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③ “보이지 않는 손을 꿈꾸다”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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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01 09:00
[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③ “보이지 않는 손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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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자동차 사업에서 분명 실패했다. 그러나 단순한 실패자로 남지 않았다. 자동차에 전자제품 비중이 점차 높아질 것이라고 예견하고 칼을 갈았다.

이건희 회장은 에세이에 “오늘날 자동차는 전기전자 제품 비율이 30%를 차지한다. 물론 누구도 자동차를 전자제품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앞으로 10년 이내에 이 비율은 50%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것이 과연 자동차인지 전자제품인지가 모호해진다. 그때는 아마 전자 기술, 반도체 기술이 뒷받침되지 못하면 자동차업을 포기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올지도 모른다”고 기술했다.

삼성은 완성차에서는 물러났지만, 자동차를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았다.

# 외환위기 속 미래먹거리를 찾아라

이건희 회장은 1994년 전자 부품 연구개발을 담당하고 있는 삼성SDI에 배터리 연구개발을 지시한다. 외환위기 당시에도 3000억원을 투자했고, 2000년부터는 전기차용 배터리 연구를 시작한다. 

삼성의 전기차 배터리 사업은 2005년부터 대외적으로 드러난다. 2006년 포드와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을 시작했고, 2008년에는 보쉬와 배터리 생산을 위한 합작사 SB리모티브를 설립했다. SB리모티브는 출범 9개월만에 BMW를 고객사로 유치했고, 폭스바겐그룹과 FCA, 델파이 등과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다.

이후 2012년 삼성SDI는 SB리모티브의 보쉬 보유 지분을 인수하고, 자동차용 배터리 사업의 독자 경영을 선언한다. 이후 2015년 중국 서안을 시작으로 2017년 헝가리 공장을 준공했고, 2018년에는 미국과 유럽 생산 시설을 증설하는 등 공격적인 투자 및 설비 확대에 나선다.

차세대 기술로 주목받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도 가장 적극적이다. 2013년부터 관련 기술을 선보이고, 최근 1회 충전으로 800km 이상을 주행할 수 있는 전고체 배터리 연구 결과를 공개한 바 있다. 셀 크기는 줄이고 배터리의 안전성을 높이는 원천 기술을 확보해 세계적인 학술지 네이쳐 에너지에 등재됐다.

# 9조에 ‘하만’을 인수하다

삼성은 2016년 권오현 부회장 직속 전장사업팀을 구성하고, 80억 달러(9조3000억원)를 들여 하만을 인수한다. 삼성의 미래 먹거리로 자동차용 전장 사업이 더해졌다. 인수 절차는 이듬해 3월 마무리됐다.

인수 당시 하만은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문 글로벌 1위, 차량용 텔레매틱스 부문 글로벌 2위 업체였다. 삼성은 디스플레이 및 반도체 부문을 비롯해 5G 통신과 인공지능(AI) 기술를 접목해 시너지를 노렸다.

삼성과 하만의 첫 협업 결과물은 2018년 CES에서 등장한 디지털 콕핏이다. 삼성의 QLED 디스플레이와 플렉서블 OLED 패널, 그리고 차량용으로 최적화된 인공비서 빅스비 등을 적용했다. 자율주행 시대를 염두해 5G 통신 기반 텔레매틱스 시스템도 탑재했다.

차량용 전장 부문에서 삼성의 미래는 밝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스트레터지애널리틱스는 차량용 전장 시장이 빠르게 성장할 것이라 전망했다. 오는 2023년까지 매년 7.4%씩 성장하고, 2024년에는 4000억 달러(453조원)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삼성의 주력 사업군인 메모리 반도체 시장 규모가 142조원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삼성의 주력 사업군이 바뀔 가능성도 충분하다.

# 차량용 반도체도 ‘초격차’

삼성은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도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은 네덜란드 NXP, 독일 인피니온, 일본 르네사스 등이 3강 체제를 구축하고 있지만, 자율주행 시대에 맞춰 그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2018년 차량용 반도체 브랜드 ‘엑시노스 오토’를 론칭하며 본격적으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출범 초기부터 아우디와 자율주행용 칩 공급 계약을 체결하고, 테슬라가 설계한 자율주행 반도체도 삼성전자 미국 공장에서 위탁 생산하고 있다.

차량용 반도체 생산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있다. 최근에는 데이터 전송률이 409GB/s에 달하는 차량용 고성능 메모리 칩을 세계 최초로 선보였고,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운용 안정성을 높인 차량용 SSD도 공개했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4~5단계 자율주행에 대응할 수 있는 미래차용 반도체를 개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건희 회장이 꿈꾸던 삼성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지만, 삼성은 자동차 시장과 산업에서 그 영향력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삼성과 자동차의 인연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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