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아우토반의 나라 독일, 자전거가 자동차를 밀어내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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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07 10:17
[이완 칼럼] 아우토반의 나라 독일, 자전거가 자동차를 밀어내다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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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2.06.07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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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상징의 하나로 여기는 아우토반은 자유의 공간으로도 불립니다. 이곳에서 시속 200km 이상으로 질주가 가능한 것은 뛰어난 토목 기술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인데요. 또 잘 교육된 운전자들이 만들어가는 운전 문화 덕에 운전 환경이 쾌적하고 사고율이 낮다는 점도 자랑거리 중 하나가 아닐까 합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사진=DUH

극단적 주행이 가능한 이런 도로의 존재는 그에 맞는 자동차를 개발할 수밖에 없게 했고, 이런 환경 속에서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독일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자동차 산업은 누가 뭐래도 독일을 지탱하는 핵심 산업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아우토반과 자동차를 빼고 독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정권 들어설 때마다 나오는 아우토반 논쟁

그런데 요즘 분위기는 이곳이 정말 무한 질주가 가능하고 자동차로 먹고사는 나라가 맞나 하는 생각까지 들게 합니다. 앞서 소개한 아우토반의 경우 오래전부터 속도제한이 필요하다는 여론에 휩싸여 있습니다. 특히 선거 이후 새롭게 국회가 열리거나 새로운 내각이 구성될 때마다 빠지지 않고 아우토반에 속도제한 표지판이 세워져야 한다는 여론에 힘이 실립니다.

많은 독일인이 속도제한을 한다면 시속 130km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많은 독일인이 속도제한을 한다면 시속 130km가 가장 적합하다는 의견을 냈다 

특히 환경문제를 중요하게 여기는 독일인들은 고속도로의 안전을 높이는 것은 물론, 배출가스 문제와 엄청난 소음, 그리고 제동과 질주 시 나오는 미세먼지와 부유먼지 문제 등을 빼놓지 않고 이야기합니다. 최근에는 중도보수의 메르켈 정부가 물러나고 중도진보 노선의 숄츠 정부가 들어서면서 더 속도제한에 대한 요구가 강한 상황입니다.

그나마(?) 새롭게 임명된 친기업 성향 정당 출신의 교통부 장관이 강하게 반대하며 버티고 있다는 것이 아우토반 속도제한 반대파들에겐 유일한 위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하지만 많은 독일인이 전기차가 많아지고 자율주행 기술이 더 많은 자동차에 적용이 된다면 속도의 아우토반 문화도 결국 변할 수밖에 없을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도시에서 밀려나는 자동차들

아우토반 얘기를 먼저 꺼내긴 했지만 사실 더 빠르게 변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독일 도시들입니다. 요즘 곳곳에서 공사가 한창입니다. 1개 차로를 없애고 그곳을 자전거 전용도로로 바꾸기 위한 공사들인데, 프랑크푸르트, 베를린, 함부르크 등, 어느 도시 할 것 없이 경쟁적으로 진행 중입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곳곳에 차로가 줄고 자전거전용도로가 생겨나고 있다 / 사진=ADFC
프랑크푸르트 시내 곳곳에 차로가 줄고 자전거전용도로가 생겨나고 있다 / 사진=ADFC

이런 움직임이 도시 안에만 있는 게 아닙니다. 도시와 도시 주변을 연결하는 국도변에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지는데, 공사로 정신이 없을 지경입니다. 이처럼 독일 전체가 자전거 전용도로 건설 붐이 일고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도심의 차로는 더 막히고 길에서 소비하는 시간도 늘 수밖에 없습니다. 차를 안 가지고 가자니 너무 번거롭고, 차를 가지고 출퇴근을 하려니 길이 너무 막히는 상태가 된 겁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해 최근에는 도심지 주변에 개인 주차 공간을 임대하는 사업이 계속 성장 중입니다. 저렴하게 빌린 개인 주차장에 차를 대고 버스나 지하철로 2~3개 정거장만 가면 되기 때문에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계속 늘고 있죠. 또 인근 시골, 혹은 다른 도시에서 도시로 출근하는 많은 이들이 집 근처 지하철역이나 국철역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기도 하는데요.

차가 다니던 베를린 시내의 한 도로가 자전거전용도로로 바뀌었다 / 사진=ADFC
차가 다니던 베를린 시내의 한 도로가 자전거전용도로로 바뀌었다 / 사진=ADFC

하지만 주차 공간이 제한적이고 무료라 경쟁이 보통이 아닙니다. 어찌어찌해서 자동차로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고 해도 자전거 전용도로가 건설되면서 낮아진 도시 최고 제한속도로 인해 빨리 가려는 기대도 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최고속도 50km/h인 곳들 중 상당수가 현재 제한속도를 시속 40km로 낮추고 있는데 이것도 모자라 더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대중교통 무료화로 간다?

이처럼 자전거의 나라, 자전거의 도시로 계속 바뀌고 있는 독일에서 최근 시작된 파격적인 대중교통 프로젝트가 있는데 이것이 어떻게 독일을 바꿀지도 흥미롭습니다. 한 달 9유로(한화 약 12,000원)짜리 정액권을 사면 독일 거의 모든 지역의 버스나 지하철, 트램, 혹은 기차 등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인데요. 6월부터 8월까지 3개월간 진행되는 이 정책은 시작 전 우려가 있었지만 현재 그 반응은 뜨겁습니다.

사진=ADFC
사진=ADFC

9유로 티켓 정책은 급격한 물가상승에 따른 서민의 부담을 줄이고 팬데믹으로 이용자가 준 대중교통 활성화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하지만 더 큰 목적도 담겨 있죠. 자동차 이용자들이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유인해 도시 환경을 개선하고 교통안전을 더 높이겠다는 것입니다.

현재 독일 일부에서 이번 '9유로 티켓' 정책을 시작으로 독일의 대중교통이 완전 무료화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중입니다. 유력한 언론과 정치인, 그리고 여러 단체가 이에 동의하고 있습니다. 엄청난 세금이 쓰이는 일이기 때문에 당장 가능할 것이라 보진 않지만 현재 독일 분위기를 보면 아예 못 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독일 아우토반 전경 / 사진=이완 

전해드린 몇 가지 경우를 통해 현재 독일이라는 나라가 얼마나 이동성 문제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고, 또 시도를 하고 있는지 짐작하셨으리라 봅니다. 환경과 교통안전, 그리고 도시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꾸겠다는 정치적 담론이 뒤섞여 자동차 친화적인 독일은 지금 큰 변화의 물결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는 꽤 많은 시민을, 꽤 많은 운전자를 설득하고 있습니다.

반대 목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의 문제일 뿐 변화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분위기는 이미 사회 전반에 깔린 듯합니다. 심지어 자동차 제조사들도 이런 변화에 맞춰 기업의 생존 전략을 짜고 있으니까요. 과연 독일이 이동성 문제에 있어 어디까지 가고 어떤 변화된 모습을 보일까요? 그 끝이 궁금한 요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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