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쌍용차 렉스턴W, 오프로드 달리는 SUV가 사라지고 있다
  • 김상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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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4.06.16 23:33
[시승기] 쌍용차 렉스턴W, 오프로드 달리는 SUV가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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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g에 달하는 루프톱 텐트가 장착된 쌍용차 렉스턴W가 잠실 탄천주차장에 집결했다. 보닛에 깃발까지 꽂힌 십여대의 렉스턴W에서는 사뭇 비장함도 느껴졌다. 최종 목적지는 가평 경반분교 오토캠핑장. 그곳은 전화는 커녕, 전기도 안들어오고 물도 없다. 또 이곳에 가기 위해서는 7.5km에 달하는 오프로드 구간을 지나야 하기 때문에 일반 세단으로는 거의 출입이 불가능하다. 온전히 SUV, 그것도 든든한 사륜구동 시스템이 적용된 차만이 드나들 수 있다. 

▲ 탄천주차장에 도열한 렉스턴W. 도끼가 유난히 살벌해 보인다.

이번 행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듣고 나니, 갑자기 세이프티카 지붕에 달린 거대한 도끼가 더욱 섬뜩하게 다가왔다. 마침 그날은 13일의 금요일이기도 했다.

◆ 2.0리터 디젤 엔진, 넉넉하진 않아도 부족함은 없다

첫번째 목적지는 강원도 춘천시 강촌리의 문배마을. 벼랑 위에 자리잡은 문배마을로 가기 위해서는 구불구불한 골짜기를 한참 지나야 했다. 워낙 깊은 산중에 위치해서 이곳 마을사람들은 6·25 전쟁을 몰랐다고 한다.  

▲ 고속주행에서의 강점은 정숙성과 편안함이다. 속도로 승부를 걸긴 다소 부족하다.

탄천주차장에서 출발해 올림픽대로와 서울-춘천고속도로를 달렸다. 최고출력 155마력의 2.0리터 디젤 엔진은 맘먹고 달릴라치면 한계가 금방 찾아오는 편이지만 일상 생활에선 부족함을 느끼기 힘들다. 거대한 차에 작은 엔진이 실리니 소음이나 진동도 경쟁 모델에 비해 월등히 적다. 힘을 포기하면서 얻은 결과기 때문에 정숙함을 단순히 '프리미엄'과 연결짓기엔 무리가 있다. 그래서 186마력의 힘을 냈던 2.7리터 5기통 디젤 엔진이 더 그립기도 하다. 

▲ 2.0리터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55마력, 최대토크 36.7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그래도 저속 토크 강화를 중시했다는 쌍용차의 설명은 매우 적절하다. 최대토크가 5기통 엔진에 비해 더 낮은 엔진회전수에서 발휘되도록 했다. 1800바 압력의 커먼레일 연료 분사 시스템, 저속 응답성을 최적화한 E-VGT 등을 통해 성능은 끌어올렸고, 연료효율성도 20% 이상 향상됐다. 도심에서는 특히 그 특성이 매우 선명하게 보이고, 고속도로에서도 순간적인 힘으로 앞차를 추월하기엔 무리가 없다. 

차체가 높지만 의외로 승차감은 나무랄데 없다. 특히 뒷좌석의 편안함은 깜짝 놀랄 정도다. 뒷좌석 등받이 각도 조절 폭이 넓다. 편안하게 반쯤 누워탈 수 있다. 쌍용차 특유의 거친 느낌은 많이 정제됐다.

▲ 1세대부터 한결 같은 디자인. 변할때도 됐다.

고속도로를 지나 강촌 구곡폭포 입구에 도착했다. 문배마을로 들어서기 위해서는 약 6km의 오프로드 코스를 지나야 했다. 돌무더기가 있는 아주 험난한 구간은 아니지만 경사가 꽤 심하고, 미끄러운 흙길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또 자칫 하면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질 위험도 충분했다. 외길이어서 종종 마주오는 차를 위해 벼랑 끝까지 아슬아슬하게 차를 붙여야 하는 경우도 있다. 

▲ 벽면에 한쪽 타이어를 걸치는 호기도 부렸다. 루프톱 텐트만 없었어도 더 기울였을 듯 하다.

그래도 노면 자체가 비교적 잘 다져진 임도였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쌍용차 특유의 프레임바디의 강성이나 사륜구동 성능을 만끽하기엔 부족했다. 오프로드라기에 파트타임 사륜구동 모드를 4H로 옮기긴 했는데, 그냥 후륜구동으로 달려도 무리 없었을 것 같다. 일반 도로를 달릴때와 마찬가지로 엔진은 조용했고, 변속도 부드러웠다. 이때까지만 해도 오프로드 시승 행사라는 것이 크게 와닿지 않았다. 

▲ 조금 비가 온후가 길은 미끄러웠고, 덕분에 사륜구동 시스템을 쓸 필요가 생겼다.

◆ 바위를 넘고, 계곡을 건너라

본격적인 오프로드 체험은 칼봉산 자연휴양림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리고 서서히 13일의 금요일 공포가 시작됐다. 출입금지란 표지판이 매우 을씨년스럽게 보였는데, 경반분교 오토캠핑장을 들어서기 위해서는 이길을 꼭 지나야한다. 

▲ 경반분교 오토캠핑장을 가기 위해서는 계곡을 세번 넘어야 했다. 비가 많이 왔다면 내려서 상황을 확인했을 정도였다.

문배마을의 오프로드와는 그 성격이 달랐다. 노면은 돌무더기로 인해 매우 불규칙했고, 도로 폭도 좁았다. 이로 인해 차는 시종일관 엉덩이를 씰룩거렸다. 좌우 뒷바퀴는 따로 놀기 시작했다. 차가 기우뚱하며 한쪽으로 무게가 쏠리는 상황에서도 반대편 바퀴가 밑으로 축 처져 그립을 찾으려 한다. 마치 오리걸음을 하는 듯 어기적어기적 걷는 것 같았다. 서스펜션의 댐핑 스트로크는 긴 편이지만 윤거가 넉넉한 편은 아니다보니 좌우 쏠림을 크게 견디진 못한다. 

▲ 달려라! 계곡을 상대하기엔 급이 안맞는 것 같다. 강 정도는 건너야 겠다.

앞차들이 연달아 지난 곳은 바퀴 자욱이 점차 패이기 시작했고, 자갈이 파헤쳐지면서 가운데 공간만 불쑥 튀어나왔다. 렉스턴W에 에어서스펜션 같은 고급 기술은 없다. 그래도 최저 지상고 225mm면 웬만한 곳은 다 지날 수 있다. 싼타페나 쏘렌토R에 비해 약 30mm 가량 높다. 미미한 차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오프로드에서는 이런 작은 차이가 변수를 줄이는 역할을 한다.

▲ 물살이 더 거셌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렉스턴W는 분명 더한 곳도 지날만큼 든든했다.

급격한 내리막과 오르막이 연속됐고, 계곡도 건너야 했다. 계곡을 건널때는 깊이도 깊이지만 지형을 제대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의해야 했다. 타이어가 장애물에 부딪혀 그 힘이 반대로 스티어링휠을 움직이는 ‘스티어링휠 킥백’ 현상도 조심해야 한다. 고속도로에서는 꽤 유격이 있던 스티어링이 불만이었는데, 오프로드에서는 오히려 안정감을 높여주는 요소가 됐다. 

 

큰 바위를 밟고 올라설때면 비로소 탄탄한 골격이 느껴진다. 한쪽 뒷바퀴가 들린 기묘한 상황에서도 프레임바디는 차체의 비틀림을 최소화한다. 실내에서도 삐걱 거리는 소리 한번 나지 않는다. 비틀림 강성을 가장 쉽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상황에서 문을 여닫아보는 것. 차체가 비틀리면 문을 제대로 여닫기 힘들다. 렉스턴W가 어땠는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 오프로드에서는 평소보다 시트포지션을 앞으로 당겨 앉는 편이 좋다. 시야확보와 빠른 대처가 관건이다.

◆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가 사라지고 있다

비교적 수월하게 경반분교 오토캠핑장에 도달했다. 여기서 하루를 묵는다. 오프로드를 달려 캠핑장에 갈 것이라고만 알았지, 설마 루프톱 텐트에서 잠을 자게될거란 생각은 못했다. 그저 액세서리라고만 생각했는데, 진행 요원들이 삼삼오오 루프톱 텐트를 내렸다. 의외로 설치는 간단하다. 케이스를 벗긴 후 사다리를 잡아 내리기만 하면 된다. 그 공간은 예상외로 아늑했고, 바닥에 쿠션까지 깔려서 며칠이라도 지낼만 했다. 

▲ 옆 텐트의 코 고는 소리와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밤새 절묘한 조화를 이뤘다.

그렇게 13일의 금요일은 무사히 지나갔고, 오프로드를 지나면서 겪은 강제적인 상체 운동 때문인지 아침엔 온몸이 두들겨 맞은 듯 쑤셨다. 입 안돌아간게 다행이다.

서둘러 서울로 향했다. 자연에 파묻혀 있는 것도 좋았지만 도시가 그리웠고, 짧은 반바지 입은 여성들도 보고 싶었다. 

계곡에는 약간의 안개가 드리웠지만 렉스턴W의 거친 질주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한번 지났던 길이라는 생각에 가속페달을 더 밟았다. 최근 WRC 중계를 빠지지 않고 본 탓도 있다. 어느덧 오프로드는 익숙해졌고, 렉스턴W와도 친해졌다. 어눌한 실내 디자인이나 허술한 마감은 여전히 정이 가지 않지만, 그나마 예쁜 면을 더 보게 됐다.

▲ 오프로드를 달릴 수 있는 SUV가 줄어들고 있다.

'억'에 가까운 수입 SUV에 비하면 렉스턴W는 분명 부족한 점이 많다. 하지만 국산 SUV 중 오프로드를 가장 잘 달릴 수 있는 차 중 하나고, 쌍용차 특유의 전통도 잘 이어가고 있는 모델이다. 오프로드를 달릴 수 없는 SUV가 늘어가는 세상에서 렉스턴W는 유독 빛을 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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