘 했다?' 빛을 못본 비운의 럭셔리카 [주말의 MG]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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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12.23 10:00
'안 만들길 잘 했다?' 빛을 못본 비운의 럭셔리카 [주말의 M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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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MW가 개발했던 16기통 7시리즈부터 레인지로버 쿠페, 폭스바겐의 초호화 플래그십 세단까지. 브랜드 자체가 구매의 이유가 되는 유럽의 자동차 회사들도 끊임없는 도전을 이어왔다. 새로운 소비층을 끌어들이고, 틀에 갇힌 판매량과 브랜드 인지도를 끌어올리기 위함이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보니 '도전' 보다 '빠른 포기'를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모터그래프에서 양산이 좌절된 비운의 럭셔리카를 모아봤다. 

# BMW 767iL, '16기통 엔진을 품은 7시리즈'

BMW 767iL
BMW 767iL

BMW는 2세대 7시리즈(E32)를 기반으로 6.7리터 V16 엔진을 실험했다. 기존의 5.0리터 V12 엔진에 네 개의 실린더를 더했고, 이를 통해 실린더 개수와 배기량이 늘어나면 어떤 성과를 얻어낼 수 있는지를 연구했다. 어디까지나 프로토타입이었지만, 엔진을 대하는 BMW의 진지한 태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16기통 엔진을 품은 767iL의 최고출력은 408마력에 육박했다. V12 엔진을 쓴 당시 750i의 출력(295마력)과 비교해도 100마력 이상 높았고, 비슷한 시기에 활약했던 람보르기니 쿤타치 LP500S(375마력)보다도 강력했다. 양산에 이르지 못했을 뿐,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세단 중 한대였던 셈이다. 

문제는 엔진이 너무 컸다는 점이다. 결국 엔진룸에서 라디에이터를 제거하고, 이를 트렁크에 장착해야 했다. 이렇다보니 767iL은 리어 펜더에 툭 튀어나온 에어 인테이크를 갖고 있는데, 톡특한 외형 탓에 BMW 내부에서는 이 차를 '골드피쉬(금붕어)' 라고 불렀다. 

# BMW E46 M3 투어링, '말해봐요, 왜 안만들었어요'

BMW E46 M3 투어링
BMW E46 M3 투어링

역사상 가장 성공한 M3인 3세대 E46은 왜건형 모델인 투어링 양산도 염두하고 있었다. 흥미로운건 시장에 등장한 쿠페, 컨버터블 등 2종의 모델과 함께 개발 초기 단계부터 테스트됐다는 점이다. BMW는 이를 통해 다른 보디 타입이 달라도 M 특유의 운전 재미를 동일하게 구현하고자 했다. 

BMW가 지향했던대로 성능은 쿠페형 M3와 다를 바 없었다. 3.2리터 직렬 6기통 자연흡기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해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37.2kgf,m을 발휘했고,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는 5.2초만에 주파했다. 특유의 복잡한 리어 액슬 구조에도 적재 공간과 2열을 그대로 유지한 것도 특징이었다. 

BMW는 해당 차량을 단 1대만 제작해 보존 중이며, 양산을 하지 않은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BMW는 최근 E46 M3 투어링의 뒤를 잇는 신형 M3 리반의 왜건을 출시하고, 본격적인 판매에 돌입한 상태다. 

# 폭스바겐 2세대 페이톤, '벤틀리 뺨쳤던 최고급 세단'

폭스바겐 페이톤 D2
폭스바겐 페이톤 D2

페이톤 D2는 2002년 출시된 1세대 페이톤의 후속모델로 개발되던 차량이다. 이사회의 최종 결정을 위해 제작된 마지막 시제차지만, 디젤게이트 이후 폭스바겐의 운영 방향이 큰 폭으로 수정됨에 따라 베이퍼웨어로 전락했다. 당초 양산은 2016년을 목표로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전반적인 외형은 최근 출시되고 있는 폭스바겐 라인업과 높은 유사성을 갖고 있다. 그릴과 램프가 이어진듯한 형상의 전면부 디자인을 비롯해 예리하게 다듬어진 보닛·숄더 라인, 각진 테일램프 형상과 엠블럼 하단에 배치된 레터링 등도 최근의 폭스바겐에서 확인할 수 있는 요소다. 

인테리어도 파격이다. 2016년 출시를 목표로 그 이전부터 개발되던 모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폭스바겐이 얼마나 많은 걸 준비해왔는지 알 수 있다. 운전자 중심의 인테리어 배치는 물론, 전자식 기어레버, 프레임리스 룸미러, 클러스터와 센터 디스플레이를 하나로 구성한 디자인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요소들은 대부분 폭스바겐 투아렉과 아우디 A8에 계승됐다. 

# 아우디 A8 쿠페, '시대를 앞섰던 럭셔리 쿠페'

아우디 A8 쿠페
아우디 A8 쿠페

아우디는 1세대 A8(D2)을 기반으로 한 대형 럭셔리 쿠페 개발을 고려했던 적이 있다. 메르세데스-벤츠보다 고급감은 떨어졌지만, 알루미늄 소재를 채택한 가벼운 차체를 바탕으로 한층 스포티한 주행 성능을 발휘했던 만큼, 이 같은 특성에 초점을 맞춘 모델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아우디는 이 과정에서 양산을 염두한 시제차량도 제작했지만, 양산까지 이어지지는 않았다. 구체적인 이유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잠재적인 경쟁 상대였던 메르세데스-벤츠 CL과 BMW 8시리즈 대비 시장성이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된다.

# 레인지로버 SV 쿠페, '반응이 안좋아서…'

레인지로버 SV 쿠페
레인지로버 SV 쿠페

랜드로버는 2018 제네바모터쇼에서 레인지로버 SV 쿠페를 내놨다. 1970년식 2도어 레인지로버를 오마주한 모델로, 재규어랜드로버의 주문제작부서 SVO가 개발을 주도했다. 기존 모델보다도 더욱 고급스러운 구성들을 갖춘 탓에 '레인지로버 위의 레인지로버'를 지향했던 모델이기도 하다.

외형은 영락없는 레인지로버지만 디테일은 다르다. 프레임리스 도어를 적용했고, 랜드로버 최초로 23인치 휠을 옵션으로 제공했다. 실내는 한 차원 높은 고급을 강조하기 위해 더 좋은 가죽, 원목, 금속을 사용했고, 파워트레인은 오직 5.0리터 V8 엔진과 8단 자동변속기 조합만으로 구성됐다. 

레인지로버 쿠페 양산이 좌절된건 재규어랜드로버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감행한 것과도 관련있다. 당시 재규어랜드로버에는 한 해에만 9000만 파운드(한화 130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쌓였고, 브렉시트 등으로 경영 여건이 악화됨에 따라 대규모 감원이 진행됐다. 이 와중에 999대 한정 생산을 계획하고 있던 레인지로버 쿠페의 계약도 저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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