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편견 깨기'에 나선 할리데이비슨, 서킷·오프로드도 즐겁다
  • 태국=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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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7.16 09:00
[시승기] '편견 깨기'에 나선 할리데이비슨, 서킷·오프로드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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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데이비슨은 어떤 이미지일까. 특유의 배기음을 만끽하며 끝이 보이지 않는 길고 한적한 도로를 유유자적 달리는 그림이 떠오른다. 

그런데 아시아태평양법인에서 날아온 초청장은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행사 이름부터 'DRT(Dirt. Road. Track)'이다. 도로(Road)는 알겠는데, 할리데이비슨으로 흙길(Dirt)과 트랙(Track)이라니, 궁금증을 가득 품고 태국으로 날아갔다. 

# 할리로 서킷과 오프로드를 간다?

미디어 이벤트가 마련된 곳은 태국 파타야 외곽에 위치한 비라 서킷이다. 태국에선 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레이스트랙으로, 카트 레이스부터 타일랜드 슈퍼시리즈 같은 현지 경기는 물론, GT3 시리즈나 WTCR 등 세계적인 모터스포츠 이벤트까지 개최한 이력이 있다. 

행사 관계자들 입에서는 퍼포먼스와 오프로드, 트레일 등 브랜드와 생경한 단어가 난무했다. 바이크는 나잇스터, 로우라이더, 스포스터, 팬아메리카가 준비되어 있었다. 스포스터는 트랙에서, 팬아메리카는 오프로드에서 각각 경험해볼 것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서킷 위를 질주하는 스포스터는 그 이미지가 쉽게 상상되지 않았고, 오프로드에서 다룰 팬아메리카는 육중한 덩치에 부담감이 밀려왔다.

# 고속도로에서 몸풀기!

시작은 비라 서킷을 빠져나와 파타야 외곽 고속도로를 70여km를 주행하는 코스였다. 첫 파트너는 할리데이비슨 로우라이더 ST. 플래그십 모델 CVO에 쓰인 1923cc 밀워키 117 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06마력, 최대토크 17.2kg.m을 발휘하는 클럽스타일의 커스텀 바이크다. 

좁은 길에서 이리저리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 도심에서는 상당히 무게감이 느껴졌다. 고속도로 진입과 동시에 유턴을 해야 하는 코스도 부담감을 높였다.

하지만, 속도를 높여나가면 부담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진다. 무슨 마법이라도 부린 것일까. 무게감은 사라지고 안정적인 거동만 남아 편안하게 주행할 수 있다. 나들목 정도의 코너링은 자연스러운 하중 이동만으로도 충분히 통과할 수 있다.

인상적인 대목은 토크다. 저회전 영역에서 최대토크가 터져나오는 할리데이비슨 특성상 스로틀을 심하게 감지 않아도 여유로운 주행을 즐길 수 있다. 풍부한 토크감 탓에 클러치를 조작하는 데에도 별다른 어려움은 없다. 

스로틀을 과감하게 감으면 목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가속감이 밀려들고, 풍절음과 함께 뒤섞인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거친 고동감과 배기음이 귀를 때린다. 자연스레 허벅지와 팔에 힘이 들어가고 긴장감은 높아진다. 다른 바이크라면 상체를 잔뜩 웅크리고 맞바람을 최소화 해야겠지만, 전면부를 덮은 거대한 페어링이 공기 흐름을 제어해주니 편안한 자세로 속도를 만끽할 수 있다.

다음 갈아탄 바이크는 나잇스터. 최고출력 90마력, 최대토크 9.6kg.m을 내는 975cc 레볼루션맥스 엔진이 탑재된 모델로, 다크커스텀으로 인기를 모은 아이언883의 후신 격이다. 보다 보편적인 성능과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모델이어서일까. 한결 손쉽게 다룰 수 있었다.

크루저 바이크라는 걸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탓에 앞서 시승한 로우라이더 ST보다 산뜻한 움직임을 발휘한다. 밸런서를 적용해 엔진에서 발생하는 진동을 일부 줄였다고는 하지만, 살아있는 것처럼 반응하는 할리데이비슨 특유의 고동감은 여전하다.

인상적인 건 고회전 영역이다. 나잇스터는 저속에서 주행할 땐 생각보다 정숙한데, 엔진 회전수를 고회전으로 유지하니 말발굽 소리 같은 특유의 배기음을 지속적으로 토해낸다. 사운드를 만끽하기 위해 스로틀을 지속적으로 감다보니 속도계는 어느덧 아득한 곳까지 가있다. 

치열한 시승이 마무리 될 때 쯤에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흐드러진 야자수 사이로 쭉 뻗은 도로를 할리데이비슨으로 달리고 있다니. 여유로운 출력을 바탕으로 라이딩을 즐기니 영화 속 배경 어딘가를 달리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고속도로다.

# 경력있는 신입, 팬아메리카

온로드에서 복귀해 도착한 곳에는 팬아메리카가 마련되어 있다. 할리데이비슨이 최근 선보인 듀얼 퍼포즈 바이크로, 1252cc 레볼루션맥스 V트윈엔진을 탑재해 최고출력 150마력을 발휘하는 모델이다.

강력한 출력과 어마무시한 덩치에 걱정부터 앞섰지만, 팬아메리카는 생각보다 친절했다. 껑충 솟는 자세도 전자제어 서스펜션으로 높이를 조절해 보다 편안하게 탑승할 수 있다.

탁 트인 시야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연료 탱크 높이는 비슷한 포지션의 BMW GS 시리즈나 혼다 아프리카트윈보다 낮다. 그렇다보니 스탠드 포지션으로 주행하지 않아도 전방 장애물을 손쉽게 확인하고 대처할 수 있다.

레볼루션맥스 엔진의 부드러운 응답성도 오프로드에서 자신감을 더해주는 요인이다. 저회전 영역에서의 토크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보니, 자칫 바이크가 확 튀어나가 제어에 어려움을 겪을 일도 없다.

팬아메리카는 그립이 확보되지 않는 모래에서도 친절하다. 스로틀 조작 실수로 꽁무니가 흐트러질 기미가 보이면 곧바로 자세를 고쳐잡는다. 전자식 액티브 서스펜션과 오프로드 주행모드가 치열한 계산을 이어간다. 스로틀을 감고 이래저래 차체를 기울이면 바이크가 모든 걸 알아서 제어해준다. 여기에 안정적인 브레이킹 성능도 인상적인 대목이다. 브레이크가 밀릴 것만 같은 모랫길에서도 점진적이고 꾸준하게 속도를 줄여나간다.

시승을 마치고 "처음 만든 멀티 퍼포즈라는걸 감안해도 너무 잘 만든 바이크 같다"는 말에 현지 담당자는 "처음이 아닐지도 모른다"라고 웃으며 답했다. 할리데이비슨은 1950년대 K 시리즈로 더트 레이스를 휩쓸었고, 이후 XR750으로 미국의 모터사이클 챔피언십에서 여러 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경력있는 신입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의구심은 트랙 위에서 확신으로 바뀌었다

본격적인 서킷 주행에서 만난 모델은 스포스터S다. 팬아메리카에 적용된 1252cc 레볼루션맥스 V트윈엔진을 탑재해 121마력을 내는 모델이다.

분명 할리데이비슨인데, 전통적인 크루저와 여느 네이키드 장르가 뒤섞인 느낌이다. 팻밥에서 온 헤드램프와 포티에잇에서 접한 두툼한 타이어는 영락없는 할리데이비슨인데, 드러난 엔진과 업 머플러는 어딘가 색다르다.

라이딩 포지션도 생소하다. 네이키드 장르보다도 낮은 시트고에 다리를 앞으로 뻗고 탈 수 있는 포워드 스텝이다. 여느 할리데이비슨처럼 느긋한 자세도 아니고, 본격적으로 달릴 수 있는 포지션도 아니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포워드 스텝도 트랙 몇 바퀴를 돌고 나니 생각 이상으로 편하다. 여기에 상체를 연료탱크로 밀착시키고 니그립을 확실히 체결하면 달리기에도 좋고, 안정적인 자세가 나온다. 두툼한 타이어는 차체를 한껏 기울여도 안정적인 움직임을 이어간다. 

레볼루션맥스엔진의 호쾌한 가속성능도 일품이다. 스로틀을 더 자극적으로 당겨주면 거칠게 반응하는 엔진음에 바이크를 더 막 다루고 싶어진다. 신경질적인 가속성능으로 스로틀을 당길 때마다 자연스레 쾌재를 부르게 된다. 

시승을 마친 뒤에도 어떤 바이크가 가장 인상적이었냐는 말에 고민없이 스포스터S를 꼽았다. 어쩌면 할리데이비슨이 쌓아온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델이라 더 뇌리에 깊게 박혔다.

5시간여를 날아와 경험한 할리데이비슨은 클래식한 아메리칸 크루저가 아니었다. 이들은 기존 전통을 계속 이어가면서도, 특정한 장르로 정의할 수 없는 독특하고 개성있는 바이크를 선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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