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콧수염 회장은 왜 삼각별에 버림받았나?…벤츠맨의 쓸쓸한 퇴장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 좋아요 0
  • 승인 2020.11.09 09:30
[이완 칼럼] 콧수염 회장은 왜 삼각별에 버림받았나?…벤츠맨의 쓸쓸한 퇴장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w.lee@motorgraph.com)
  • 댓글 0
  • 승인 2020.11.09 09:3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 9월 말이었죠. 메르세데스 벤츠를 오랜 시간 대표했던 디터 체체(Dieter Zetsche) 전  다임러 회장이 프랑크푸르터 알게미아넨 차이퉁(주말판)과의 인터뷰에서 평생 몸담았던 회사로 복귀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평생 벤츠맨으로 살아 온 그의 경력이 이렇게 끝이 난 것입니다. 표면적으로는 본인의 선택처럼 보인 이 결정은 그러나 들여다보면 복귀가 거부당한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디터 체체는 ‘어떤 이들은 나의 복귀를 부담으로 여긴다.’며 다임러의 감독이사회 의장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회사측 공식 반응 또한 차갑긴 마찬가지였죠. 울며불며 바짓가랑이 붙잡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1년 전과는 분위기가 달라진 것인지, 많은 이들이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 영원한 권좌를 꿈꿨던 콧수염 회장

디터 체체는 전기 공학을 공부한 후 1976년 당시 다임러-벤츠 연구부서에 입사하며 벤츠와의 인연을 이어왔습니다. 2006년 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그는 여기저기 망가져 있던 회사를 되살려야 했습니다. 라이벌 BMW에 프리미엄 브랜드 판매량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물론 아우디에도 판매량이 밀렸습니다.

판매량을 끌어 올리기 위해 젊은 벤츠가 되어야 했고, 그는 소형 모델 중심으로 젊은 층이 선호할 그런 디자인으로 이미지를 바꿨습니다. 또한 라인업을 늘려나갔죠. 2020년까지 프리미엄 판매 1위 브랜드가 되겠다고 했던 약속은 몇 년을 앞당겨 실현했습니다. 그가 회장의 자리에 있는 14년 동안 벤츠는 빠르게 과거 명성을 되찾는 듯 보였습니다.

디터 체체와 올라 칼레니우스. 둘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 사진=다임러 
디터 체체와 올라 칼레니우스. 둘의 관계는 끊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 사진=다임러 

그리고 2019년 5월, 디터 체체는 자신의 황태자로 불린 스웨덴 출신의 올라 칼레니우스에게 회장 자리를 넘깁니다. 그리고 2년의 안식년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감독이사회 의장 만프레드 비쇼프는 디터 체체 회장이 2021년 감독이사회 의장의 자리로 돌아올 것이라며 기쁘게 그의 귀환을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모든 게 콧수염 회장의 뜻대로 진행이 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 왕의 귀환이 실패한 원인 4가지

그런데 디터 체체가 회장 자리에서 내려오자 외국계 투자 회사는 물론, 대형 투자자 일부, 그리고 시장 분석가들은 새로운 메르세데스-벤츠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그가 감독이사회를 이끌어선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독일 증권협회 CEO이자 기업 지배 구조와 관련한 정부위원회 위원 마크 튄글러는 경제지 한델스블라트와의 인터뷰에서 디터 체체의 그림자가 다임러를 덮게 해서는 안 된다고까지 말했습니다.

투자자들과 일부 언론은 올라 칼레니우스가 새롭게 판을 짜도록 놔둬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신임 회장이 잘하고 있는 만큼 그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이 누구로부터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고 했습니다. 이런 주장을 한 이들 중엔 저명한 자동차 시장 분석학자 페르디난트 두덴훼퍼 교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반대 목소리가 받아들여졌고, 디터 체체는 스스로 복귀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회사 안팎에서 디터 체체 시대를 끝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 사진=다임러 
앙겔라 메르켈 총리와 함께 / 사진=다임러 

우선 첫 번째 이유는 디젤 배출가스 조작 혐의와 관련해 엄청난 손실을 회사에 입혔다는 점입니다. 2015년 폭스바겐의 디젤 게이트가 터졌을 때만 하더라도 벤츠는 타격이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독일 연방 자동차청은 다임러 여러 디젤 모델에서 배출가스 조작에 쓰인 것으로 보이는 불법적 소프트웨어가 발견되었고, 이를 조사 중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디터 체체 회장은 시스템에 대한 오해라며 의혹을 부인했습니다.

디젤차 수백만 대 리콜은 물론, 독일에서는 인증 관리감독 문제를 들어 조 단위의 벌금을 내야만 했으며, 한국 정부는 디젤차의 배출가스를 조작했다고 보고 776억의 과징금을 부과했습니다. 현재 다임러는 이 문제로 영국 소비자들로부터 소송에 직면했고, 더 많은 벌금을 내야 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브랜드 이미지에 큰 타격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커졌습니다.

2018년과 2019년 수익은 큰 폭으로 떨어졌고,여기에 코로나바이러스의 확산으로 2020년 역시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급기야 다임러는 일부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고, 직원들을 대량 해고하는 등, 강력하게 회사 상황을 정리할 것이라고 전해졌습니다. 독일 언론들은 디터 체체 재임 시 발생한 문제를 후임 회장이 힘들게 처리 중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닙니다.

메르세데스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친 A-클래스 / 사진=다임러 
메르세데스의 대중화에 큰 영향을 끼친 A-클래스 / 사진=다임러 

2017년 터진 독일 5개 자동차 회사들의 담합 의혹도 디터 체체 회장 복귀를 부담스럽게 합니다. 비록 그가 회장의 자리에 오르기 이전부터 있어온 완성차 업체들의 담합 의혹이지만 조직적으로 여러 분야에서 이뤄진 이 의혹으로 회사는 다시 한번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조사가 몇 년째 진행 중인데, 그 결과에 따라 타격은 더 커질 것입니다.

세 번째는 전동화의 늦은 대응입니다. 이구동성 독일 언론과 업계 전문가들은 디터 체체 회장이 자율주행 기술을 포함한 첨단 기술과 전기차 시대 대응에 실패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테슬라의 성장을 너무 안일하게 판단했고, 첨단 기술에 대한 투자와 미래 시장 선점을 위한 대응 전략을 제대로 세우지 않았다고 본 것입니다. 끝으로 다임러 그룹은 디터 체체 시절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했습니다.

# 많이 파는 브랜드에서 럭셔리 브랜드로

앞서 설명했듯 그간 벤츠는 판매량을 늘리는 것, 브랜드의 이미지를 젊게 바꾸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가격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고, 이를 위해 메르세데스-벤츠는 소형 라인업을 늘렸습니다. 파생 모델 포함 최대 40개까지 차를 만들다 보니 구조도 복잡하고 무엇보다 남는 게 많지 않았습니다.

올라 칼레니우스는 이런 디터 체체 방식의 볼륨 경쟁보다 수익률을 높이는 럭셔리화에 초점을 맞추려 하고 있습니다. 독일 일부 언론은 럭셔리에 매달리다 혁신을 하지 못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기도 하지만 다임러의 의지는 분명해 보입니다. 적게 팔아도 많이 남는 쪽으로, 과거의 벤츠 명성을 되살리는 그런 고급화에 더 힘을 줄 것이란 얘기죠.

이전보다 경쟁사들과의 판매량 경쟁은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S클래스 / 사진=다임러 
이전보다 경쟁사들과의 판매량 경쟁은 덜할 것으로 예상된다. S클래스 / 사진=다임러 

과연 삼각별은 지금의 위기를 잘 극복하고 그들이 바라는 방향으로 순항할 수 있을까요? 디터 체체가 위기의 벤츠를 살려놓은 주인공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의 과오 역시 간과되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시대의 흐름을 잘 읽지 못하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최고경영자였다는 평가는 더 가슴 아프게 새겨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추가 정보 : 독일 내에서는 디터 체체의 복귀 실패에 아쉬움을 나타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60대 후반의 그가 아직 더 할 일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죠.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현재 그는 여러 기업의 감독이사회에 몸담고 있으며, 중고차 관련한 스타트업에도 참여 중, 바쁘게 잘 보내고 있으니까요. 또한 빌트암존탁은 그가 매일 다임러로부터 4250유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560만 원씩을 연금으로 받는다고 분석했습니다. 현재 추정되는 그의 자산은 대략 5천억 원입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 독일판은 그가 천문학적 연금을 받을 때 3만 명의 직원이 해고 위기에 처했다고 전했습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