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911 GT3·718 GT4·카이엔 GT…포르쉐, 자신을 넘어서다!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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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3 10:00
[시승기] 911 GT3·718 GT4·카이엔 GT…포르쉐, 자신을 넘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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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코리아의 기세가 무섭다. 올해 1~9월 집계된 판매량은 전년대비 14.2% 증가한 7211대로, 이미 지난해 연간 판매량(7779대)을 넘어 역대 최고 실적이 확실시 되고 있다. 회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신차 공세를 펼치고 나섰다.

올 하반기 포르쉐의 핵심은 하이 퍼포먼스 라인업 GT다. 주력 차종인 카이엔을 기반으로 한 카이엔 터보 GT를 비롯해 911 GT3와 718 GT4 등 스포츠카 라인업을 한층 보강할 방침이다. 모터스포츠 DNA를 바탕으로 한 고성능차를 투입해 국내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높이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때마침 출시 전 세 차량을 동시에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수도권 수은주가 한자릿수를 기록했던 날, 911 GT3와 718 GT4, 그리고 카이엔 터보 GT를 경험하기 위해 인제스피디움을 찾았다. 

# "이게 SUV라고!" 카이엔 터보 GT

"아니, 도대체 무슨 SUV가 이렇게 움직이죠?"

카이엔 터보 GT를 몰고 코너를 도는 순간, 인스트럭터로 동승했던 임채원 선수에게 뱉은 말이다. 그 역시 혀를 내둘렀던 건 마찬가지다. 많은 차를 타봤지만, SUV에서 경험해본 적이 없던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노면을 꽉 붙잡은 그립력은 기본, 태생적 한계일 수밖에 없는 롤링 현상까지 억제되어 있다. 카이엔 터보 GT는 SUV임에도 운전자가 스티어링 휠을 돌리는 만큼 원하는 대로 움직여준다.

포르쉐는 카이엔 터보 GT에 비현실적인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해 많은 비결을 쏟아부었다. 차체는 카이엔 터보 쿠페보다 17mm 낮췄고, 네거티브 캠버 각도는 0.45도를 키웠다. 타이어는 오직 카이엔 터보 GT만을 위해 마련된 피렐리 P제로 코르사 퍼포먼스를 사용했다.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에도 전용 알고리즘을 적용하는 한편, 3챔버 에어 서스펜션은 강성을 15% 증대시켜 육중한 차체를 더욱 잘 떠받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핸들링이 좋으면 출력이 아쉽고, 출력이 넘치다보면 핸들링이 아쉬운 차가 더러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카이엔 터보 GT는 뛰어난 핸들링에 출력마저 차고 넘친다. 최고출력 650마력을 발휘하는 4.0리터 V8 바이터보 엔진과 8단 팁트로닉 변속기는 현존하는 포르쉐의 V8 유닛 중 가장 강력하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는 3.3초만에 가속하는데, 이는 같은 날 경험한 911 GT3(3.3초)와 맞먹는다.

이렇다 보니 가속페달에 힘을 주기가 두렵기까지 하다. 일단 튀어나가기 시작하면, 몸은 먼저 나아갔는데 영혼은 아직 저 뒤에 남아있는 것 같은 기분을 여러 차례 느꼈다. 마지막 코너를 탈출해 직선구간 끝에 다다른 순간, 속도계는 220km/h 인근까지 닿아있다. 

고출력 터보엔진은 통상 세밀한 조작이 어렵다고들 하지만, 카이엔 터보 GT는 아니다. 코너에서 가속 페달을 점진적으로 밟아 나가도 신경질 한 번이 없다. 급제동 후 재가속 하는 상황에서도 터보랙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같은 엔진의 아우디 RSQ8은 답답한 터보랙 현상으로 살짝 짜증을 유발했던 것이 생각났다. 도대체 아우디는 이 좋은 엔진으로 왜 그렇게 세팅했을까.  

객관적으로도 카이엔 터보 GT가 RSQ8보다 좋다. 카이엔 터보 GT는 최근 뉘르부르크링을 7분38초925 만에 주파해 양산형 SUV 중 가장 빠른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참고로 2019년까지 이 기록은 아우디 RSQ8(7분42초)이었는데, 종전보다 4초 이상 앞당겨진 기록이다.

# "기대만큼 재미도 컸다" 718 GT4

카이엔 터보 GT에 이어 탑승한 차량은 718 카이맨 GT4다. 사실 이번 시승에서 가장 궁금했던 차량이다. 이는 현재 판매되는 포르쉐 718 시리즈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모델이다. 포르쉐 스포츠카 라인업 중 가장 작은 차체를 갖췄지만, 형님 911의 엔진을 얹어 서킷의 하극상으로 유명하다.

시승차량은 보는 것 만으로도 살벌했다. 거대한 프론트 스포일러 립이 가장 먼저 눈에 띄고, 시선을 따라 가보면 후면부에는 더 거대한 고정식 리어 스포일러가 마련되어 있다. 실내에는 6점식 안전벨트에 롤케이지와 차량용 소화기까지 비치된 클럽스포츠 패키지 옵션이 더해졌다. 이렇게 꾸며놓으니 영락없는 레이스카다. 

파워트레인은 미드십 형태로 배치된 420마력 4.0리터 수평대향 자연흡기 엔진과 7단 포르쉐 듀얼클러치 변속기(PDK)다.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 주파하는 시간은 3.9초에 불과하며, 엔진 회전수를 8000rpm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고회전 엔진의 감성과 자연흡기 특유의 즉각적인 응답성까지, 스펙만으로도 트랙에서 진가를 발휘할 것만 같았고, 그래서 시승 전부터 유독 기대가 컸다.

성능은 기대했던 그대로다. 정확히는 기대 이상이다. 예민하다 못해 신경질적이기까지 한 가속 페달을 짓이기면 회전 게이지는 8000rpm을 향해 맹렬히 치솟는다. 수평대향 엔진 특유의 카랑카랑하고 정제되지 않은 엔진 사운드는 소프트톱을 열고 주행했던 718 GTS 4.0보다 더 우렁차게 들린다. 페달을 처음 밟았을 때 엔진 반응은 게이지가 3시 방향을 넘어가는 순간까지 지침 없이 꾸준하다.

스티어링 휠을 돌리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진다. 트랙 주행을 위해 재설계된 토크 벡터링,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 댐핑 시스템 등이 진가를 발휘한다. 덕분에 급격하게 속도를 줄여도 노즈 다이브 현상은 온데간데 없고, 코너를 돌아나가는 내내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다. 마치 공상과학 영화 속 로봇처럼 운전자가 움직이는대로 정직하게 반응한다.  

오르막 구간이 포함된 코너에서는 718 GT4의 진가가 발휘된다. 무게 중심은 자연스레 뒤로 이동하고, 그 하중은 뒷바퀴를 꽉 붙잡아준다. 덕분에 가속 페달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밟아나가도 좀처럼 꽁무니가 흔들리지 않는다. 저단 기어에서 고회전 엔진 특유의 맛을 즐기는 재미도 쏠쏠하다. 

# "서스펜션의 마법" 911 GT3

마지막으로 올라탄 차량은 911 GT3다. 포르쉐 모터스포츠 사업부가 개발 초기단계부터 깊숙이 관여해 다양한 고성능 기술이 집약됐다. 사실상 온로드 주행이 가능하도록 설계한 레이스카라고 할 수 있다. 모터스포츠 무대에서만 보던 스완 넥 리어 윙과 GT 레이스카 911 RSR에서 영감을 받은 디퓨저 등이 대표적이다.

파워트레인은 실제 레이스카에서 가져왔다. 4.0리터 수평대향 자연흡기 엔진과 7단 PDK는 911 GT3 R의 심장을 기반으로 한다. 최고출력은 510마력, 정지상태에서 100km/h까지는 단 3.4초만에 주파하며, 최고속도는 318km/h로 제한된다. 

최고출력은 8400rpm에서 발산되지만, 이건 그리 중요한 포인트가 아니다. GT3는 무려 9000rpm에서 변속한다. 경험해본 적 없던 영역에 돌입하니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고, 긴장감에 어깨에는 잔뜩 힘이 들어간다. 손에 땀이 나기 시작하지만, 스티어링 휠을 고쳐 잡을 여유는 없었다. 그만큼 GT3는 빨랐다. 

핸들링 성능도 마찬가지. 더이상 차량이 선회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스티어링을 돌렸는데, 조금 더 각도를 틀면 차량 전면부가 안쪽을 한번 더 파고든다. 전륜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과 후륜 조향 기능이 만들어내는 마법이다. 차 안에서는 횡가속력에 목을 가누기도 힘든데, 911 GT3는 이런 물리법칙까지 무시하며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더블 위시본 서스펜션만이 비결은 아니다. 차제가 전반적으로 커진것도 영향을 미친다. 팔굽혀펴기를 할 때, 팔을 넓게 뻗을수록 안정감있는 자세가 나오는 것과 같은 이치다. 후륜 대비 전륜 그립 확보가 어려운 RR 차량임에도 앞바퀴를 꽉 눌러준 채 주행할 수 있다.

물론, 일상에서 즐길 수 있는 스포츠카라는 911의 본질에도 충실하다. 노멀 모드에서 주행하면 앞선 치열함이 무색할 정도로 배기음은 잦아들고, 서스펜션은 말랑말랑해진다. 쿠션보다 아키텍쳐가 더 드러나있는 시트, 스웨이드 소재로 가득한 내장재와는 별개로 일정 구간에서는 노면 충격을 제법 잘 걸러낸다는 느낌까지 받았다. 누군가에게 평일에는 출퇴근을, 주말에는 서킷을 가기 위한 멀티플레이어 역할도 할 수 있겠다.

앞서 IAA모빌리티 출장을 겸해 독일 아우토반에서 이 차를 마음껏 즐겼을 후배가 부럽고 질투가 절로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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