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제네시스 ‘안방호랑이’에 그칠까
  • 신승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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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30 11:53
[기자수첩] 제네시스 ‘안방호랑이’에 그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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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독립 5주년을 맞은 제네시스가 흔들리고 있다. 속도보다 방향성이 더 중요한 고급차 시장에서 길을 잃고 헤매는 모양새다.

현대차그룹이 29일 제네시스 사업부장 이용우 부사장을 이노션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했다. 이번 인사는 직급상 승진이지만, 회사 안팎 상당수가 문책성 좌천으로 보고 있다. 이용우 사장이 앞서 이노션에서 미주지역본부장(상무)을 역임했다고는 하지만, 현대차 해외판매사업부장(전무)부터 브라질법인장(부사장), 북미권역본부장(부사장), 미주권역지원담당(부사장) 등 현대차 핵심 해외사업부를 거친 인물이기 때문이다. 자동차 해외영업통을 광고계열사로 배치한 이번 인사는 문책성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다.

더욱이 이용우 사장이 제네시스 사업부장으로 선임된 시기는 작년 10월로, 불과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이 사장의 후임 자리를 비워둔 갑작스러운 인사인 점도 이 같은 의견에 힘을 더하고 있다.

사실 제네시스 브랜드가 부진한 것은 결코 아니다. 올 상반기 국내 판매량은 4만8886대로, 전년대비 51.5%나 급증했다. 신형 G80과 GV80 등 주요 신차의 출고 대기 물량은 3개월치 이상 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군다나 코로나19 여파로 상반기 현대차 전체 판매 대수는 줄었지만, 제네시스를 중심으로 한 제품 믹스 개선과 수익성 방어를 이뤄냈다. 엔진 떨림을 비롯한 품질 이슈가 연이어 발생했지만, 장부상 실적으로는 독보적인 성장세를 달성했다.

(왼쪽부터)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제네시스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 부사장, 이노션 이용우 사장, 제네시스 마크 델 로소 북미 CEO. 
(왼쪽부터)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 제네시스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전 부사장, 이노션 이용우 사장, 제네시스 마크 델 로소 북미 CEO. 

문제는 이 같은 행보가 국내 시장에만 국한됐다는 점이다. 사실상 제네시스의 유일한 해외 진출 시장인 미국에서 올 상반기 판매량은 7540대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7%나 급감했다.

현대차그룹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 직접 주재한 첫 시무식에서 “중국, 유럽 등 해외 진출을 가속화하고 글로벌 브랜드 파워를 강화한다”며, 제네시스 브랜드에 대한 단기 목표를 명확히 제시한 바 있다. 이후 그룹 내부에서도 제네시스에 대해 ‘브랜드 인지도 제고를 통한 미국 시장 공략’과 ‘중국 및 유럽 시장의 성공적인 안착’ 등을 최대 당면 과제로 꼽았다. 

이용우 사장도 제네시스 사업부장으로 선임될 당시 “해외사업 전략과 영업에 능통한 현장 전문가인 동시에 제네시스의 주요 시장인 미국 시장 경험이 풍부한 만큼, 제네시스 사업부의 지속 성장에 힘을 보탤 적임자”란 인사평을 받았다.

그러나 최근까지 제네시스 행보를 살펴보면, 그저 안방에만 머물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신차 출시와 브랜드 론칭 등에 차질이 발생했지만, 내수 성적에만 몰입해 새로운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다. 글로벌 고급차 시장에 대한 낮은 이해와 불투명한 비전, 그리고 전임자인 맨프레드 피츠제럴드 부사장의 그림자를 지우지 못한 점 등이 이 사장의 발목을 잡은 것으로 평가된다.

현대차그룹에 따르면, 공석이 된 제네시스 사업부장직은 현대차 국내사업본부장 장재훈 부사장이 한동안 겸직할 예정이다. 그렇다고 중요한 자리를 오래 비워둘 수는 없는 법. 현재 후임자로 마크 델 로소(Mark Del Rosso) 제네시스 북미담당 최고경영자(CEO)가 언급되고 있다. 아우디와 벤틀리 미국법인 CEO 출신인 마크 델 로소는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아우디 북미법인 최고운영책임자(COO)를 맡으며 기록적인 브랜드 성장세를 이끈 바 있다. 이와 함께 마세라티와 애스턴마틴 세일즈 총괄 출신 엔리케 로렌자나(Enrique Lorenzana) 제네시스 유럽 총괄도 브랜드 요직에 하마평이 오르고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글로벌 고급차 시장이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제네시스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아직은 예측하기 어렵다. 다만, 지금으로서는 안방을 지키는 호랑이가 아닌 안방에만 머무는 호랑이에 그칠 확률이 높아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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