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② “예견된 실패, 기아차를 인수했다면?”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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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31 09:00
[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② “예견된 실패, 기아차를 인수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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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마침내 삼성자동차가 출범한다. 부산 신호공단 부지 55만평 면적에 생산 시설을 건립했고, 2002년까지 4조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50만대 생산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투자 계획도 확정했다. 그리고 1998년 4월 삼성자동차의 첫 승용차 SM5가 공개된다. 닛산 맥시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중형 세단으로, 초기 차량 부품을 대부분 닛산으로부터 조달받아 생산됐다. 뛰어난 품질과 내구성을 바탕으로 바람몰이에 성공하지만, 출범과 함께 IMF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당시 업계의 강한 반발 속에 탄생한 삼성자동차는 선두 탈환을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단행한다. 이건희 회장은 그간 애용하던 메르세데스-벤츠를 대신해 SM5를 타고 공식 석상에 등장하며 강한 애착을 보였고 경쟁사 인수를 추진했다. 하지만 출범 직후 외환위기 악재에 직면한다. 

# 수많은 공작에도 기아차 인수 실패

삼성은 자동차 사업 진출 이전부터 기아차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당시 경쟁사들보다 높은 기술력을 보유했었고, 전문 경영인 체제를 도입해 지분 구조가 상대적으로 깔끔했기 때문이다. 인수합병(M&A) 매물로서 매력적이었고, 그 시기 적대적 인수에 관한 법 제재도 느슨했었다.

삼성 계열사인 삼성생명과 삼성화재가 1993년 기아차 지분 10%를 공개 매수하며,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당시 기아차 우리사주 지분율(7.73%)을 넘어서는 수치였다. 공격적 지분 매수에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삼성은 결국 지분 비중을 6%까지 낮춘다.

지분율을 낮췄지만, 기아차에 대한 ‘공작’은 이어졌다. 1995년 삼성중공업 직원들이 소하리 공장에 있던 봉고 J2 사진을 몰래 촬영하다 발각됐고, 1997년에는 성장한계에 봉착한 기아차를 삼성이 인수해야 한다는 내부 보고서가 유출돼 파문을 일으켰다.

삼성은 기아그룹이 부도 처리된 1998년 기아차 공식 인수를 추진한다. 이를 우려한 현대차와 대우차가 기아차 인수전에 가세했고, 여기에 포드까지 가세해 4파전이 벌어졌다. 인수전은 부채 처리 문제로 두 차례 유찰됐고, 3차 입찰에서 현대차가 최종 낙찰받았다. 정작 인수에 가장 열정적이었던 삼성은 가장 낮은 평가 점수를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 삼성-대우, 빅딜 불발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좌)과 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우)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
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좌)과 故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우)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

삼성차의 부채는 출범 첫해부터 급격하게 증가한다. 매년 1조원 가량을 투입하는 등 시설 투자가 주요 원인이었다. “매년 5000억원씩 10년간 적자가 나도 괜찮다”던 이건희 회장의 의지와는 달리, 출범 3년 만에 4조원의 부채가 쌓였다. 때마침 발발한 외환위기는 고통을 가중시켰고, 이때부터 재계 빅딜(사업교환)이 논의된다.

재계 빅딜은 1998년 초부터 검토됐지만, 추진이 확정된 시기는 청와대에서 열린 정·재계 간담회 이후다. 정부는 빅딜을 통해 부실 계열사들을 정리하고, 각 기업의 전문성을 키우고자 했다. 삼성은 이때 삼성차를 대우그룹에 넘기고, 대우전자를 삼성전자에 편입시키는 인수 협상을 본격화한다.

양측 이해관계는 잘 맞아 떨어졌다. 1999년 3월에는 삼성 이건희 회장과 대우 김우중 회장이 만나 잠정 인수를 합의하기에 이른다. 삼성은 기아 인수 좌절과 막대한 시설 투자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았다. 당시 SM5는 한 대가 팔릴 때마다 150만원씩의 손해를 봤다. 대우도 부실을 경고한 노무라증권 보고서 발표 직후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었다. 

양측의 빅딜은 세부 항목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삼성차는 그 해에만 1조원대 손실했고, 대우 역시 숨겨진 그룹 부실 문제가 연쇄적으로 터져 나왔다. 삼성이 대우그룹 대주주 자리에 올라설 수 있는 기형적인 지분 구조도 복잡성을 더했다. 결국 삼성은 1999년 6월 교섭 결렬을 발표하고, 삼성차 및 삼성상용차 법정관리를 신청한다.

# 삼성자동차, 20세기 속으로 사라지다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
출처=한국자동차산업협회

삼성은 법정관리 신청 직후 삼성차 부채를 자체적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힌다. 이를 위해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주식 2조8000억원어치를 출연했고, 이 돈은 부채 상환과 협력업체 지원에 쓰였다. 주식 매각 및 부채 상환은 3개월 만에 진행됐고, 법정관리 6개월 만인 1999년 12월 삼성차 매각이 추진된다.

삼성은 르노와 협상 테이블을 차린다. 그 결과 인수 대금 4400억원 중 르노가 3080억원(70.1%)을, 삼성이 880억원(19.9%), 채권은행단이 440억원(10%)을 지불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외 르노는 삼성브랜드 이용 대가로 매출의 0.8%를 지급하는 계약도 체결했다. 그렇게 1999년 9월 르노삼성자동차가 출범한다.

삼성의 자동차 사업 모태였던 삼성상용차는 2000년 11월 전격 퇴출됐다. 12월에는 삼성자동차 법인도 최종 해산 처리된다. 이로써 삼성은 사업 6년 만에 자동차 산업에서 완전히 철수한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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