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승용 칼럼] 차가 안 되니 법을 바꾼다?…현대기아차 밀어주는 친환경차 정책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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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2.24 13:04
[전승용 칼럼] 차가 안 되니 법을 바꾼다?…현대기아차 밀어주는 친환경차 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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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대한 친환경차 기준을 바꿨습니다. 개정안을 살펴보니 여러 가지 내용이 있었지만, 결국은 현재 판매되고 있는 기아차 쏘렌토 하이브리드와 앞으로 판매될 현대차 싼타페 하이브리드도 친환경차에 포함돼 정부의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더군요. 사실상 현대기아차를 위한 개정이란 의심을 피하기 힘들어 보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많은 소비자가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정부의 친환경차 정책이 환경이 아닌 기업 논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요. 특히, 차가 안 되면 차를 바꿔야지 법을 바꾸는게 말이 되냐며 불만을 터트렸습니다(국토부가 아니라 '현토부'라는 비난도 있는데, 이번 개정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진행한 겁니다). 일부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새롭게 친환경차 보조금을 받게 되는 만큼, 어떤 가격 장난을 칠지 모르겠다고 불신을 나타내기도 하더군요. 

일단 법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기존 하이브리드 친환경차 기준은 배기량으로 결정됐습니다. 1000cc 미만의 하이브리드 차량은 연비가 19.4km/l, 1000~1600cc 미만은 15.8km/l, 1600cc~2000cc 미만은 14.1km/l, 2000cc 이상은 11.8km/l 이상이어야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습니다(가솔린 하이브리드 기준).

올해 초 나온 쏘렌토 하이브리드(1598cc)는 배기량이 1600cc 미만인데, 연비가 15.3km/l 이하여서 제외됐습니다. 쏘렌토의 형제차인 싼타페 하이브리드 역시 같은 상황이죠. 오죽했으면 현대차가 신형 투싼 하이브리드를 내놓으면서 전 트림의 연비를 억지로(?) 15.8km/l 이상으로 맞췄겠습니까.

이번 개정으로 배기량이었던 기준은 차급으로 바뀌었습니다. 경형, 소형, 중형, 대형에 따라 혜택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1000cc 미만은 경형, 1000~1600cc 미만은 소형, 1600~2000cc 미만은 중형, 2000cc 이상은 대형이 된 겁니다.

이와 함께 연비 기준도 달라졌습니다. 경형은 19.4km/l로 그대로지만 소형은 17.0km/l, 중형은 14.3km/l, 대형은 13.8km/l를 넘어야 친환경차에 포함됩니다. 얼핏 보기에는 이전보다 엄격해진것 같습니다. 소형은 1.2km/l, 중형은 0.2km/l, 대형은 2.0km/l 더 까다로워졌기 때문이죠.

하지만 여기에는 ‘차체 크기’라는 함정이 있습니다. 배기량이 작더라도 차체가 크면 얼마든지 중형, 대형으로 분류되는 엉성한 기준 탓입니다.

배기량이 1600cc 미만이어도 길이·너비·높이 중 하나가 소형차를 초과할 경우에는 중형차로 분류됩니다. 그런데 소형차의 기준은 고작 4700X1700X2000(길이X너비X높이)mm 입니다. 요즘에 경차 빼고 너비가 1700mm를 안 넘는 차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단종된 소형차 엑센트의 너비도 1729mm, SUV 중 가장 작은 베뉴도 1770mm입니다.

한마디로 1600cc 미만의 모든 하이브리드 차가 다 중형으로 분류된다는 겁니다. 소형 하이브리드(17.0km/l)가 아니라 중형 하이브리드 연비 기준인 14.3km/l만 넘으면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이죠. 크고 무거운 중형 SUV가 더욱 편하게 하이브리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개정입니다. 

당장 쏘렌토 하이브리드만 해도 사륜구동 모델(13.7km/l)을 제외한 전 트림이 친환경차 대상에 포함됩니다. 내년 출시될 싼타페 역시 비슷할 겁니다. 15.8km/l에 아슬아슬하게 맞췄던 투싼 하이드리드도 라인업 확장에 여유가 생겼겠네요. 신형 스포티지도 마찬가지고요.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연비
쏘렌토 하이브리드의 연비

중형 차급의 연비 기준인 '14.3km/l'란 숫자도 문제입니다. 유명무실한 소형과 대형은 각각 1.2km/l, 2.0km/l씩 올리고 가장 중요한 중형은 고작 0.2km/l만 올려 '14.3km/l'에 맞췄기 때문이죠. 공교롭게도(?) 쏘렌토 하이브리드 전륜구동 중 가장 연비 나쁜 모델이 '14.3km/l'네요.

아무리 하이브리드 혜택이 점차 줄어들고는 있다지만, 쏘렌토와 싼타페 하이드리드의 경우 내년에도 150~200만원가량이 지원됩니다. 연간 수만대의 판매량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 보존되는 겁니다. 그리고 이로 인한 이익은 직간접적으로 현대기아차에 돌아갈 거고요.

물론, 이 개정이 모두 현대기아차만을 위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이득을 보는 곳을 아무리 생각해도 현재로서는 현대기아차뿐이네요. 혜택을 못 받던 쏘렌토 하이브리드가 혜택을 받게 됐으니까요. 비슷한 사례의 다른 브랜드의 다른 차는 떠오르지 않습니다.

실제로 산업통상자원부는 이번 개정안을 내놓으며 “엔진 다운사이징 등 최신 기술을 적용한 차량이 세제 혜택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도록 하는 기준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현재 터보엔진 기반의 다운사이징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을 쓰는 브랜드는 현대기아차가 유일합니다. 

안타깝네요. 친환경차 기준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해외와 달리 우리나라는 제조사에 편한 방식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내 자동차 점유율 70%를 차지하는 회사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국민들이 낸 세금을 가지고 '환경'이 아니라 '기업 논리'로 움직이는 친환경차 정책은 여러모로 유감입니다. 차가 안 되면 차를 바꿔야지, 법을 바꾸다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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