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LG와 SK의 10년 배터리 전쟁, 현대차의 선택은?
  • 신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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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1.02.22 18:16
[MG수첩] LG와 SK의 10년 배터리 전쟁, 현대차의 선택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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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넘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그리고 여기에 한발을 걸친 현대차를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LG와 SK의 배터리 10년 전쟁 사이 갑자기 현대차가 왜 등장하느냐고 궁금해하실 수 있는데요. 바로 연쇄화재가 발생한 코나 일렉트릭 때문입니다. 최근 몇몇 보도를 통해 배터리 전량 리콜 소식이 보도됐습니다. 일부일지 전량일지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LG와 SK 그리고 현대차가 삼각관계를 형성하는 모습입니다.

LG에너지솔루션은 LG화학 전지사업부문이 분리되어 만들어진 자회사입니다. 이번 영상에서는 LG화학과 LG에너지솔루션을 LG라 통칭하고, SK이노베이션도 SK라 간단히 부르겠습니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한국시간으로 11일 LG와 SK의 전기차 배터리 분쟁에서 LG 측 손을 최종적으로 들어줬습니다.

요약하자면 'LG가 SK에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걸었고, LG가 최종 승소했다'와 '그 결과, SK는 배터리 및 관련 부품에 대해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 명령이 내려졌다'가 주요 내용입니다.

판결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기차 리튬 이온 배터리의 미국 내 수입 금지 10년만 명령한 것이 아니라 셀·모듈·팩 등 관련 부품에 대해서도 미국으로 수입, 생산, 유통, 그리고 판매까지 금지하는 강력한 명령입니다.

미국은 중국과 함께 전기차를 포함한 글로벌 양대 자동차 시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미국에서 생산하는 차에 SK 배터리를 사용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미국에서 생산해 파는 차뿐 아니라 쉐보레 볼트처럼 미국에서 해외 시장으로 수출하는 차에도 장착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유럽이나 중국, 우리나라에서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차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현대기아차처럼 LG와 SK 모두 쓰는 입장에서 SK 비중을 쉽게 늘릴 수 있을까요. ITC가 이번에 허용한 것은 기아차가 기존에 판매한 전기차 중 교체수리용 배터리만 가능합니다. 현대기아차도 점차 SK를 멀리할 판입니다.

물론, SK가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가격단가를 낮춘다면 미국을 제외한 다른 시장에 사용할 수 있겠지만, 현재 SK의 배터리 사업부는 영업손실, 적자 상태입니다. 더 이상 가격단가를 낮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ITC는 판결 전 이미 SK와 미국 내 배터리 공급계약을 맺은 포드 F150(전기차) 및 폭스바겐 MEB 플랫폼에 대해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허용했습니다. 다만, 다른 업체들이 SK와 계약을 쉽게 맺을지 의문입니다.

글로벌 양대 시장 중 다른 한 축인 중국은 CATL이나 BYD, 궈쉬안(Guoxuan) 등 현지 업체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중국 내 수요가 어마어마하다 보니 글로벌 10대 전기차 배터리 업체 중 절반이 중국 회사입니다. 그래서 전기차 배터리 통계를 낼 때는 글로벌 집계와 중국 제외 글로벌 집계 두 가지를 비교합니다.

어쨌든 LG나 SK, 삼성(SDI), 그리고 일본 업체(파나소닉 등) 입장에서는 미국 시장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미국 내 전기차 생산은 한층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연방정부의 모든 관용차량을 미국에서 생산하는 전기차로 조달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습니다. GM이나 폭스바겐 등도 미국 내 전기차 생산 물량을 늘리겠다고 잇따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SK가 10년간 미국에서 사업을 못 한다는 것은 굉장히 치명적입니다. 더군다나 SK는 이미 미국 조지아주에 25억 달러(한화 3조원)를 투자해 배터리 공장을 짓고 이제 겨우 1공장이 시험 가동에 들어간 상황입니다. 막대한 돈과 시간을 날리게 생겼습니다.

LG와 SK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 타임라인을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최근 몇몇 기사나 유튜브 영상에서 LG와 SK 갈등의 시작을 2017년으로 봅니다. 다만, 저희가 봤을 때 둘의 갈등은 10년도 더 되었습니다. 단순히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봐도 2011년부터 시작합니다.

2011년 12월 LG가 SK를 상대로 세라믹 코팅 분리막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합니다. 이에 SK는 특허무효심판으로 맞받아칩니다. 항소와 상고가 이어지고 대법원 파기 환송까지 거쳐 SK가 최종 승소합니다. 결국 2014년 11월 두 회사는 각각 특허심판원과 특허법원에 계류 중인 다른 소송 및 심판도 모두 취하합니다.

이 분쟁에서는 후발주자인 SK가 압승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당시 '(소송 및 심판 취하) 10년 후, 2025년에는 양사의 격차가 좁혀질 것 같다'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한동안 잠잠하던 양측은 2017년 12월 LG가 SK에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내며 다시 붙습니다.

2017년 여름 LG의 배터리 연구·개발 인력이 대거 SK로 자리를 옮기는데, 이에 LG에서 SK에게 '인력 스카우트를 자제해 달라'고 공문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이직이 계속되자 LG가 핵심 인력 5명에 대해 전직 금지 가처분 소송을 냅니다.

당시 SK는 LG 경력사원 100여명을 채용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높은 연봉과 좋은 처우 때문에 자발적으로 옮긴 것일 뿐"이라며 기술 유출을 부인합니다.

하지만 2019년 1월 대법원에서는 영업비밀 유출 우려와 양사의 기술 역량 격차 등을 인정하며 '2년 전직금지 결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2019년 4월 LG는 SK에게 전지 핵심 인력 채용 관련 협조 요청 공문을 또 보냅니다. '대법원 판결까지 났는데 여전히 핵심 인력을 빼간다', '조심해라' 일종의 경고입니다.

같은 시기, LG는 미국 국제무역위원회 ITC와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에 SK를 대상으로 영업비밀 침해 소송을 겁니다. LG가 '대법원 판결까지 났는데도 사람을 빼간다', '이거 국내 소송만으로는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델라웨어주 연방지방법원은 SK이노베이션 배터리 자회사가 위치한 곳입니다. 그리고 ITC는 미국 행정부 산하에서 특허, 저작권, 상표권, 불공정 무역 행위 등을 다루는 준사법기관입니다. 특허나 저작권은 시의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ITC는 조사부터 결정까지 일반적인 소송보다 빠르게 진행합니다. 그래서 연방지방법원과 함께 ITC에도 문제를 제기합니다.

이와 별개로 국내에서도 2019년 5월 LG는 SK를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고소합니다. 이후 경찰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SK 측도 맞소송으로 대응에 나섭니다.

먼저 국내 분쟁을 간단히 마무리하면, SK는 '영업비밀을 침해한 적이 없다'는 내용으로, 채무부존재 확인 청구와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지만 1심에서 패합니다. 2020년 8월 서울중앙지법에서 SK 측 소를 취하하고 손해배상 청구도 기각합니다. 항소는 특허법원에서 진행되는데, 법조계에서는 SK에게 유리했던 앞서 2011~2014년 때와는 조금 다르다고 봅니다.

그리고 LG가 경찰에 고소했던 산업기술 유출방지 보호법 위반 혐의는 이제 검찰 수사가 진행되는 사안입니다. 일단 국내에서는 이렇게 2건의 소송 및 수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번달 ITC 최종 판결이 난 영업비밀 침해 건 외에도 여러 건이 엮여 있습니다. ITC와 연방법원에 배터리 특허침해 소송이 각각 2건씩 남아있고, 미국 특허청 특허심판원(PTAB)에 특허 무효 심판 소송 1건 등이 있습니다.

ITC는 영업비밀 침해 건으로 LG 손을 들어줬습니다. 그렇다면 ITC의 나머지 특허 소송도 그 영향을 받을 전망입니다. 연방지방법원은 손해 배상 민사로 이어지는데, 이것 역시 ITC의 판결과 완전히 동떨어질 수는 없습니다. 여기에 미국 특허청 특허심판원 PTAB까지 5건의 결론이 아직 남아있습니다. 각 항목에 판결은 올해 3월과 7월, 그리고 11월 등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타임라인을 보면, ITC가 SK 측에게 중요 문서 제출 누락을 이유로 포렌식 명령을 내리는 것이 가장 결정적인 장면입니다.

미국에서 소송할 때는 '증거 개시 제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재판이 진행되기 전 양측이 서로 증거를 열람 또는 복사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인데, 이를 따르지 않으면 사실상 패소입니다. 그런데 LG 측이 증거 개시 과정에서 SK가 임원급에게 LG 관련 문서를 삭제하라는 메일을 발송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증거 인멸을 지시한 것이 드러났는데, ITC는 LG의 주장을 받아들여 SK에게 자료를 복구하라는 포렌식 명령을 내립니다. 이후 과정에서 SK가 이를 성실히 따르지 않았다고 판단합니다.

영업비밀 침해 여부가 아니라 증거 훼손과 법정 모독 등이 더 큰 문제가 됐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진행될 남은 소송들도 SK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습니다.

SK의 살길 중 가장 먼저 언급된 것은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입니다.

ITC는 특허, 저작권, 상표권, 불공정 무역 거래 행위 등을 다루는 준사법기관이지만, 기본적으로 행정부 소속입니다. ITC의 결정은 대통령 승인을 최종적으로 받습니다. 대통령은 60일의 검토 기간을 가지며 정책적 이유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이 정책적 이유가 중요한데, 바이든 행정부가 친환경차를 정책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만큼 거기에 희망을 걸어야 한다는 의견이 높습니다.

다만, 2010년 이후 ITC에서 진행된 600여건의 소송 중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경우는 단 1건에 불과합니다. 더군다나 ITC가 설립된 이후 영업비밀 침해 건에서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적은 한 차례도 없습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친환경 정책을 내세우지만, 중국과의 분쟁 시 주요 무기 중 하나인 지적재산권도 굉장히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권 침해와 함께 지적재산권으로 중국을 때리는 입장에서 영업비밀 침해 행위는 엄격하게 대응할 예정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에게 거부권 행사를 요청한 브라이언 캠프 조지아주지사 뉴스도 수차례 나왔지만, 공화당 소속인 캠프 주지사의 영향력은 제한적입니다.

결국 해결책은 합의인데, 문제는 합의금입니다. LG는 앞서 3조원 안팎의 보상금을 요구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도 ITC의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 정보입니다. 최종 판결이 나왔으니 더 올렸으면 올렸지 쉽게 내리지는 않을 겁니다.

반면, 앞서 말했듯 SK의 배터리 사업부는 적자 상태입니다. 여기에 미국 조지아 공장과 충남 서산 공장을 지으며 6조원 이상을 넣었습니다. 3조원의 보상금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SK 측에서 나온 합의금 규모는 5000억원 내외 수준으로, 아무리 많아도 1조원 이하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LG도 압박에 나섰습니다. ITC 최종 판결 이후 콘퍼런스 콜을 열고 "SK이노베이션의 기술 탈취나 사용에 따른 피해는 미국에만 한정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른 지역에서 소송을 진행할지는 기본적으로 SK의 태도에 달렸다"고 밝힙니다. 즉, 보상금 여하에 따라 유럽과 중국 등 곳곳에서 소송을 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LG가 절대적인 우세인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일단 LG와 SK 둘 다 자신들이 직접 전기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닙니다. 완성차 업체에 배터리를 공급하는 입장입니다. LG가 글로벌 경쟁력을 지녔지만, 완성차 메이커의 입김을 완전히 무시하고 SK와 싸울 수는 없습니다.

SK는 미국에서 포드 및 폭스바겐과 계약을 맺고, 각각 4년과 2년의 유예기간을 받았습니다. 포드나 폭스바겐 입장에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유예 기간 동안 다른 협력사로  갈아탈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다만, 최종 완성차 메이커들이 협력사를 보는 시각은 조금 다릅니다. 새로운 파트너를 찾는 것보다 SK와 LG가 합의를 하고 납품을 받는 방법이 더 쉽습니다.

폭스바겐 같은 경우 미국에서 SK와 손을 잡았지만, 유럽에서는 LG로부터 배터리를 받습니다. 그리고 ITC가 허용한 배터리는 MEB 플랫폼에만 적용됩니다. 다른 플랫폼의 전기차는 LG와 미국에서 협력을 할 가능성이 큽니다.

포드도 지금처럼 한 곳과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공급선을 늘려 리스크를 분산시키겠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더군다나 LG와 최근 합작사를 설립한 마그나도 포드와 굉장히 가깝습니다. 포드와 폭스바겐이 빠른 합의를 요구할 경우 무시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포드와 폭스바겐은 지속해서 LG와 SK에게 합의를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뿐 아니라 현대차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차그룹은 LG와 SK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크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입니다. 완성차는 태생적으로 부품사에게 휘둘리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당장 표면적으로 아무 제스처도 취하고 있지 않지만, 속으로는 어느 편을 들어줄지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습니다.

여기다 또 하나 이슈가 더해집니다. 국토교통부에서 코나 일렉트릭 화재 사고 원인 조사를 마무리하고 조만간 그 결과를 발표할 계획이라고 하는데요. 현대차는 7만7000대에 달하는 코나 일렉트릭의 배터리 전량 교체를 포함한 여러 방법을 검토하고 있습니다.

만약 배터리 전원 교체로 가닥이 잡힐 경우 현대차와 LG는 리콜 비용 분담 문제가 남게 됩니다. 분담 비율에 따라 달라지지만 적게는 7000억원에서 많게는 1조 5000억원까지 될 수 있다고 합니다. LG 입장에서는 SK에게 보상금을 받아 현대차나 GM 등 완성차에게 주어야할 판입니다.

결국 당장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완성차 입김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LG화학 전지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해 만든 LG에너지솔루션은 기업공개(IPO)를 앞두고 있습니다. SK가 합의금을 주지 못하겠다고 시간을 끄는 가운데, 현대차와 완성차 업체에게 수조원대 배터리 리콜 비용을 부담하면 회계 장부가 엉망이 됩니다. 당연히 IPO에도 악영향을 미칠 전망입니다.

이외 정부의 입김도 있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가 직접 나서서 LG와 SK의 합의를 촉구한 것까지 고려하면, LG에게 마냥 유리하기만 한 상황은 아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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