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형 SUV 시장의 역사(1)…트랙스가 낳고, QM3가 키우고, 티볼리가 먹었다
  • 전승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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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03.09 09:31
국내 소형 SUV 시장의 역사(1)…트랙스가 낳고, QM3가 키우고, 티볼리가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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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이었습니다. 르노삼성이 자존심을 굽히고 XM3를 소형 SUV, 즉 B세그먼트 SUV 시장에 구겨 넣었습니다. 투싼과 스포티지가 아니라, 티볼리와 셀토스 등과 경쟁하겠다는 것인데요. 

르노삼성 XM3

이로써 국내 소형 SUV 시장은 무려 9종의 모델이 한데 모인 엄청난 곳이 됐습니다. 경차부터 대형 SUV까지, 이렇게 많은 차종이 경쟁하는 세그먼트를 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것도 한 브랜드에서 서로 다른 2종의 라인업을 내놓을 정도로요. 

몰라보게 커진 국내 소형 SUV에 대해 조금 더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 국내 소형 SUV 시장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해봤습니다. 이 차들이 왜 자꾸 나오는지, 얼마나 많이 팔렸는지, 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무엇인지, 소비자들은 왜 준중형 SUV가 아니라 소형 SUV를 사는지 등을 생각하면서 읽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일단 소형 SUV.. 아, 잠깐만요. 원래 저는 초소형 SUV, 또는 B세그먼트 SUV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투싼과 스포티지가 소형 SUV로 불리던 시기였거든요. 그런데 이게 워낙 많아지더니 어느 순간 투싼과 스포티지는 준중형 SUV로, 그 밑에 아이들은 소형 SUV로 신분 상승을 했더라고요. 

아무튼 이렇게 많은 B세그먼트 SUV가 나온 이유는 너무도 간단합니다. 제조사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만들어 팔아야 하는데, 세단은 이미 꽉 차 있었거든요. 일반 세단뿐 아니라 쿠페니, 해치백이니, 왜건이니, GT니, 쿠페형 세단이니 엄청 많았죠. 그래서 SUV로 눈을 돌린 겁니다. 물론 당시에도 X6 같은 쿠페형 SUV가 있긴 했지만, 이들처럼 크고 고급스러운 모델들은 판매량이 적죠. 그래서 아예 새로운 세그먼트를 만들고자 C세그먼트보다 작은 B세그먼트 SUV를 추가한 것입니다.

소형 SUV의 파괴력은 대단했습니다. 경차는 물론이고 소형차와 준중형급 세단, 형님뻘인 준중형 SUV 영역까지 침범하며 엔트리급 세그먼트를 완전히 점령해 버렸습니다. 한 달에 팔 수 있는 자동차는 한정적인데, 갑자기 튀어나온 소형 SUV가 월 1만7000대씩이나 팔려버리니 주변 세그먼트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시작은 쉐보레였습니다. 한국GM은 2013년 2월 트랙스를 출시하고 초소형 SUV 시장에 가장 먼저 진출했죠. 소형차인 아베오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모델로, 다부진 차체에 140마력, 20.4kg·m을 내는 1.4리터급 4기통 가솔린 터보 엔진이 탑재돼 젊은 소비자들에게 큰 인기를 모을 것으로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러나 소비자들의 반응은 냉담했습니다.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다는 의견이 많았고, 연비 좋은 디젤 모델이 없었기 때문이죠. 

출시 당시 트랙스의 가격은 1940~2289만원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비싼 가격은 아니죠. 그러나 출시 전 일선 대리점과 커뮤니티 등을 통해 1700~2000만원으로 나온다고 알려졌는데, 막상 나와보니 실제보다 240~289만원가량 높은 것이죠. 아무리 SUV 라지만, 세단보다 비싸봤자 2~300만원 수준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4~500만원으로 늘어난 겁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요. 

한국GM도 무척 억울해했습니다. 트랙스 가격에 대해 회사 측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는데, 왜 그런 가격대로 보도됐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디젤 모델의 부재도 아쉬운 점이었죠. 당시는 누가 뭐래도 ‘SUV=디젤’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때였거든요. 아무리 작아도 SUV인데, 높은 토크로 치고 나가는 맛이 없고, 무엇보다 연비가 좋지 않다는게 소비자들의 의견이었습니다. 

물론, 트랙스는 실제 사용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차로 꾸준히 인기를 모으고 있지만,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기에는 시간이 조금 부족했습니다. 엄청난 경쟁자들이 뒤에서 줄줄이 기다리고 있었거든요. 결국 트랙스는 가장 먼저 나왔음에도 시장을 키우지도 못하고, 선점 효과도 누리지 못했습니다. 쉐보레 입장에서는 뼈아픈 실책이라 생각됩니다. 

트랙스의 잔잔한 활약과 달리 다음에 나온 르노삼성 QM3는 나름의 활약을 보였습니다. 트랙스보다 10개월 뒤인 2013년 12월에 나왔는데요. 트랙스의 투박한 디자인과 달리 여성들에게 인기 있는 둥글둥글 매끈한 디자인을 갖췄고요. 무엇보다 트랙스가 채워주지 못했던 '디젤 갈증'을 단숨에 해결해줬습니다.

출시 당시 가격은  2250~2450만원으로, 트랙스보다 200~300만원 비쌌지만, 연비가 좋았습니다. 겨우 90마력과 22.5kg·m의 토크를 내는 디젤 엔진이 탑재됐지만, 여기에 독일 게트락사의 듀얼클러치변속기(DCT)가 조합돼 출시 당시 리터당 18.5km에 달하는 우수한 연비를 갖췄습니다. 

르노삼성도 똑똑했습니다. 국산차냐 수입차냐 이중국적 논란을 잘 이용했거든요. 스페인에서 전량 수입되는 수입차라는 점이 약점일 수 있지만, 젊은 소비자들에게 ‘가장 싸게 살 수 있는 수입차’라고 어필했고요. 수입되는 물량 시점을 조절해 1차 물량인 1000대를 한정판으로 잘 꾸며 7분 만에 매진시키는 등 전략적인 판매를 통해 인기몰이에 성공했습니다.   

실제로 QM3는 출시 다음 해인 2014년에도 없어서 못 파는 차였습니다. 초기 물량인 1000대 이후에도 스페인 공장에서 들어오는 족족 모두 팔렸거든요. 덕분에 월별 판매량은 들쭉날쭉했지만, 그래도 르노삼성은 행복한 비명을 지를 수 있었습니다. QM3는 소비자들이 '소형 SUV도 살 만한 차'라는 인식을 갖는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그러나 QM3의 인기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수입되는 모델이라는 점은 시간이 지날수록 단점이 되어버렸습니다. 안정적인 물량을 확보하기 어려운 데다가, 워낙 단조로운 라인업을 갖추다 보니 소비자들의 다양한 니즈를 충족시키는데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죠. 

트랙스와 QM3의 시행착오는 2015년 1월에 나온 쌍용차 티볼리에게 큰 교훈이 됐습니다. 출시 전, 출시, 출시 후 등 시기에 맞는 적절한 마케팅 및 라인업 추가를 통해 티볼리의 인기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트랙스와 QM3보다 늦게 나왔음에도 ‘B세그먼트 SUV=티볼리'라는 말이 생겼죠. ‘티볼리급 SUV’라고요. 트랙스가 만들고 QM3가 키웠지만, 결국은 티볼리가 먹은 그런 형국이 된 것이죠.  

티볼리의 성공 요인 중 하나는 다양한 라인업으로 볼 수 있습니다. 파워트레인에서는 가솔린과 디젤, 변속기에서는 수동과 자동, 구동 방식에서는 전륜과 사륜, 차체에서는 일반과 롱휠베이스 등 빈틈이 하나도 없는 그물망 라인업을 통해 소비자들을 사로잡았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지만, ‘1600만원대에서 시작하는 저렴한 SUV’라는 마케팅도 주효했습니다. 출시 당시 티볼리의 가격은 1635만원부터였는데요. 이는 거의 팔지 않는(살 수 없는) 수동변속기 모델의 가격이었습니다. 자동변속기를 선택하면 여기서 160만원이 추가되는데, 쌍용차에서는 굳이 이것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죠. 뭐, 쌍용차는 지금도 이 정책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사실 티볼리가 잘 팔리는 가장 큰 이유는 디자인입니다. 여성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거든요. 잘 이해는 되지 않지만, 여성들에게 물어보면 티볼리 예쁘다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습니다. 출시 이후 몇년 동안 여성 자동차 검색 1위를 유지하기도 했고요. 실제로도 전체 판매량 중 여성 비율도 50%가 훌쩍 넘는다고 합니다. 

덕분에 티볼리는 롱바디 모델인 에어를 포함해 오랫동안 월평균 4~5000대를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트랙스가 디젤을 추가하고, QM3가 다양한 상품성 개선 버전을 내놔도 전혀 흔들림 없이 압도적 1위 자리를 지켜냈죠. 아... 물론, 이는 현대차와 기아차가 이 시장에 관심을 갖기 전까지만 해당하는 이야기입니다. 

현대기아차가 B세그먼트 시장에 진출한 이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편에서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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