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G수첩] ‘민식이법’을 보는 전문가들 시선…‘0:100 무과실’ 가능할까?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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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7.02 18:28
[MG수첩] ‘민식이법’을 보는 전문가들 시선…‘0:100 무과실’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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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G수첩] 개학 후 이어지는 ‘민식이법 논쟁’…쟁점은?

앞서 민식이법 입법 과정과 쟁점 사안들을 살펴봤다. 

경미한 과실에도 최소 500만원의 벌금 혹은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이 공포감을 조성하고 있다. 고의성이 없는 과실 범죄의 형량이 가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또한, 이를 결정짓는 ‘안전운전 의무 준수’ 조항은 지나치게 추상적이란 의견이다. 예방 조치 없이 형사 처벌만 우선시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이 같은 논란은 곧장 청와대로 향했다. 국민청원 게시판에서 민식이법 개정 청원에 35만명이 동의했고, 정부도 입장을 발표하고 나섰다. 지난 5월 19일 행정안전부 김계조 재난안전관리본부장은 “불가피한 사고를 엄벌하겠다는 의도는 아니다”라며 “기존 판례에서도 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경우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와 별개로 정부는 민식이법 저촉 여부가 판단되는 사고에 대해 보다 면밀히 검토하겠다고 약속했다. 모든 스쿨존 사고를 경찰청이 직접 챙기고,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도로교통공단을 통해 정밀 분석을 병행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민식이법은 뜨겁다. 특히, 아직 첫 판례가 없다는 점도 혼란을 야기시킨다. 각계각층의 전문가 의견을 들어봤다. 

# 어린이보호구역 인명 사고, 0:100 무과실 성립 가능할까?

손병구,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
손병구,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

일선 경찰이나 보험사 관계자들은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인명사고가 발생할 경우 ‘0:100 무과실’이 거의 없다는 입장이다. 보험사 과실도표 등에 따르면,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하거나 피해자가 어린이라는 것만으로도 운전자에게 10~15% 과실 가중치를 매긴다.

손병구 변호사(법무법인 LF)는 “인사 사고는 스쿨존은 물론, 일반 도로에서도 업무상 과실이 인정되며 형사 처벌을 받는다”라며 “과실이 없다고 인정되려면, 육교에서 사람이 떨어져 차량에 충돌하는 것과 같은 특수한 상황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최준영 손해사정사도 “스쿨존 내 인명사고 중 무과실이 되려면, 정차된 차량에 어린이가 부딪혀 부상을 당하는 것처럼 차량이 움직이지 않아야 한다”고 답했다. 

최준영 손해사정사
최준영 손해사정사

다만, 민사상 과실 비중을 따지는 것과 형사 책임 여부를 묻는 것은 전혀 다른 사안이다.

김연수 변호사(법무법인 명재)는 “피할 수 없는 인명 사고는 민사적 책임을 질지언정, 형사 처벌은 가하지 않는다”며 “이미 교통사고 특례법에서도 어린이가 사망하지 않은 경우 벌금형으로 처리해왔고, 합의를 통해 벌금 등 집행 형량도 충분히 낮출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도 “법원에서 무죄가 판단될 정도로 경미한 과실 사고라면, 애당초 수사 당국에서 이를 기소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우리가 접하는 (재판)사례들은 대부분 과실로 인정될만한 여지가 있던 사건이라는 점에서 (숨겨진 통계 수치를) 살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스치기만 해도 500만원, 사실일까?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
박성민 변호사(법무법인 LF)

소위 ‘스치면 오백(500만원)’이라는 소문은 어떨까. 민식이법 최하 형량이 벌금 500만원인 것은 맞지만, 특가법에 의해 처벌을 받으려면 ‘상해’ 또는 ‘사망’이 입증되어야 한다.

김연수 변호사는 “과실이 인정돼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따른다”라며 “갑자기 어린이가 튀어나와 피할 수 없는 사고였거나 경미한 수준의 부상이라면 합의를 통해 벌금형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준영 손해사정사도 “민식이법 적용에 앞서 어린이 부상을 입증할 수 있는 병원 진단서가 있어야 한다”며 “치료를 요하지 않을 경우 민식이법이 적용되지 않고, 당사자끼리 보험 처리나 원만한 합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단, 박성민 변호사는 “처벌 수위를 낮추기 위한 합의 과정에서 500만원보다 더 높은 금액을 요구받을 수도 있다”며 “스치기만 해도 500만원이라는 주장이 어쩌면 가능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 같은 듯 다른 사고를 바라보는 시각

손병구 변호사(법무법인 LF)
손병구 변호사(법무법인 LF)

사고 발생 시, 보험사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과실 비율을 산정하고 이에 따른 보상 절차를 진행한다. 그러나 이는 법원 판단과는 전혀 다를 수 있다.  

최준영 손해사정사는 “보험사에서 판단한 과실 여부와 별개로, 법원에서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가 적잖다”며 “재판부는 동일한 사고라고 할지라도 소송 당사자들 주장을 참고해 최종 과실을 판단한다”고 전했다. 

법조계 입장도 마찬가지다. 보험사가 측정한 과실 비중이나 여부는 재판의 참고 사안일 뿐이다. 

손병구 변호사는 “보험사는 과실 산정에 회사 이익을 반영하는 탓에 최대한 보수적으로 판단하지만, 법원은 이익 관계에 전혀 구속되지 않기 때문에 다르게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김연수 변호사도 “보험사 과실 기준은 법원 판례에서 비롯된 결과들을 기반으로 하기에 단순 참고 사항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며 “사고 경중을 따지지 않고 획일적인 과실을 적용했을 경우, 법원이 이를 뒤집기도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실 비율은 민사재판 등에서 손해배상 규모를 측정하기 위한 수단”이라며 “형사재판에서 과실을 몇대 몇으로 구분 짓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덧붙였다.

# ‘갑툭튀’ 사고, 이제 재판부의 시간이 왔다

소위 ‘갑툭튀(갑자기 툭 튀어나오는)’ 사고도 쟁점이다. 불법 주차된 차량 사이에서 뛰쳐나오는 어린이처럼 운전자가 예견할 수 없는 사고까지 처벌할 것인지에 대해 여전히 논란이다. 법조인들은 사법부가 이에 대한 치열한 판단을 이어갈 것이라 전망했다.

김연수 변호사는 “법원에서 운전자 회피 가능성이 있었는지, 안전운전 의무 위반 사실이 있는지를 면밀하게 판단할 것”이라며 “제한 속도 30km/h보다 느린 속도로 가거나 사전에 경적을 울리는 등 안전운전 의무을 지키려는 행위가 인정된다면 운전자 무과실 판단이 내려질 것이라고 본다”고 답했다.

손병구 변호사는 “논란이 되는 법안이다 보니 재판부도 여론을 반영한 판결을 할 것이라 생각한다”며 “형량이 높게 책정됐다는 비판이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일부 과실이 판단되더라도 하한선에 가까운 판결을 내리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한다”고 말했다.

인터뷰에 응한 세 명의 변호사 모두 민식이법 1호 재판에 국민 여론이 반영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내다봤다. 사회적 관심이 높은 사안인 만큼, 관련 법을 적용하는 검사부터 재판관까지 법령 내에서 보다 유연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뜻이다.

익명을 요청한 A 검사도 “국민 청원부터 국회 개정안 소식까지 각계각층의 이목이 집중됐다”라며, “판결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 ‘안전에 유의한 운전 기준’ 판례를 통해 구체화될까? 

김연수 변호사(법무법인 명재)
김연수 변호사(법무법인 명재)

경찰청에 따르면, 6월 초까지 민식이법으로 수사한 사건은 72건에 달한다. 이 중 검찰로 송치된 것은 5건이며, 아직 사건과 관련해 법원 판결을 내려진 것은 전무하다.

그렇다면 향후 판례를 통해 ‘안전운전 주의 의무’가 명문화될 수 있을까. 법조계는 민식이법 1호 판례가 관련 의무를 상세히 명시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손병구 변호사는 “판결문에 안전운전에 대한 기준을 명시할 가능성은 높다”라며 “주의 의무 기준을 명시하고 그 기준에 따라 과실 여부를 따지는 결정이 내려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연수 변호사도 “민식이법과 관련한 법원 판단이 축적되다 보면, 구체적인 안전운전 사례가 제시될 수 있을 것”이라며 “가령 운전자가 스쿨존에서 경적을 울렸다던가 비상등을 켜고 서행했다는 점 등 구체적인 사례가 명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성민 변호사는 “이 같은 판례가 안전운전 주의 의무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될 수 있다”면서도 “다만, 그 판례를 모두 충족했다고 해서 무조건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고 지적했다.

# 불합리한 형벌 체계 vs 법 취지 생각해야

고의성이 없는 교통사고의 처벌 수위가 지나치게 과도하다는 의견도 많다. 국회 입법조사처에서도 사망 사고 발생 시 무조건 징역 처분을 내리는 결정은 지나치다는 의견이 나왔다. 이는 위헌 소지 논란으로까지 불거졌다. 이와 관련한 법조계 시각은 엇갈렸다.

박성민 변호사는 “형사 처벌의 대원칙은 잘못한 만큼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라며 “과실 사고에 대한 민식이법이 음주운전 사고와 형량이 동일하다는 점은 위헌적 요소가 있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반면, 김연수 변호사는 “특가법 처벌 수위가 과도하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지만, 입법 취지를 생각해야 한다”며 “입법 당시 스쿨존 사고를 엄하게 처벌할 필요성이 있다는 국민적 합의가 이뤄진 사안인 만큼, 헌법재판소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전했다.

# 합의 통한 작량 감경 여지는 충분

운전자 과실로 어린이가 사망할 경우 무조건 징역형이니 합의는 의미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법조인들은 ‘합의’가 재판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정상 참작이 이뤄질 경우 징역형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이다.

김연수 변호사는 “형사 사건은 양형 기준에 따라 다양한 요건을 판단하고 가중 또는 감경 처벌하는 것이 원칙인 만큼, 합의가 가장 중요한 감경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양측이 모든 피해를 회복했다고 주장할 경우 재판부도 법에서 정한 형량보다 훨씬 낮게 감경 처벌한다”고 말했다.

손병구 변호사도 “개인간의 합의가 적정하다 판단할 경우 재판부도 양형을 고려한다”며 “합의가 될 경우 형량은 당연히 감경된다”고 설명했다.

# “일부 보완 필요하지만, 법 취지 전적으로 공감”

민식이법을 보는 시선은 다소 엇갈렸지만, 입법 취지는 모두 전적으로 공감했다.

박성민 변호사는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며 “과실 사고의 형량을 강화하는 것 외에도 다른 방식으로 어린이를 보호할 수 있는 만큼 다른 방식의 접근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병구 변호사는 “법률이 한 번 입법되면 조문이 삭제되거나 개정되기까지 더 많은 시간을 요한다”며 “법 취지에 공감하지만 국회에서 보다 신중한 입법이 이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김연수 변호사는 “형량이 강화됐지만 과실이 판단되는 기준은 바뀌지 않은 만큼, 피할 수 없는 사고였다면 억울하게 처벌받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스쿨존에서는 조금 더 안전·방어운전을 하고 보행자 보호를 위해 노력한다면 민식이법으로 사회가 얻고자 했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현장 일선에 있는 경찰들도 입법 취지를 강조했다.

수도권 경찰서에서 근무하는 B 경정은 “오히려 법 시행에 늦은 감이 없잖아 있다”라며 “운전자 안전운전 의식이 더 강화되고 어린이 교통사고 발생을 예방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지방 경찰청에 소속된 C 경정도 “어린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견에 반대하는 국민들은 없을 것”이라며 “법을 두고 국민들 사이 혼란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억울한 운전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더 꼼꼼하게 업무에 임하겠다”고 답했다.

# 법안 발의 나선 국회의원들, 여론 눈치보며 나몰라라

강훈식(충남 아산 을, 더불어민주당), 이명수(충남 아산 갑,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강훈식(충남 아산 을, 더불어민주당), 이명수(충남 아산 갑,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모터그래프는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식이법을 대표 발의한 강훈식(충남 아산 을, 더불어민주당), 이명수(충남 아산 갑, 미래통합당) 국회의원의 입장을 듣고자 했다. 각 의원실로 수차례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민식이법을 발의한 두 의원의 공식 입장은 끝내 들을 수 없었다

이명수 의원실은 “민식이법과 관련한 언론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며 “현재 관련 법안에 대한 의견만을 청취하고 있는 상태”라고 밝혔다. 강훈식 의원실 또한 여러 차례의 접촉에도 “알아보겠다”는 답변만 내놨다.

최근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민식이법을 보는 두 의원의 주장은 엇갈린다. 강 의원은 법이 시행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만큼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이 의원은 논란의 소지가 있는 특가법 개정안을 오는 9월 발의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민식이법 개정안을 내놓은 강효상 전 의원(미래통합당) 측도 민식이법에 대한 논평에 난색을 표했다. 전 의원실 관계자는 “개정안을 발의한 건 맞지만, 임기가 끝난 만큼 더 이상 말할 사안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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