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더 뉴 아우디 R8,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자연흡기 10기통 엔진'
  • 권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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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3.30 08:55
[시승기] 더 뉴 아우디 R8,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일 '자연흡기 10기통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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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회전 본능을 일깨우는 슈퍼카 '더 뉴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를 만났다. 시대 흐름 속에서 점점 자취를 감춰가는 대배기량 자연흡기 10기통 엔진의 마지막 향연은 왠지 모르게 슬프게만 들려왔다.

아우디 R8이 처음 등장했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페라리나 람보르기니와 같은 기존 슈퍼카도 강렬했지만, 디자인으로 칭송받던 아우디가 빚어낸 정통 미드십 슈퍼카는 SF영화 속 스크린을 찢고 나올 듯한 포스를 풍겼다. 이 시절 새하얀 R8이 데스크탑 바탕화면에 늘 자리했었다.

2015년 2세대 R8이 등장했을 때 역시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다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달랐다. 2세대 R8은 기존 곡선 위주의 유려한 라인은 온데간데없고 딱딱한 직선이 주를 이뤘다. 물론, 브랜드 최신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녹여내기 위한 선택이었지만, 그저 아우디 TT의 고급 버전으로 느껴졌다. 다소 밋밋해보이기까지 하는 외모는 슈퍼카에게 최악의 혹평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전 세대 모델이 그리워졌다.

그런 2세대 R8이 2019년 페이스리프트를 단행했다. 특히 전면부의 인상이 크게 달라졌다. 답답한 프론트 그릴을 좌우로 넓게 확장해 한층 시원하고 더 공격적으로 변모했다. 1세대만큼은 아니지만, 적어도 슈퍼카로서의 포스는 되찾은 느낌이다.

이어 새롭게 통합된 리어 그릴 역시 한층 넓고 안정적인 인상을 준다. 리어 디퓨저와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머플러는 정확히 분리하여 존재감을 키웠다. 배기구는 주먹 하나가 들어갈만큼 거대한 구경을 자랑한다. 이쯤되면 성공적인 변신이다.

설레는 감정과 함께 발을 옮겼다. 길고 묵직한 프레임리스 도어가 운전자를 맞이한다. 얼핏 보이지 않는 도어 손잡이는 사이드 캐릭터 라인 아래 숨었다. 문을 여닫는 느낌은 고급스럽다.

인테리어는 기존과 큰 차이가 없다. 스티어링 휠에 시동 버튼부터 드라이브 모드, 배기 사운드 변경 등 주행과 관련된 다양한 버튼이 자리한다. 시트는 허리와 허벅지를 개별 조절할 수 있는 버킷 타입이다. 비교적 마른 체형의 기자에게 꼭 맞는 사이즈다. 덩치가 큰 사람이라면 시트가 작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운전석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계기판이다. 12.3인치 풀 디지털 스크린으로 이뤄진 계기판 가운데는 숫자가 무려 '10'까지 마련된 타코미터가 한 가운데 큼직하게 자리한다. 고회전 영역대를 사용하는 공격적인 성격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다만, 가운데 인포테인먼트 스크린을 따로 설치하지 않은 점은 불만이다. 겉보기엔 한층 깔끔하고 운전자가 운전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듯 싶다. 그러나 내비게이션 및 애플 카플레이를 활용하려면 결국 디스플레이를 분할해야 한다. 이때 커다란 타코미터는 속도계와 회전계로 작게 쪼개져 시인성이 크게 나빠진다. 순정 기능으로 길 안내를 받기 위해서는 멋진 계기판 디자인을 포기해야 한다.

성격에 맞게 실내 수납 공간은 여유롭지 않다. 도어 트림에 마련된 작은 공간은 500ml 물병조차 넣기 어렵다. 다행히 시트 뒤편 수납공간은 좁아 보여도 그 활용도가 높다. 서류 가방, 백팩, 패딩 등을 간편하게 둘 수 있으며, 짐이 날리지 않도록 그물망이 설치돼 비교적 안정적으로 물건을 적재할 수 있다. 트렁크는 앞쪽에 마련됐다. 용량은 112리터로, 기내용 캐리어 정도가 가능하다.

동승자가 누릴 수 있는 편의는 열선 시트와 컵 홀더 등이 전부다. 앞서 언급했듯 센터 디스플레이가 마련되있지 않아 동승자가 조작할 수 있는 건 공조기가 전부다. 특히 컵 홀더는 가운데 팔걸이 안쪽에 마련되어 음료를 놓게되면 팔걸이를 쓰지 못한다. 운전자는 두 손으로 스티어링 휠을 꼭 쥔 채 운전에 집중하는 만큼 크게 불편하지 않았지만, 동승자의 왼손은 갈 곳을 잃게 마련이다.

운전석에 앉아 손만 뻗으면 닿는 거리에 엔진이 자리한다. 차체 한가운데 엔진이 자리한 정통 미드십 슈퍼카의 자세다. 2세대 모델부터 V8 모델은 단종됐다. V10 단일 엔진으로 운영되며, 540마력 기본형과 610마력 퍼포먼스 모델로 구성된다. 국내에는 퍼포먼스 모델만 수입된다.

R8은 형제 모델인 람보르기니 우라칸과 동일한 엔진을 품었다. 열 개의 실린더, 스무 개의 인젝터가 최고출력 610마력, 최대토크 57.1kgf·m라는 압도적인 숫자를 만들어낸다. 황소의 심장이 발휘하는 힘은 7단 S트로닉 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로 전달 된다. 정지상태에서 단 3.1초만에 100km/h를 넘어선다. 괴물같은 출력에 대응하는 값비싼 타이어를 신었다.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는 앞·뒤 사이즈가 각각 다르게 설정됐다(앞 245/30ZR20, 뒤 305/30ZR20).

고성능 차량을 시승할 때는 날씨도 따라줘야 한다. 노면 상태에 따라 주행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운이 따르지 않았다. 본격적인 시승에 나서려는 찰나에 봄비가 바닥을 적셨다. 뭇내 아쉬운 마음을 다잡고 일상으로 방향을 틀었다. 굽이진 와인딩 코스가 아닌 도심에서 슈퍼카의 모습은 어떨까.

시동 버튼을 누르자 V10 엔진이 우렁차게 깨어난다. 먼저 컴포트 모드로 도심 주행을 나섰다. 가속 페달을 살포시 밟으면, 단단한 서스펜션과 실내를 울리는 '그르렁' 소리 외에는 크게 이질감이 없다. 시내 구간에서는 고단 기어를 적극 사용해 10기통의 부담도 적다. 공격적인 생김새와 달리 일상 영역에서는 그저 승용차를 몰듯 편안하다. 간혹 추월 상황에 가속 페달에 힘을 주면 금세 단수를 내리며 튀어나갈 준비를 마친다. 비로소 슈퍼카를 타고 있다는 것이 실감된다.

시내로 향한 김에 대형마트와 핫플레이스 서너 곳을 들러봤다. 낮은 지상고가 불편하지는 않는지 테스트하기 위함이다.

평소보다 낮게 깔린 풍경이 낯설게 느껴질 때쯤, 지상 주차장의 턱을 마주했다. 막상 언덕 앞에 다다르자 꽤나 경사진 진입각이 긴장을 불러왔다. R8은 옵션으로도 프론트 리프트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기우였다. R8은 무리 없이 대형마트 주차장을 드나들었다. 행여 하부가 닿았나 싶어 손으로 프론트 범퍼를 확인해봤지만 상처 하나 없이 말끔한 모습이었다. 이 정도면 왠만한 도로는 무리 없이 다닐 수 있다. 물론, 한 눈에 봐도 가파른 도로는 가급적 피하는 게 좋다.

도심 투어를 마치고 고속 구간에 진입했다. 다이내믹 모드를 체결하고 가속 페달에 힘을 실어본다. 신형 R8은 무서울 정도로 속도를 높여갔다. 무엇보다 번개같은 변속 속도가 인상적이다. 키보드로 타자를 입력하듯, 패들을 당기는 순간 변속을 마친다. 디지털 계기판은 화려하게 빛나며 운전자에게 최적의 변속 타이밍을 알려준다.

V10 자연흡기 엔진은 구간 별로 색다른 음색을 들려준다. 특히 3~5000rpm에서 들려오는 중저음은 앞으로 다가올 긴장을 불러오는 듯하다. 가장 자주 접하는 영역인 만큼 해당 구간에 많은 공을 들인 모양새다. 7000rpm이 넘어서면 열 개의 실린더가 만들어내는 교향곡은 절정에 이른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레드존을 넘어서 9000rpm에 근접할 즈음에야 시프트업을 단행한다.

이어 '퍼포먼스'로 체결했다. R8의 성능을 모두 끌어낼 수 있는 최적의 드라이브 모드다. 해당 모드에서는 마른 노면, 젖은 노면, 눈 쌓인 노면 등을 설정해 최적의 성능을 끌어낸다. 변속은 수동모드로 고정되고, ESC 개입은 최소화한다. 도심 주행에서 느낄 수 없었던 공격적인 성격이 드러난다. 600마력의 출력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모습에서 진정한 슈퍼카 DNA를 느낄 수 있다. 잘 달리는만큼 잘 서는 것도 중요하다. 기본 적용된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 그 어떤 상황에서 보다 안정적으로 차량을 잡아세운다.

차량에 대한 대대적인 만족도는 매우 높았지만, 이것만큼은 꼭 개선할 필요가 있다. 바로 드라이브 모드 변경 방식이다. R8은 총 네 가지 드라이브 모드(승차감-자동-다이내믹-개별설정)을 지원하는데, '다이내믹'에서 바로 이전 단계인 '자동'으로 넘어가려면 모드 선택 버튼을 세 번이나 눌러야 한다. 운전의 집중을 요구하는 슈퍼카임에게 이러한 로터리 방식은 잘못됐다. 바로 직전으로 돌아가는 퀵 체인지 프로그램을 마련하거나 포르쉐와 같은 다이얼 방식을 채택했다면 어땠을까.

100km 이상 이어진 정속 주행에도 복합연비는 8.3km/L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공인 복합연비 6.0km/L).
100km 이상 이어진 정속 주행에도 복합연비는 8.3km/L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공인 복합연비 6.0km/L).

R8은 다루기 쉬운 데일리 슈퍼카다. 생각보다 편안한 주행감은 슈퍼카라면 불편할 것이라는 편견을 깨뜨려준다. 굳이 빨리 달리지 않아도 도심 속에서 압도적인 존재감을 발산한다. 가격은 또 어떤가. 2억5757만원이라는 가격은 경쟁 모델과 비교하면 염가 수준이다. 여기에 아우디의 기술력과 람보르기니의 엔지니어링까지 접목된 R8은 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다.

신형 아우디 R8 V10 퍼포먼스의 매력은 넘치고 또 넘쳤다. 그럼에도 이 차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브랜드는 이번 모델을 마지막으로 후속없이 단종하거나, 혹은 R8 전기 버전을 생각한다는 후문이다. 이같은 현상은 R8에만 국한된 게 아니다. 친환경 시대를 맞이한 대부분의 대배기량 스포츠카들의 미래가 그렇다. 이들의 향연은 어쩌면 지금이 마지막일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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