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과속 못 잡는 신형 번호판? “하향 평준화, 중국산이 몰려온다”
  • 신화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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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30 09:12
[MG수첩] 과속 못 잡는 신형 번호판? “하향 평준화, 중국산이 몰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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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수첩] 과속 못 잡는 신형 번호판? “저질 불량 제품” vs “국내 환경에서 최선”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국내 재귀 반사식 필름 번호판의 휘도(반사 성능) 기준은 3~12cd*로, 유럽 및 해외 국가와 비교해 낮았다. 이미 설치된 수많은 과속단속카메라 때문이라는 국토부의 설명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면서도, 기준이 너무 보수적인 것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이 생겼다.

* cd(칸델라, Candela)는 양초(Candle)의 라틴어로, 빛의 밝기를 측정하는 단위. 1cd는 양초 하나 정도의 밝기를 뜻함

현재의 기준이 반사필름식 번호판 도입 검토 당시부터 정해진 것일까? 이와 관련해 반사필름식 번호판 도입 당시 디자인 용역을 수행한 한양대 디테크융합연구소 윤종영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상단부터)유럽 기준 번호판과 우리나라 번호판 비교(사진=김은혜 의원실)
(상단부터)유럽 기준 번호판과 우리나라 번호판 비교(사진=김은혜 의원실)

# Q. 구체적으로 어떤 용역을 수행했는가?

2004년에 초록색 2열 번호판을 현재의 백색 바탕에 검정 글씨로 되어있는 1열 번호판으로 대체할 때 디자인을 했었고, 전기차 전용 파란색 번호판과 그 이후 번호판 앞자리 숫자가 세 자리로 바뀐 용량 확대 번호판 용역도 진행했다.

# Q. 최근 번호판의 휘도와 관련해 논란이 있다

이 얘기를 하기 위해서는 전기차 번호판을 도입할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에는 반사필름식 번호판을 처음 도입하는 시기였기 때문에 기준 자체를 잡기가 힘들었다. 몇 cd가 우리나라 카메라에 찍히는지가 중요한데, 어느 정도가 카메라에 찍히는지 예단할 수 없었다.

당시 국내·국외 합쳐서 8개 정도의 업체가 우리가 제시한 디자인 및 기준에 맞춰서 번호판을 제작해 한날한시에 카메라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 중 1개 업체만이 우리나라 카메라에서 야간에 인식이 됐는데, 그 번호판 휘도가 대략 12~18cd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당시 전기차 번호판에 대한 기준을 12cd 이상 20cd 이하, 혹은 40cd 이하로 제안했다. 하지만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은 3cd 이상, 12cd 이하라고 고시했다.

# Q. 국토부는 12cd 이상이면 안정적인 단속이 어렵다는데?

2017년 12cd의 전기차 번호판을 도입했는데, 지금까지 이상이 없다. 2017년에 카메라 테스트를 면밀하게 했었고, 나도 현장에 있었다. 그 당시에는 제주도에서 전기차 100대 정도를 대상으로 한 달간 시범 운영도 했다. 이런 검증 과정을 거쳐서 했기 때문에 전기차와 관련된 문제는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12cd라는 수치는 이때 이미 검증된 부분이다. 단속이 되지 않을 것이 우려되어 기준을 낮췄다는 부분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정 12cd가 불안하다고 하면 최솟값을 11cd나 10cd로 설정했어야 한다. 3cd까지 낮출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 Q. 어쨌든 3cd는 페인트식 번호판보다는 밝은 것 아닌가?

3cd도 광도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밝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번호판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고, 번호판에 들어간 글씨가 얼마나 잘 보이냐가 문제기 때문이다. 번호 인식이 잘 되기 위해서는 검은색 글씨가 잘 보여야 한다. 검은색 글씨의 휘도와 흰색 바탕의 휘도 차이가 커야 검은색 글씨가 뚜렷하게 잘 보인다. 광도가 비슷하면 뿌옇게 안 보인다. 

유럽이 굳이 40cd 이상으로 기준을 잡은 이유는 cd 값이 높아야 배경의 광도와 글씨의 광도가 많이 차이 나기 때문이다. 20cd, 40cd, 12cd라고 하는 것은 배면의 값이다. 반사필름에 잉크로 칠하거나 핫스탬핑으로 필름을 입힌 부분은 광도가 떨어진다. 그래서 최소 12cd라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3cd로는 야간에 거의 글씨 구분이 안 된다. 

# Q. 번호판 '하향 평준화'를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기준을 너무 낮게 잡으면 업체들이 열심히 개발해서 성능을 높일 필요가 없게 된다. 업체들끼리 경쟁해서 성능을 높여야 판매가 잘 되고, 시장에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전제조건이 있다면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 자동차 번호판에서 이는 전혀 적용되지 않는다. 최소 기준만 맞추면 자동차 번호판 필름 시장에 들어오는 데 전혀 문제가 없다. 5cd나 7cd나 9cd나 11cd라고 하더라도 우리나라 번호판 시스템에서는 전혀 우위가 확보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력이 없다.

현재 시스템에서는 가격이 비싸면 선택받을 수 없다. 어떤 필름을 사용할지는 일반 사용자에 의해서 선택되는 것이 아니고, 번호판을 제작하고 유통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러면서도 지자체별로 가격은 정해져 있다. 시장 논리가 아니다. 선택권을 가진 자들이 굳이 비싼 필름을 선택할 이유가 없다. 국토부가 제시한 3~12cd에 대한 최소 기준만 맞추면 문제가 없다. 오히려 가격을 싸게 하는 것이 경쟁력이 된다.

# Q. 저가, 또는 중국산 필름으로 채워질 가능성이 있다고? 

번호판을 제작하는 사람들이 11~12cd 나오는 성능 좋은 비싼 필름을 쓸 이유가 있을까? 소비자에게 선택권이 주어지지 않는 한 비싼 필름을 쓸 이유가 없다. 현재 상황이라면 당연히 최솟값에 부합되는 저가의 필름이 시장을 장악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최근 중국 번호판 필름 회사들이 국내 유통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반대로 미국이나 유럽 지역에서 사용하는 고급 필름 제조사들은 지금 상황이라면 대한민국에 들어올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성능 대비 가격 차이가 크게 난다. 결국은 저가로 제공할 수 있는 필름이 우선 선택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것이 내가 걱정하는 하향 평준화다.

(왼쪽부터) 기존 번호판, 용량 확대 번호판, 재귀반사식 필름 번호판
(왼쪽부터) 기존 번호판, 용량 확대 번호판, 재귀반사식 필름 번호판

# Q. 우리나라는 이를 방지할 검증 프로세스가 없나? 

용역 수행 당시 이런 부분에 대한 검증 기준을 다 만들어 제출했었다. 이런 부분이 얼마나 검증된 다음 도입됐는지, 향후에 검증 기준이 얼마나 엄격하게 적용될 것인지에 대한 부분은 국토부와 교통안전공단의 몫이다. 번호판 필름의 경우 교부되는 번호판을 받을 뿐 운전자는 선택할 수 없다. 필름에 대해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데, 국토부라고 생각한다

전기차 번호판 도입 당시에는 번호판 필름을 공급하는 업체와 공급 계약 및 A/S, 보증 등에 대한 부분까지 검증이 된 것으로 안다. 그런데 이번에 도입된 번호판들은 국토부에서 이런 작업을 했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올해 상반기까지는 안되어있었다. 앞으로 필름에 문제가 생긴다면 리콜 등 보상을 받아야 하는데, 소비자가 할 수는 없다. 정부가 보증된 것을 통해서 보상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 Q. 해결 방안은 무엇인가?

지금 번호판이 휘도가 높니 낮니 카메라에 찍히니 안 찍히니 이런 얘기가 있지만, 현재와 같은 10cd 이하의 숫자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12cd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 만약 이 기준을 국내 업체들이 충족하기 어렵거나 정부가 해외 업체의 국내 진입을 꺼린다면 시행 시기를 늦추는 것도 방법이다. 

휘도에 따른 번호판 가격 산출에 대한 부분도 객관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발급을 일시 중지해서라도 전반적으로 재정비 작업에 들어가야 한다. 전기차 번호판을 도입할 때만큼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 

사진=김포시청
사진=김포시청

# Q. 국내 업체가 개발하기 힘든가? 

반사필름은 쉬운 기술이 아니다. 자동차 번호판에 붙는 반사필름은 상당히 많은 오염물질에 노출된다. 예를 들자면, 겨울에 제설용 염화칼슘이 번호판에 튀어서 표면에서 화학적 작용을 일으킬 가능성도 있다. 반사필름식 번호판은 페인트식 번호판보다 예민하다. 코팅이 녹는다든지, 벗겨진다든지, 변색된다든지 해서 반사율이 떨어지는 등 변수가 많다. 휘도에 대한 성능도 중요하지만, 필름의 내구성과 같은 성능도 필요하다. 대부분의 OECD 국가들은 이런 것들이 검증된 번호판을 사용한다.

그러나 못할 기술도 아니다. 일정 부분의 투자와 시간이 필요한 기술이다. 우리나라는 자동차 번호판에 필름을 적용해본 적이 없었다. 2016~17년에 처음으로 전기차 번호판에 도입했다. 번호판과 관련해 국내 업체들도 여러곳 있다. 이제 시작인 만큼 이 업체들도 연구 개발을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나라 업체들이 연구개발을 마칠 때까지 사업을 안 할 수도 없다. 도로 표지판 같은 경우에도 처음 도입될 때 우리나라에서는 만드는 업체가 없었다. 그래도 생명을 담보로 하는 만큼 미룰 수 없어 수입 필름에 의존했다.

그러나 지금 도로 표지판 필름은 국내 업체들이 납품하고 있다. 그런 것처럼 자동차 번호판도 국내 업체가 연구개발과 시간이 필요하다면 해외의 우수한 필름을 먼저 도입하고, 우리나라 업체들이 기술을 개발한다면 결국에는 우리나라 업체들이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 생각한다.

# Q. 정부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기준을 너무 낮게 잡아놓으면 안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고시라는 것은 헌법이 아니기 때문에 바꿀 수 있다. 최솟값을 지금보다는 많이 높여야 한다. 당장은 우리나라 업체들에게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렇게 해놔야만 1~2년 안에 노력해서 들어가지, 지금과 같은 기준이라면 우리나라 업체도 들어올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진다. 기준값이 너무 낮아서 큰 기술 투자 없이도 모든 회사가 들어올 수 있다. 특히, 중국의 물량 공세에는 당해낼 수가 없다. 

동남아 국가들도 반사 번호판을 채택하고 있다. 동남아에 보급된 필름 과반수는 저가의 중국산 필름이다. 동남아의 경우 저렴한 가격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휘도를 높이지 않았다. 우려하는 것은 현재와 같은 기준이라면 우리도 동남아처럼 저가의 필름으로 도배될 것이라는 점이다. 용역을 수행했던 학자로서 정말 안타까운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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