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 쿠퍼 S 모델을 출고한 지 딱 10개월이 지났다. 작은 차체에 재밌는 주행 성능을 원했던 나에게 3도어 해치는 최고의 만족감을 선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갑자기 기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강력한 경쟁상대가 나타났다. 바로 미니 일렉트릭이다.

신차는 미니 쿠퍼 S 3도어 모델을 기반으로 만든 브랜드 첫 순수전기차다. 사실 그동안은 충전 환경이 좋지 못해 전기차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는데, 최근 아파트 주차장에 완속충전기가 설치되면서 사정이 180도 달라졌다. 내 애마의 전기차 버전은 어떨까? 전기로 달리는 미니의 맛은 어떨까? 심장을 통째로 갈아치운 미니 일렉트릭의 매력을 알아보기 위해 시내와 고속도로 약 1000km를 달렸다.

외모는 기존 내연기관 모델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공기흡입구가 사라진 것을 제외하면 전기차라고 해서 화려하게 뽐내거나 파격적인 디자인을 두르지도 않았다. 이는 실내도 마찬가지. 원체 개성이 강한 차량인 만큼, 곳곳에 추가된 노란 포인트컬러 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소화해낸다. 원작을 해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장점으로 다가온다.

배터리는 뒷좌석 아래 연료탱크가 있던 곳에 위치한다. 덕분에 운전석 시트포지션에는 변화가 없으며, 실내 공간 역시 내연기관 모델과 동일하다. 역시 미니는 전기차도 가장 미니스럽게 만들어냈다. 

달리기 실력은 어떨까? 시동을 걸자(전원을 켠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겠다) 1980년대 오락실에서 들릴 법한 독특한 웰컴 사운드가 운전자를 반긴다.

미니 일렉트릭의 최고출력은 184마력, 최대토크는 27.5kgf·m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7.3초다. 이는 2.0리터 터보 엔진을 탑재한 쿠퍼 S 3도어(최고출력 192마력, 최대토크 28.6kgf·m) 모델과 거의 동일한 스펙이다. 미니 일렉트릭의 풀 네임이 '미니 쿠퍼 SE'인 점에서 유추할 수 있는 성능이다.

숫자로만 본다면 운전자가 체감하기는 어려운 변화다. 그런데 막상 달려보면 그 차이가 꽤 선명하게 도드라진다. 전기로 달리는 미니의 가속이 훨씬 더 호쾌하다. 수치상으로는 분명 쿠퍼 S가 더 빠른데도(0-100km/h 도달시간 6.7초) 주행감은 일렉트릭이 더 짜릿하다.

이는 전기모터의 특성과 관련 있다. 특정 회전수에서 최고 성능이 발휘되는 내연기관과 달리 전기모터는 가속페달을 밟는 즉시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덕분에 가속에 딜레이가 적어 순간적으로 치고나가는 느낌이 더 생생하다. 실제 가속 성능을 측정하면 별 차이는 안 나겠지만, 운전자가 생활 속에서 느끼는 가속력은 미니 일렉트릭쪽이 더 우세하다.

출력보다 더 매력적인 부분은 승차감이다. 뒷바퀴를 누르는 무거운 배터리 덕분일까, 미니 특유의 통통 튀는 신경질적인 반응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특히 요철이나 도로 이음새 등을 지날 때 체감이 크다. 그러면서도 미니 특유의 날쌘 거동은 그대로 유지했다. 여기에 엔진이 사라져 조용해진 실내는 덤이다.

다음은 연비 테스트. 짧은 1회 충전 주행거리(국내 환경부 기준 159km)는 부정할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미니 일렉트릭의 실제 주행거리는 인증거리보다 훨씬 길었다.

출발에 앞서 배터리는 100% 완충, 계기판에 표기된 주행가능 거리는 186km를 나타냈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뜨거운 날씨 탓에 에어컨은 20도를 설정하고 바람 세기는 3단을 유지했다. 실생활 주행거리를 알아보기 위함인 만큼, 별 다른 연비주행 기술은 사용하지 않았다.

서울 시내와 간선도로를 흐름에 맞게 달렸다. 미니 일렉트릭은 예상치보다 훨씬 더 멀리 달렸다. 배터리가 5%, 잔여 거리는 6km가 남았을 때 계기판에 찍힌 누적 거리는 242km였다. 환경부 인증거리보다 83km나 더 달린 것이다. 몇 차례 완충과 방전을 반복했을 때도 200km는 가볍게 넘겼다. 연비 운전을 한다면 250km도 거뜬하겠다.

사실 미니 일렉트릭의 인증 주행거리가 짧은 이유는 단순하다. 배터리가 작아서다. 32.6kWh 배터리가 탑재됐는데, 이는 400km가량 달리는 다른 전기차(70~100kWh)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용량이다. 심지어 신형 레인지로버의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에 탑재된 배터리(38.2kWh)보다도 작다. 차체가 작아 큰 배터리를 넣지 못했고, 어쩔수 없이 주행거리가 짧아진 것이다.

그럼에도 놀랄 만큼 효율이 좋다. 200km 정도 달렸는데 계기판에 보여지는 연비는 7.4km/kWh에 달했다. 가속 페달에 아무리 힘을 줘도 6km/kWh대 후반에서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단순 계산하면 240km 이상을 달릴 수 있는 수치다. 배터리가 작지만, 덕분에 차체가 가벼워(1390kg) 효율이 높게 나오는 듯하다.

가격도 장점이다. 전기차들은 값비싼 배터리 때문에 가격이 크게 오르기 마련인데, 미니 일렉트릭은 쿠퍼 S와 유사한 4560만원~4990만원이다. 여기에 국고 보조금과 지자체 보조금까지 받는다면 쿠퍼 S보다 저렴한 3000만원 중반대에 구매할 수 있다.

미니 일렉트릭은 브랜드 특유의 감성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기차의 특성을 고스란히 녹여냈다. 전동화를 거치며 3도어 해치 모델의 전반적인 완성도도 높아졌다. 앞으로 나올 미니 브랜드의 다른 순수전기 차들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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