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대세로 자리잡은 전기차, 잘 사용하다가도 1년에 4~5번 정도는 '그냥 내연기관 살걸…' 이라며 후회하는 때가 온다. 바로 충전 문제 때문이다. 급하게 충전을 해야 할 때 근처에 충전기가 없거나, 어렵게 찾은 충전기가 망가져 이용하지 못하면 괜히 소중한 내 차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휴가철이나 명절처럼 장거리를 가야 할 때는 더 심각하다. 최소 1~2번의 충전은 필요한데, 고속도로의 충전기 현황은 암울하기 그지없다. 대수도 모자란데 속도도 느리고, 앞에 1~2대라도 줄 서 있으면 수십분 넘게 더 기다려야만 한다. 

제조사에서는 전기차를 팔 때 0~80%까지 20~30분 만에 충전이 가능하다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지만 현실과는 꽤 동떨어진 이야기다. 차 자체는 빠르게 충전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충전기가 그 속도로 충전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최근에는 정부의 보조금이 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주는 혜택이 아니라, 충전 인프라를 늘리는데 사용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특히, 현대차그룹 E-피트처럼 현실적으로 200~300kW급 초고속 충전기가 더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모터그래프가 차량 이동이 대폭 늘어나는 휴가철을 맞아 경부고속도로 총 416km 구간을 달리며 서울 만남의광장 휴게소부터 경남 양산 통도사휴게소까지 모든 휴게소의 전기차 충전소 실태 조사에 나섰다. 

확인 결과, 경부고속도로(서울→부산 방향) 총 17개의 휴게소에는 전기차 70대 분량의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장난 충전기 4기, 설치 중인(언제 가동될지 모를) 충전기 17기를 제외하면 당장 사용 가능한 충전기는 49대에 불과했다.

조사 당시는 비가 많이 내리는 평일이었는데, 전체 충전기의 40% 수준인 20기가 사용되고 있었다. 주말이나 연휴, 휴가, 명절 등 차량 이동량이 몰릴 때는 북새통을 이룰게 뻔하다.

특히, 휴게소에서 충전 중인 전기차는 대부분 포터 일렉트릭과 봉고 EV 등 소형 화물차였다. 무거운 짐을 싣고 장거리 운행을 해야 하는데, 주행 가능 거리가 211km에 불과해 자주 충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물론, 정당하게 비용을 내고 충전하는 만큼 문제는 없지만, 앞으로 화물 전기차가 더 늘어난다면 충전소 부족 현상은 더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충전기 성능은 가장 큰 문제다. 충전기 70기 중 40%인 28대는 50kW급이었다. 100kW급도 설치 중인 것을 포함해 24대(34.3%)에 불과했다. 200kW급도 2대 있긴 했는데, 동시에 두 대씩 충전하도록 되어 있어 사실상 100kW급과 다를 바 없다.

실제 충전 속도는 더 심각하다. 대부분의 충전기가 설계 속도의 절반 수준으로 충전되고 있었다. 즉, 100kW급은 50~60kW, 50kW급은 25~30kW 속도가 나온다는 것이다. 고속도로란 특성상 충전 시간이 40분으로 제한되는데, 25kW 속도로 충전될 경우 충전량은 고작 16.7kWh에 불과하다. 아이오닉5나 EV6 롱레인지(77.4kWh) 기준으로 21.6%, 약 100km를 겨우 달릴 수 있는 수준이다.

결국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00kW급 이상 충전기가 늘어나야 한다. 특히, E-피트 같이 단시간에 차량을 충전하고 빠져나갈 수 있는 초고속충전소 보급이 절실하다.

금강 휴게소 내 전기차 충전기의 모습. 손이 자주 닿는 부분에도 거미줄이 잔뜩 쳐져있다.
금강 휴게소 내 전기차 충전기의 모습. 손이 자주 닿는 부분에도 거미줄이 잔뜩 쳐져있다.

충전기 관리도 엉망이었다. 대부분의 충전소에 지붕이 없었다. 물론 안전하게 설계되었겠지만, 비를 맞으며 고전압·고전류가 흐르는 충전선을 차량에 꽂았다 빼기에는 걱정이 앞선다. 또한, 지붕이 없어 자외선이 충전기에 그대로 도달하며 디스플레이가 노랗게 변색되거나 갈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바닥을 굴러다니는 충전선도 아쉽다. 

금강 휴게소의 경우 3대의 충전기가 설치되어있는데, 전부 거미줄이 점령하고 있었다. DC콤보 케이블이나 카드 삽입구 등 사람 손이 자주 닿는 부분인데도 불구하고 거미줄이 있다. 사용 빈도가 떨어지는 AC 3상 충전 커넥터의 경우에는 선뜻 손을 대기 어려울 정도로 더러웠다.

정상 작동하는 충전기 역시 카드 결제 오류나 차량 인식 오류 등이 발생해 불편했다. 전기차 충전소에서 만난 한 시민은 "카드 인식이 잘 안될 때가 있어 여러 번 시도해야 한다"라며 "특히 오류가 발생하면 처음부터 결제해야 하기 때문에 복잡하고 번거롭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E-피트도 충전/결제 오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E-피트도 충전/결제 오류를 피할 수는 없었다

충전기가 고장 나거나 아직 설치 공사가 완료되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70대 중 고장난 충전기는 총 4기, 설치 중인 충전기는 17기로 전체의 30%나 됐다. 추풍령 휴게소의 경우에는 충전기 4대가 모두 공사 중이었는데, 언제 가동될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상황을 운전 중 알기는 어렵다는 점이다. 물론 스마트폰 앱이나 내비게이션에 안내되지만, 혼자 운전하고 있다면 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다. 또한, 앱에 표시되는 상태가 실제 충전소와 다른 경우도 많다. 최근에는 휴게소 안내 간판에 주차 가능 대수가 표시되는 경우가 있는 데, 전기차 충전 가능 대수나 현황까지 표시해준다면 좋을 듯하다. 

이-피트에서 충전 중인 차량(사진은 서해안고속도로 화성 휴게소)
이-피트에서 충전 중인 차량(사진은 서해안고속도로 화성 휴게소)

이렇게 고생을 하다 보면 결국 현대차그룹의 E-피트로 발길이 갈 수밖에 없겠다. 안성과 칠곡 휴게소에는 E-피트가 있었는데, 관리 상태도 좋고 충전 속도도 빨라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E-피트에는 여섯 대의 충전기가 마련돼 2대는 급속충전, 나머지 4대는 급속충전과 초급속충전을 모두 지원한다.

EV6로 직접 충전해본 결과, 배터리가 73% 남아있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충전 속도는 200kW를 웃돌았다. 최대한 많은 차량이 이용할 수 있도록 배터리가 80%까지 차면 충전이 종료되고, 차량을 15분 이내에 이동하지 않을 경우 수수료가 부과된다. 수수료는 비회원 기준 5000원이며, 회원은 1분당 100원이다.

가격은 확실히 비싸다. 초급속 충전 기준 kWh당 500원으로, 환경부 100kW급 급속충전(309.1원)의 약 1.6배에 달한다. 프라임 회원이 될 경우 299원으로 낮아지지만, 현대차·기아·제네시스 전기차 소유주만 가입할 수 있다. 

평사 휴게소에서 충전 중인 포터2 일렉트릭
평사 휴게소에서 충전 중인 포터2 일렉트릭

최근 전기차 기술 발달에 따라 배터리 용량은 늘어나고, 충전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그러나 고속도로에는 소수의 E-피트를 제외하고는 성능이 낮은 충전기가 대다수였다. 이에 더해 이미 사용 중이거나 고장, 혹은 방치된 충전기까지 더하면 실제 이용 가능한 대수는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기차 신규등록대수는 6만8996대로, 작년 상반기(3만9302대)보다 75.6%나 급등했다. 매년 10만대 이상의 전기차가 새롭게 도로로 나오는 상황이다. 이제는 전기차 보급 확대는 보조금 지급이 아니라 인프라 확대가 관건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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