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① “반대 속 탄생한 이건희의 아픈 손가락”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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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0.30 09:00
[MG수첩] 삼성과 자동차① “반대 속 탄생한 이건희의 아픈 손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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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자타가 공인한 자동차 마니아였다. 진귀한 자동차를 수집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 박물관과 전용 서킷까지 설립했다. 자동차에 대한 그의 애정은 한발 더 나아가 사업으로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자동차 사업은 그에게 아픈 손가락이었다. 사업 시작부터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이후 누적된 적자와 외환위기가 겹치며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굴욕을 맛보았다. 상용차 사업에만 국한하겠다던 약속을 뒤집고, 기아차 인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정 행위가 적발되는 등 과오도 있었다.

모터그래프에서 삼성의 자동차 사업 흥망성쇠와 최근 행적을 살펴봤다.

# 삼성상용차, 시작부터 삐걱이다

사실 삼성은 자동차 사업 진출에 부정적이었다. 이는 창업주 이병철 회장의 의중이 컸다. 그러나 1987년 이병철 회장 사후 그룹을 이끌게 된 이건희 회장은 달랐다. 그는 당시 현대그룹을 넘어서기 위한 해답이 자동차에 있다고 봤다.

이건희 회장의 에세이에는 “나는 자동차 산업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공부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났다. 전 세계 웬만한 자동차 잡지는 다 구독해 읽었고 세계 유수의 자동차 메이커 경영진과 기술진을 거의 다 만나봤다. 즉흥적으로 시작한 게 아니고 10년 전부터 철저히 준비하고 연구해왔다”고 적혀있다.

더욱이 특정 산업의 진출을 규제해온 공업 합리화 조치도 해제되며 삼성의 자동차 사업 진출은 급물살을 탄다.

당시 자동차 업계는 다양한 이유로 삼성의 상용차 시장 진출을 반대했다. 자동차 기술 국산화 및 부품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시설 중복 투자와 생산 과잉으로 업계가 공멸할 것이라 주장했다. 삼성이 차후 승용차 사업까지 진출할 것이라고 우려하는 입장도 팽배했다.

반면, 삼성은 상용차 생산을 신규 사업이 아닌 ‘관련 사업 다각화’라고 주장했다. 이미 삼성중공업을 통해 건설중장비를 생산하고 있었고, 대형트럭 및 특장차의 기술 구조가 유사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승용차 사업은 참여 의사가 없으며, 사업을 대형 상용차로 국한하겠다고도 주장했다.

삼성은 1992년 상용차 시장에 첫발을 내디딘다. 기존 업체의 반발을 감안해 생산량의 30%를 해외에 수출하겠다는 조항을 걸었다. 삼성중공업은 1994년 15톤 덤프트럭과 11.5톤 카고 트럭을 차례로 시장에 내놓는다.

# 승용차 사업, 거센 반대에 직면하다

1993년 11월 삼성의 승용차 시장 진출 소식이 터져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가 발간한 ‘자동차 사업에 대한 입장’이란 자료가 언론사에 배포됐다. 이는 최신 도입기술을 토대로 부품 국산화율 90% 이상을 달성하고, 1997년 초 삼성승용차를 선보이겠다는 계획을 담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발표 직후, 여론은 또 한 번 찬반논란에 휩싸인다. 찬성 측은 국산 자동차 업계의 경쟁력 강화를 내걸었고, 반대 측은 규모의 경제를 악용할 가능성을 우려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산업연구원 보고서도 여론에 영향을 미쳤다. 신규 업체(삼성)가 외국 기술을 중심으로 진출할 경우, 국내 기술 자립을 저해시켜 R&D 투자 감소가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경쟁적인 설비 확장으로 중복 과잉투자가 초래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삼성은 즉각 반발했다. 산업연구원 보고서 발표 직후 공식 입장을 내고 “연구 결과와 관계없이 계속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라며 “진출 시기를 늦추거나 중단할 생각도 없다”고 전했다. 보고서에 대해 ‘무사안일주의의 소산’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 삼성자동차, 공방 끝에 출범하다

삼성의 승용차 시장 진출은 1994년 닛산의 기술 도입 신고서를 정부에 제출하며 종지부를 찍는다. 1998년 첫 모델을 내놓고, 1999년엔 소형차를, 2003년에 첫 독자 모델을 출시하겠다는 계획서다. 더불어 부품 국산화 80% 달성 목표도 제시했다.

1995년 정부 승인 이후, 마침내 삼성자동차가 출범한다. 부산 신호공단 부지 55만평 면적에 생산 시설을 건립했고, 2002년까지 4조3000억원을 투자해 연간 50만대 생산 체계를 확립하겠다는 투자 계획도 확정했다.

이후 1998년 4월 삼성자동차의 첫 승용차 SM5가 공개된다. 닛산 맥시마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중형 세단으로, 초기 차량 부품을 대부분 닛산으로부터 조달받아 생산됐다. 뛰어난 품질과 내구성을 바탕으로 바람몰이에 성공하지만, 출범과 함께 IMF 그림자가 드리우게 된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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