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만에 물러난 정몽구 명예회장…‘왕자의 난’부터 세계 5위 글로벌 기업까지
  • 신화섭
  • 좋아요 0
  • 승인 2020.10.14 11:37
20년 만에 물러난 정몽구 명예회장…‘왕자의 난’부터 세계 5위 글로벌 기업까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완성차 업체로 성장시킨 정몽구 회장이 아들에게 자리를 완전히 물려주고 경영 일선에서 떠났다.

1970년 현대차에 입사한 정 명예회장은 1974년 자회사인 현대자동차써비스 대표로 CEO 경력을 시작했다. 1977년에는 현대정공을 설립해 컨테이너 사업으로 세계 1위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이 당시 현대정공은 전 세계 컨테이너 공급량의 30%가량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1996년에는 정주영 선대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그룹 회장에 오른다. 당시 정몽구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사외이사제를 도입하는 등 대기업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타파하기 위한 가치경영을 밝히기도 했다.

1998년에는 경영 악화로 부도한 기아차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해 현대그룹에 편입한다. 이후 기아차로 통합되어 지난해 기준 270만여대를 판매하는 글로벌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1998년 동생 고 정몽헌 회장이 현대그룹 공동회장직에 오르며 현대차를 두고 이른바 ‘왕자의 난’이라고 불리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정몽구 명예회장은 2000년 현대차 관련 계열사를 분리해 현대차그룹을 설립하고 독립하게 된다.

그러나 2007년 회삿돈 900억여원을 횡령하고 회사에 2000억원이 넘는 손해를 끼치는 등 비자금 조성과 횡령, 배임 등의 혐의로 징역 3년 형을 선고받는 오점을 남겼다. 당시 방어권을 보장하고,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법정 구속이 진행되진 않았지만, 기업 이미지 하락 등 논란을 겪었다. 이후 항소심에서 징역 3년, 집행유예 5년으로 감형됐고 상고심 이후 파기환송심에서 집행유예가 확정됐다.

2016년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는 진상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당시 정 회장은 의원들에게 ‘박근혜 전 대통령의 요구에 의해 미르·K스포츠 재단에 출연금을 내고, 차은택씨의 광고회사에 일감을 몰아준 것 아니냐‘는 날 선 질책을 받았다.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정몽구 명예회장은 20여년간 회사를 이끌며 현대기아차를 세계 5위권 자동차 업체로 성장시켰다. 특히, 글로벌 주요 지역에 현지 공장을 건설하는 등 해외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며 빠른 성장을 기록했다. 전 세계 균일한 고품질의 생산공장을 적기에 건설할 수 있는 표준공장 건설 시스템을 확립했으며, 세계 최대 규모의 연구개발센터를 구축해 기업 본연의 경쟁력을 확충했다. 

또,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를 건설해 그룹 내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세계 최초로 친환경 자원 순환형 사업구조를 갖춰 기업의 환경에 대한 책임과 지속 가능 경영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런 성과를 인정받아 정 명예회장은 지난 2월 미국 자동차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다. 명예의 전당 측은 “정몽구 회장은 현대자동차그룹을 성공의 반열에 올린 업계의 리더”라며 “기아차의 성공적 회생, 글로벌 생산기지 확대, 고효율 사업구조 구축 등 정몽구 회장의 수많은 성과는 자동차산업의 전설적 인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며 정몽구 회장에 대한 헌액 이유를 밝혔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