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시간 여행자’ 포르쉐 타이칸 터보 S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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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9.08 14:33
[시승기] ‘시간 여행자’ 포르쉐 타이칸 터보 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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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 1일 경기도 용인에 위치한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포르쉐 타이칸 터보 S를 시승했다. 올 4분기 국내 출시를 앞둔 포르쉐 첫 전기 스포츠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차는 정말 매력적이다. 타는 내내 재밌었고 정말 뛰어나서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기차 특유의 짜릿한 가속 성능은 기본이며, 미드십을 연상케 하는 민첩한 움직임이 재미를 더한다. 2열 공간에 대한 아쉬움도 적어, 데일리카로서 목적도 충분하다.

외관은 콘셉트카 미션 E와 꼭 닮았다. 양산화 과정을 거치며 일부 디테일이 바뀌었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다. 더욱이 휠 등 일부 파츠는 콘셉트카와 동일한 디자인으로 교체할 수 있다.

전면부는 낮고 유려한 보닛과 도드라진 헤드램프 등 포르쉐 고유 디자인 언어를 담았다. 여기에 4개의 포인트가 더해진 LED 헤드램프가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를 더했다. 헤드램프 하단에 위치한 ‘눈물 자국’과 같은 형상은 공기 흐름을 원활하게 한다.

측·후면은 영락없는 포르쉐다. 역동적인 실루엣에서 파나메라가 느껴지고, 길게 뻗은 테일램프와 볼륨감 있는 후면부는 911을 연상시킨다. 평평하게 다듬어진 하부 패널과 전동식 에어 플랩을 비롯해 후면부 디퓨저까지 모두 공기역학 성능을 고려해 설계됐다.

타이칸은 파나메라보다 작지만 존재감은 더 크다. 제원과 달리 파나메라보다 실제로 더 크게 느껴진다. 전장은 짧지만, 한층 더 긴 전폭을 확보해 역동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갖췄다. 

거주성도 크게 부족하지 않다. 차체 바닥에 배터리가 탑재됐지만, 다른 전기차처럼 무릎이 곧추세우지 않아도 된다. 레그룸이 위치한 공간은 배터리를 덜어냈기 때문이다.

운전석에는 10.1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와 8.4인치 센터 디스플레이가 마련됐다. 중앙에 위치한 물리 버튼은 비상등 뿐이며, 아날로그 형태를 갖춘 것도 대시보드에 마련된 크로노그래프가 전부다. 고택(古宅)의 흔적만 남기고 헐어버린 자리에 통유리 건물을 세워올린 기분이다. 포르쉐가 페라리나 람보르기니보다 좋은 이유는 과시하지 않는 느낌이었는데, 이번에는 미래 지향적인 이미지에 다소 집착한 느낌이다. 디스플레이 터치 시 짤깍이는 소리와 햅틱 반응도 세련된 맛이 부족하다.

이어 적재 공간도 아쉽다. 보닛 아래와 트렁크 공간을 모두 합쳐도 총 447리터 밖에 나오지 않는다. 배터리로 인해 공간이 제한적인 전기차이지만, 500리터도 채 안되는 트렁크 용량은 조금 이해하기 힘들다.

본격적인 시승에 앞서 주행 성능은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전기차가 시작부터 최대토크를 활용한 강력한 가속성능과 배터리 배치에 따른 낮은 무게중심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타이칸 역시 비슷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완벽한 오판이었다. 타이칸은 전기차이기에 앞서 ‘포르쉐’라는 점을 망각했다. 정말 빠르고 역동적이며 민첩하다. 여기에 전기차 특유의 어색한 정적까지 어우러지면, 순간적으로 혼란에 빠진다. 타이칸은 기존 전기차는 물론, 포르쉐 브랜드 내에서도 전혀 다른 경험을 선사한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107.1kg·m의 강력한 토크가 즉각적으로 터져나온다. 준비할 새도 없이 머리가 헤드레스트에 파묻히고, 섬뜩한 적막이 긴장감을 더한다. 놀랄 틈도 없이 브레이킹 포인트가 눈에 들어오면, 마치 시간여행을 한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직선 구간을 제외한 전반적인 움직임은 911보다 묵직한 718에 더 가깝다. 타이칸 중량은 2.3톤에 달하지만, 무게의 14%를 차지하는 배터리가 중앙에 있다. 엔진이 없으니 앞·뒤로 가벼울 수 밖에 없고 파나메라와 맞먹는 육중한 차체임에도 경쾌한 움직임이 가능하다. 

스포츠 모드에 진입하면 그 차이는 더 명확해진다. 오버부스트를 통해 최고출력(625마력)은 761마력까지 치솟는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2.8초, 200km/h까지는 9.8초 만에 도달한다. 그러니 속도는 필요 이상으로 줄이고 줄여도 괜찮다. 강력한 가속 성능은 코너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이다.  

코너에서 머리를 집어넣는 순간, 에어 서스펜션과 토크 벡터링, 다이내믹 섀시 컨트롤, 전자식 댐퍼 컨트롤 등이 치열한 계산을 시작한다. 어떤 환경에서든 결과값은 동일하게 산출된다. 제동 시 노즈 다이브 현상은 억제되고 코너를 돌아나가는 내내 자세 한번 흐트러지지 않는다. 

다만, 포르쉐 919 하이브리드에서 따온 전자식 사운드는 마치 지하철 소음과 같다. 역동적이고 매력적인 주행 성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다.

타이칸은 전기차이기에 앞서 포르쉐다. 강력한 성능과 남다른 핸들링 성능 등 순수한 운전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포르쉐 DNA를 느낄 수 있다. ‘포르쉐 전기차’란 단순한 표현 대신, ‘전기 에너지를 사용하는 포르쉐’라고 정의하겠다.

더욱이 서킷에서 예상보다 몇 초 더 빠르게 반응한다. 게임을 하듯 관성이나 횡가속력과 같은 물리학적 제약을 뛰어넘은 움직임이다. 시공간을 넘는 타임머신이 있다면, 꼭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예측을 넘어 성큼 다가온 미래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이 차는 정말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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