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MG] 당신이 마케터라면 시트로엥은 알아야죠
  • 박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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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28 09:00
[주말의 MG] 당신이 마케터라면 시트로엥은 알아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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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로엥의 창립자 앙드레 시트로엥

“차만 잘 만들면 뭐해. 광고를 잘해야지!”

1878년생 앙드레 시트로엥은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한 ‘괴짜’였다. 1919년 자동차 회사를 설립한 그는 당시 시장의 선두주자였던 르노와 푸조를 따라잡길 원했다. 그는 자신만의 실험적이고 과감한 홍보·마케팅 전략을 쓰기로 결심한다.

100여년 전, 앙드레 시트로엥의 행보는 현대인의 시각으로도 흥미롭다. 1920년대 프랑스 도로 표지판은 광고 부착이 가능했는데, 시트로엥은 1921년 프랑스를 포함해 자국 식민지의 모든 도로 표지판에 브랜드 엠블럼을 삽입했다. 1922년에는 파리 상공에 비행운으로 시트로엥을 새겨넣기도 했다. 지금은 일반화된 전국 순회 전시나 시승 모객 행사, 자동차 전문 금융 상품, 사후 서비스 등도 경쟁자들보다 앞서 도입하고 알렸다.

지금의 바이럴 마케팅이라 불릴 입소문 전략도 펼쳤다. 르노가 장악하고 있던 프랑스 택시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1000대의 노란색 시트로엥 택시를 전격 투입했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에펠탑에 옥외광고를 집행했다. 당장의 수익 창출에 앞서 ‘노란 택시’와 ‘에펠탑에 광고하는 회사’란 이미지를 유럽 내 소비자에게 각인시켰다.

이 같은 혁신적인 홍보·마케팅 전략을 바탕으로, 시트로엥은 1932년 프랑스 1위 자동차 업체로 발돋움한다. 앙드레 시트로엥의 공격적인 전략이 주효했다. 그의 톡톡 튀는 아이디어는 이내 르노와 푸조의 벤치마킹 대상이 됐다.

유명인(celebrity)을 지칭하는 셀럽(celeb)을 통한 마케팅도 시트로엥이 최초였다. 대서양 횡단 비행에 처음으로 성공한 파일럿 찰스 린드버그를 비롯해 영화배우 조세핀 베이커, 입체파 화가 파블로 피카소 등이 시트로엥과 함께 했다.

특히, 피카소는 시트로엥의 인지도를 끌어올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시트로엥은 21세기 첫 신차를 ‘엑사라 피카소(Xsara Picasso)’로 명명했으며, 이는 최근까지 ‘C4 피카소’라는 이름으로 이어졌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시트로엥은 ‘광고로 뜬 회사’다. 하지만, 과감한 마케팅의 배경에는 탄탄한 제품력이 뒷받침됐다. 당시 시트로엥은 유럽 최초로 포드의 컨베이어벨트식 대량생산체제를 도입했다. 강철로 제작된 모노코크 바디와 전륜구동 시스템 등 자동차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술 혁신도 이뤘냈다.

제품 및 기술에 대한 자신감과 독창적인 마케팅 능력은 1922년부터 1934년까지 총 네번에 걸쳐 진행된 위대한 도전 ‘하트-오두앙뒤브레이유(Haart-Audoin-Dubreuil)’로 이어진다. 

최초의 원정은 1922년부터 1923년까지 진행된 세계 최초의 사하라 사막 횡단이다. 1.4리터 직렬4기통 가솔린 엔진과 3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시트로엥 B2,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한 무한궤도차 B2 하프트랙을 몰고 사하라 사막 횡단에 성공한다.

시트로엥은 이듬해 다시 원정대를 꾸렸고, 알제리에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을 잇는 2만km 원정에 또 한 번 성공한다. 이것 역시 세계 최초의 아프리카 횡단 기록이다. 1931년에는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중국 베이징을 잇는 1만3000km 원정에서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등반에 성공했고, 1934년에는 록키산맥의 2400km를 자동차로 주파했다.

시트로엥의 도전은 자연스레 대서특필됐고,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도전이 끝난 후, 미국 국방부는 시트로엥의 무한궤도 기술을 구입해가기도 했다. 대외적으로 기술력을 과시하면서 브랜드를 잘 알리는데에 성공한 일석이조의 사례였던 셈이다.

프랑스 정부는 1931년 앙드레 시트로엥의 이 같은 업적을 기려 레지옹 도뇌르 2급 훈장을 수여했다. 그의 도전정신과 창조적인 혁신이 프랑스의 문명은 물론, 세계 발전에 기여 했다는 평가다. 그는 1935년 위암으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다양한 혁신을 위해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시트로엥의 이 같은 과감한 시도로 인해 경영난을 겪기도 했다. 앙드레 시트로엥이 사망하기 1년 전인 1934년에 시트로엥은 파산했고 미쉐린에 인수된다. 미쉐린 산하의 시트로엥은 미국 시장에 진출하고 피아트 등과 파트너십도 체결했다. 그러나 1970년대 다시 자금난에 빠졌고, 1976년 프랑스 정부 주도 아래 푸조에 합병됐다.

시트로엥은 PSA 내에서도 여전히 창의적이고 독특한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시트로엥 DS를 계승한 프리미엄브랜드 DS 오토모빌을 독립 브랜드로 론칭하기도 했다. 앙드레 시트로엥이 구축한 브랜드 명성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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