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타이칸 터보S 크로스투리스모 "포르쉐 최고의 욕심쟁이"
  • 뮌헨=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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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10.21 14:16
[시승기] 타이칸 터보S 크로스투리스모 "포르쉐 최고의 욕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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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2019년 첫 전기차 타이칸을 선보이며 "전기차 시대에도 포르쉐는 역시 포르쉐다!"란 감탄을 이끌어냈다. 직접 경험해본 타이칸은 포르쉐 특유의 가속력과 코너링 성능을 바탕으로 전기차의 새로운 미래를 제시했다.

다만, 타이칸은 스포츠카 특유의 좁은 실내 공간과 부족한 적재 공간까지 답습했었다. 파나메라와 마찬가지로 2열이 존재하지만, 바닥에 깔린 배터리 탓에 뒷좌석 승객의 헤드룸 공간이 부족했고, 트렁크 용량 역시 제한적이었다.

이에 포르쉐는 더 넓은 헤드룸과 트렁크 용량을 확보한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를 출시하며, 전기 스포츠카 세그먼트의 진정한 '올 라운더' 자리를 노리고 나섰다. 이달 14일 국내 공식 출시된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를 독일 현지에서 미리 만나봤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는 B필러 앞쪽만 놓고 본다면, 타이칸과 크게 달라진 점을 찾기 힘들다. 전면부 얼굴은 공개된 지 2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미래지향적이다. 독특한 쿼드 램프를 비롯해 그와 연결된 에어인테이크까지 감각적이다.

앞쪽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차이점은 딱 두 가지다. 우선 기본으로 제공되는 오프로드 디자인 패키지 덕분에 지상고가 높아졌다. 험로를 주파하기 위해 지상고가 높아지며 바퀴와 휠 하우스는 주먹 한 개가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사이가 멀어졌다. 또, 험로에서 발생할 수 있는 상처를 방지하기 위해 휠하우스 테두리를 플라스틱으로 둘러 차체를 보호하는 클래딩이 탑재됐다.

물론, B필러 뒤쪽으로는 완전히 다른 자동차다. 급격히 떨어지던 루프라인은 A필러에서 최정점을 찍고 뒷바퀴까지 부드럽게 흐르도록 바뀌었고, 훨씬 더 풍만해진 엉덩이를 비롯해 일자로 쭉 이어진 테일램프까지 처음부터 이런 디자인으로 만든 것처럼 이질감이 전혀 없다. 

실내도 마찬가지다. 1열은 기존 타이칸과 다른 부분을 찾아보기 어렵다. 10.9인치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16.8인치 커브드 디지털 클러스터가 자리하며, 오른쪽에는 동승객을 위한 10.9인치 디스플레이가 배치됐다. 그 아래는 공조 장치 조작을 위한 8.4인치 디스플레이가 위치한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의 백미 역시 2열이다. 급격히 떨어지던 루프라인이 완만하게 이어지며 헤드룸이 47mm나 늘어났다. 숫자로는 5cm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2열에 앉아보면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헤드룸이 넉넉해지며 2열 시야도 넓어졌고, 파노라믹 글래스 루프가 머리 뒤까지 쭉 이어져 심리적인 여유까지 생긴다. 

다만, 기존 모델에서 지적받았던 불편한 등받이 각도나 차량 가격에 걸맞지 않은 부실한 2열 컵홀더 겸 암레스트는 여전하다. 그리고 2열 가운데 좌석에도 안전벨트 및 헤드레스트 등을 마련해놓았지만, 불룩 솟아있는 시트와 센터 터널 탓에 정상적으로 앉기는 불가능했다. 사실상 4인승에 가깝다.

이어 트렁크로 자리를 옮겼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는 왜건답게 뛰어난 적재 공간을 갖추고 있다. 앞쪽 보닛 아래에는 작은 가방을 넣을 수 있을 84L의 공간이 있고, 기본 트렁크 용량도 405L에 달한다. 2열을 모두 접었을 때는 무려 1171L까지 활용할 수 있다. 왜건형 엉덩이를 가지며 한결 큰 짐을 싣고 내리는 데도 편리하다. 게다가 2열 시트는 4:2:4 비율로 거의 플랫하게 접히기 때문에 차박에도 용이하다. 

차량 곳곳을 둘러보고 다시 운전석에 앉았다. 브레이크를 가볍게 밟고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있는 전원 버튼을 누르자 낮잠에서 깨듯 어느새 고요하게 달릴 준비를 마친다. 

시승차는 국내 출시되지 않는 최상위 모델인 타이칸 터보S 크로스투리스모다. 터보S 모델은 앞·뒤 각각 탑재된 모터가 협업해 최고출력 460kW(약 625마력), 최대토크는 무려 1050Nm(약 107.1kg·m)를 발휘한다. 여기에 론치컨트롤을 사용하면 순간적으로 761마력의 오버부스트 출력이 발휘된다.

뛰어난 하드웨어 스펙을 바탕으로,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는 2.9초 만에, 200km/h까지는 9.7초 만에 가속을 마친다. 세단 모델인 타이칸 터보S가 100km/h까지 2.8초, 200km/h까지 9.6초 소요됐던 것과 비교하면 한층 더 큰 키와 무거운 엉덩이, 그리고 험로 주파 능력까지 갖췄음에도 0.1초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다만, 높아진 지상고로 인한 주행 안정성 저하 때문인지 최고 속도는 타이칸 터보S보다 10km/h 낮은 250km/h에서 제한됐다.

이러한 수치는 가속 페달에 살짝만 발을 얹어도 곧바로 체감할 수 있다. 최대토크가 즉각 발휘되는 전기 모터의 특성까지 더해지니 경쾌함을 넘어 부담스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부담스러움도 잠시, 두려움은 이내 운전의 즐거움으로 바뀐다. 게다가 제한속도가 없는 아우토반이 즐비한 독일에서 달리니 더욱 즐겁다. 

주행 모드는 타 브랜드의 에코 모드에 대응하는 레인지 모드부터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인디비주얼 등 5가지가 마련됐다. 주행모드를 바꿀 때마다 표시되는 주행 가능 거리는 실시간으로 변화한다. 여기에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에는 자갈(Gravel) 모드가 추가됐다. 자갈 모드를 활성화 하면 에어 서스펜션이 차체를 들어 올려 지상고가 높아지고, 사륜구동 시스템도 험로 주행에 최적화된다.

아우토반의 속도 무제한 구간을 맞아 스포츠 플러스 모드를 체결하고 강하게 가속 페달을 밟았다. 우주로 빨려 가는 듯한 가상 사운드와 함께 지면을 강하게 박차고 나간다. 차량은 생각보다 더 강하게 튀어 나갔고, 온몸은 시트를 짓누르기 시작한다. 

200km/h 넘는 고속도로를 달리는 와중에도 차체는 안정감을 유지한다. 3 챔버 어댑티브 에어 서스펜션이 포함된 포르쉐 액티브 서스펜션 매니지먼트(PASM) 시스템이 탑재되어 모든 섀시 시스템을 실시간으로 분석하고 반응해 어지간한 요철이나 코너는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이러한 안정감은 차체 바닥에 깔린 배터리 덕분이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는 93.4kWh 용량의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가 기본 사양으로 탑재됐다. 이 중 안전을 위한 마진을 제외하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용량은 약 83.7kWh다. 터보S 모델 기준 WLTP 인증 주행거리는 388km다.

"잘 멈출 수 있는 차만 잘 달릴 수 있다"고 했던가. 타이칸은 달리기 실력에 걸맞게 제동 성능도 출중하다. 시승차에는 전륜에 10피스톤, 후륜에 4피스톤 알루미늄 모노 블록 브레이크가 각각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와 맞물린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순간 거대한 배터리가 탑재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을 만큼 칼같이 반응한다. 

한참을 신나게 달리다 보니 배터리는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고, 충전이 필요해졌다.

타이칸은 최대 270kW 급속 충전을 지원해 5%에서 80%까지 이론상 약 22분 30초 만에 충전할 수 있다. 실제로 배터리가 35% 정도 남은 상태에서 350kW급 충전기를 사용해본 결과 약 45분 만에 98%까지 충전됐다. 실 충전 속도는 120kW에서 150kW 사이를 오갔다. 급속 충전 특성상 80%까지는 20분도 채 되지 않아 도달했지만, 80%에서 98%까지 충전하는 데 절반 넘는 시간이 소모됐다. 이때 계기판에 표시된 주행 가능 거리는 330km다.

타이칸 크로스투리스모를 '전기 스포츠 왜건'이라고 굳이 불러야 할까. 이 차는 포르쉐의 감성을 유지한 '포르쉐' 그 자체다. 기존 타이칸이 보여줬던 운전의 재미에 왜건의 실용성까지,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모두 잡았으니 실로 욕심쟁이라 할 수 있겠다. 비록 한국에서는 인기가 없는 왜건이지만, 이렇게 만든다면 어느 누가 매력을 느끼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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