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아우토반 '속도무제한' 사라지나…독일의 선택은?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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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5 09:00
[이완 칼럼] 아우토반 '속도무제한' 사라지나…독일의 선택은?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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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7.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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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속 200km 이상으로 자동차가 달릴 수 있는 공공도로는 얼마나 될까요? 법으로 속도에 제한을 두지 않는 도로가 몇 군데 있기는 하지만 실제 최고 속도로 마음껏(?) 달릴 수 있는 곳은 독일의 아우토반이 거의 유일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독일에서 아우토반에 이제는 속도에 제한을 둬야 한다는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습니다.

아우토반 A9 전경 / 사진=이완

# 70%가 무제한 구간인 아우토반

1927년 토목 엔지니어인 로베르트 오트첸이 처음 사용한 ‘아우토반’이란 용어는 독일의 자동차 문화를 대표하는 단어가 되었습니다. 독일의 많은 운전자가 이 도로를 ‘자유의 공간’이라 부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기를 두려워하지 않죠. 현재 아우토반의 70%, 그러니까 약 1만8000km 구간에서 속도 제한 없이 달릴 수 있습니다.

130km/h라는 권장 속도가 있기는 하지만 법적으로 어떤 구속력도 가지지 않습니다. 말 그대로 마음껏 쏘고 달려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모든 독일인이 아우토반의 무한 질주를 환영하는 건 아닙니다. 예전부터,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아우토반의 최고 주행 속도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나오고 있습니다.

아우토반 / 사진=위키피디아 & Ra Boe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아우토반 속도제한은 정치권의 오랜 고민거리 중 하나입니다. 지난해 2월 독일 연방 의회에서 아우토반 최고 제한 속도를 130km/h로 하자는 안건을 놓고 투표가 있었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요? 과반의 표를 얻지 못해 부결되고 말았습니다. 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정치권, 특히 거대 정당들의 경우 마치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일처럼 이 문제에 대해 총대를 쉽게 메려고 하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하지만 속도제한에 대한 목소리는 힘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계속 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예를 들면 독일 개신교 단체는 수만 명의 서명을 받아 속도 제한이 있어야 한다는 청원서를 연방 하원에 제출하기도 했습니다. 2019년에 있었던 설문조사에서는 속도제한 찬성(51%) 의견이 반대(47%)를 앞서기도 했죠. 또 다른 조사에서는 57%의 응답자가 최고제한속도를 시속 136km로 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여론에도 정치인들은 쉽게 움직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근 의미 있는 자료 하나가 더 공개되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 최대 운전자 클럽 아데아체가 돌아섰다

독일의 많은 운전자가 (유료)회원으로 가입돼 있는 아데아체(ADAC)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회원 수가 2천만 명이 넘을 정도의 큰 클럽인데요. 회원들이 자동차 관련해 겪는 거의 모든 일을 처리하고 또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그런 곳입니다. 유럽 어느 도로에서 사고로 부상을 당했다면 제트기나 헬기 등을 동원해 후송할 정도죠.

이렇게 규모가 큰 단체이다 보니 여기서 나오는 교통 정책 관련한 목소리는 정치권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 클럽의 특징은 회원의 이익을 우선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간 아데아체는 회원들이 반대한다는 점을 들어 아데아체는 아우토반 속도제한에 반대했습니다. 그런데 올해 5월에 나온 회원들 조사 결과는 그간의 분위기와 달랐습니다. 응답자의 50%가 속도제한에 찬성했고, 45%가 반대한 것입니다. 25년 만의 역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아우토반에 제한속도를 두려고 하는 걸까요?

아데아체 회원들의 아우토반 속도제한 찬반 변화를 나타낸 표. 노란색 선이 속도제한을 찬성하는 비율 / 자료=adac

# 교통사고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가장 많이 언급되었던 이유는 역시 ‘교통안전’이었습니다. 속도를 제한해 보다 안전한 아우토반을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안전’은 그리 설득력 있는 이유가 되지 않는 듯합니다. 왜냐하면 아우토반은 독일에서 사용 빈도가 높은 도로이면서 동시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가장 적은 도로이기 때문입니다.

독일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독일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2,719명이었습니다. 그중 1,592명이 국도에서 사고로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사고의 60%에 해당합니다. 도시에서 사망한 비율(자전거, 보행자 포함)은 28%였으며, 아우토반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비율은 12%였습니다.

또한 과속으로 사망자가 나온 것은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 발생 원인의 13% 수준으로, 그 비중이 크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다시 아우토반만 한정한다면 그 비율은 더 줄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 속도제한이 있는 트럭이 아우토반에서 일으키는 사망사고(2020년 기준 약 166명 사망)까지 제외한다면 자동차가 아우토반에서 과속 등으로 일으키는 사고 비율은 더 줄게 됩니다.

아우토반 사고 현장 / 사진=픽사베이

그렇다면 독일의 아우토반은 속도 제한이 있는 유럽 국가들과 비교해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어느 정도일까요? 유럽 도로 안전 위원회의 2016년 자료를 보면 1000km 당 사망자가 가장 많은 곳은 불가리아(시속 130km 제한)로 83.1명이었으며 가장 적은 곳은 아일랜드(시속 130km 제한)로 5.6명이었습니다.

독일은 30.2명으로 이탈리아(39.5명)보다는 낮았지만 네덜란드(제한속도 100km/h)의 27.9명, 프랑스(130km/h 제한)의 23.3명, 영국 (113km/h 제한)의 25.5명 등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최근엔 독일 아우토반의 사망자 수가 더 줄어 차이는 좁혀졌습니다.

이처럼 사고 횟수가 줄고 있고, 그에 따라 사망자 수가 계속 줄면서 ‘안전’은 속도제한을 설득할 강력한 요인이 되지 못한다는 게 반대론자들의 주장입니다. 특히 독일 내에서 속도제한이 있는 아우토반에서의 사고율과 속도제한이 없는 아우토반에서의 사고율이 큰 차이가 없다는 것도 반발의 근거로 얘기되고 있습니다.

# 결국은 환경?

결국, 최근 아우토반 속도제한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은 교통안전보다는 환경보호와 조금 더 관련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독일 연방환경청은 지난해 아우토반의 제한속도를 120km/h로 낮추게 되면 이산화탄소 배출을 연간 260만톤 줄일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시속 130km일 경우 190만톤 감소)

사진=픽사베이 

하지만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습니다. 해당 자료는 최근 조사에 의한 것이 아닌, 1990년대 자료라는 점에서 설득력이 그리 크지 않다는 것이며, 무엇보다 시속 130km로 제한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산화탄소 190만톤 감소는 독일 전체 도로에서 생성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3% 미만이기 때문에 아우토반 속도제한이 이산화탄소 저감 정책의 우선순위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 ‘속도제한 실제로 이뤄지면 상징적 사건될 것’

아우토반 속도제한과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었는데요. 고급 법인 차량을 이용하는 사람들, 그리고 SUV 운전자들이 특히 제한에 반대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들 조차 아우토반에서 시속 130km 이상 운전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또 이와 비슷한, 운전자의 50% 이상이 아우토반에서 시속 150km 이하로 주로 운전한다는 다른 조사 결과도 있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아우토반에서 속도감과 쾌적한 주행을 동시에 느끼는 건 시속 130~ 150km 정도로 달릴 때였습니다. 그 이상으로 속도를 올리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죠. 실제로 많은 독일 운전자가 150 이상, 시속 200km를 넘나들며 운전하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아우토반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입니다.

 사진=이완
사진=이완

‘무제한 질주가 가능한 자유의 공간’이라는 아우토반의 이미지는 오랜 시간에 걸쳐 차곡차곡 쌓여온 것입니다. 단단하게 사람들 마음 속에 자리하고 있죠. 그 가치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통안전이 됐든 아니면 환경을 위한 규제가 됐든, 아우토반 속도제한을 이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조사를 통한 설득력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일이 우선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그렇게 된다면, 이는 단순히 아우토반에 제한속도가 생기는 것 이상의 의미가 될 것이라고 유럽 환경단체와 일부 정치인들은 이야기합니다. 더 과감하게 환경 중심의 다양한 교통 정책을 펼칠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일단 분위기는 속도를 제한하는 쪽으로 무르익고 있습니다. 과연 오랜 숙원(?)이 이번엔 이뤄질 수 있을까요? 아우토반 속도제한 논란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나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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