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완 칼럼] 폭스바겐 골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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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13 09:59
[이완 칼럼] 폭스바겐 골프에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걸까?
  • 독일 프랑크푸르트=이완 특파원 (pr@motorgrap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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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4.13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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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폭스바겐 브랜드를 대표하는 모델입니다. 유럽 해치백을 상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죠. 그런데 이런 골프와 관련해 요즘 좋지 않은 소식이 계속 전해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요?

폭스바겐 8세대 골프(사진=폭스바겐)

# 13년 만에 왕좌에서 내려오다

자동차 시장 분석업체 자토다이내믹스는 지난 2월 유럽 27개국의 자동차 판매 결과를 공개했습니다. 자료에 따르면, 모델별 판매량에서 폭스바겐 골프는 총 2만4735대가 팔려 2만4914대가 팔린 르노 클리오에게 1위 자리를 내줬습니다. 혹시나 해서 다른 통계 업체인 카세일즈베이스닷컴의 것도 확인해 봤더니 판매량에 미세한 차이는 있었으나, 골프가 2위로 내려앉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습니다.

※ 2월 유럽 자동차 판매량 TOP 3(자료=카세일즈베이스)

1위 : 르노 클리오 (2만4850대)
2위 : 폭스바겐 골프 (2만4625대)
3위 : 푸조 208 (1만9106대)

클리오의 경우 전년 같은 기간에 비해 대략 2% 정도 판매량이 줄어든 반면, 골프는 20%가 넘는 유례 없는 비율로 판매량이 감소했습니다. 이로써 2006년 11월부터 이어진 1위 자리 유지가 13년 3개월 만에 막을 내렸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유럽 시장을 지배하던 골프 전성시대도 이렇게 막을 내리게 되는 것일까요?

폭스바겐 골프(사진=폭스바겐)

# 밝힐 수 없는 문제에 발목 잡히다

신형 8세대 골프가 등장했을 때 유럽 반응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구매욕을 충분히 자극하고 만족감을 줄 것이라는 평가가 계속 나왔죠. 골프는 역시 골프라는 말이 돌면서 추격자들과 거리를 더 둘 것이라는 예상이 있었습니다. 폭스바겐 측은 2020년 일단 13만대 정도가 만들어져 팔려나갈 것이라고 수요를 예측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도로에서 신형 골프 구경이 쉽지 않았습니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거 아니냐는 얘기가 돌았죠. 그때쯤 골프가 전자 장비 소프트웨어 문제로 판매가 늦어지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골프만이 아니었습니다. 소프트웨어 오류는 전기차 ID.3의 발목까지 잡았습니다. 이미 만들어진 ID.3는 언제 배송될지 기약 없이 대기 중이고, 단종될 것이라는 e-골프가 빈자리를 대신하고 있습니다. 

폭스바겐  ID.3(사진=폭스바겐)

# 1/8 수준 밖에 못 만들어…전자 장비 일부 빼고 순차적으로 출시할 계획

이처럼 골프 출고가 계속 지연되면서 폭스바겐이 난처해졌습니다. 만약 올해 안에 충돌테스트를 받지 못하면 내년부터는 강화된 테스트를 받아야 하고, 그러면 자칫 안전 평가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출고가 늦어질수록 그만큼 회사 재정도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배송이 늦어져 좋을 게 하나도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들의 대응은 어땠을까요? 현재까지 독일 언론의 보도를 종합하면 전자 장비 일부를 제외한 모델을 일단 내놓고, 그다음 오류가 모두 해결되면 원래 계획된 구성대로 생산을 이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경제지 한델스블라트는 신형 골프의 올해 생산은 1만대를 넘기는 정도가 될 것이라는 폭스바겐의 공식 입장을 전했습니다. 1만대는 수정된 계획의 1/8 수준입니다. 한마디로 일단 급한 불부터 끄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준비 안 된 폭스바겐의 갈팡질팡 행보는 최근 보도들을 보면 그럴 만도 하겠다 싶습니다. 회사 내부 문서를 입수한 슈피겔은 골프 생산 지연은 단순히 어느 한 소프트웨어의 문제가 아닌, 여러 부분에서 발생한 다수 오류에 의한 것이며 오히려 2018년보다 현재 더 많은 오류가 발견되었다며 문제의 심각성을 전했습니다.

# 디지털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듯한 자동차 공룡 

슈피겔은 관련한 기사에서 이처럼 폭스바겐이 디지털화에 어려움을 겪는 이유로 디젤 게이트, 그리고 새로운 연비 측정법 WLTP 대응에 몰입하다 정보통신 분야를 소홀히 한 결과로 봤습니다. 한델스블라트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헤르베르트 디이스 회장의 발언을 소개하며 슈피겔과 같은 분석을 내놓았죠.

폭스바겐그룹 헤르베르트 디이스 회장(사진=폭스바겐)

소프트웨어 오류로 아우디 A8과 폭스바겐 투아렉 등의 출시가 1년 가까이 늦어진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으며, 골프와 미래 먹을거리로 여기는 전기차 ID.3, 그리고 이후 출시 예정인 또 다른 전기차들이 겪는 어려움도 이런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결국 골프 생산 지연은 결국 골프라는 차 하나의 지엽적 문제가 아닌,  전장 부분에 대한 더 많은 투자와 개선으로 해결해야 하는 회사 철학과 전략의 문제로 보여집니다.

이번 신형 골프는 유럽 자동차 중 처음으로 자동차와 자동차, 자동차와 교통 인프라 간의 정보를 교환하는 V2X 솔루션이 적용됐습니다. 그 얘기는 훨씬 정교하고 복잡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장착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시스템이 복잡할수록 오류가 발생할 확률도 높아집니다. 더 철저하게 준비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면, 당연히 지금과 같은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V2X 솔루션(사진=폭스바겐)

폭스바겐 문제를 보면서 자동차 업계 전반을 향해 자율주행 시대에 대한 준비는 정말 제대로 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단 한 번의 오류에도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 자율주행 시스템, 그밖의 안전 시스템입니다. 누구에게도 설익은 기술에 안전을 맡기라고 해선 안 됩니다. 폭스바겐은 물론이고, 업계 전체가 첨단 기술이 주는 장밋빛  밑그림에만 매혹돼 안전을 소홀히 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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