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칼럼] 르노삼성 사태로 살펴본 파업과 조정 절차
  • 김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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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12.31 15:08
[김민석칼럼] 르노삼성 사태로 살펴본 파업과 조정 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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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르노삼성 노조가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노사 양측은 협상 테이블에서 접점을 찾지 못했고,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거쳤습니다. 하지만 사측에서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절차를 거쳐야 하므로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이뤄진 조정의 관할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나섰습니다. 사측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조정 절차를 다시금 진행할 것을 요구하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황입니다.

조정 절차를 부산지방노동위원회에서 하는 것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하는 것에는 별다른 차이가 없습니다. 중앙노동위원회의 조정이 지방노동위원회와 구분되는 다른 권한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조정 사건에 참여하는 공익위원들의 면면은 다르지만, 노동위원회 사건에서 노사가 임의로 자신들이 원하는 위원들을 참여시키는 것도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사측은 왜 굳이 행정소송을 제기했을까요? 행정소송에서 사측이 승소하게 되면, 노조가 파업을 할 수 없을까요?

# 조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고 파업을 하면, 무조건 불법 파업인가?

노사 당사자들은 ‘파업의 정당성’에 상당히 민감합니다. 파업의 정당성이 부정되면, 거액의 손해배상을 부담할 수 있고, 업무방해죄로 조합 간부들이 구속될 수도 있습니다. 노조법에는 조정전치주의를 도입하고 있고 법령에도 파업 전 반드시 조정을 거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니, 조정 절차 준수 여부가 파업의 정당성과 직결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의외로 조정을 거치지 않았다고 하여 무조건 파업 자체가 불법인 것은 아닙니다.

조정전치 규정의 취지가 분쟁을 사전에 조정하여 쟁의행위 발생을 회피하려는 데 있지 쟁의행위 자체를 금지하려는 것이 아니므로, 대법원에서는 “그 위반행위로 말미암아 국민생활의 안정이나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예기치 않는 혼란이나 손해를 끼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지의 여부 등 구체적 사정을 살펴서 그 정당성 유무를 가려야 할 것이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 파업이 조정의 전치를 제외한 다른 요건들을 제대로 갖췄다면, 조정을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반드시 불법인 것은 아닙니다. 그로 인하여 국민생활의 안정이나 사용자의 사업운영에 예기치 않는 혼란이나 손해를 끼치는 것과 같은 부당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에 한하여 불법 파업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판례의 태도를 미뤄 볼 때, 사측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더라도 파업 자체가 이로 인하여 불법이 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입니다. 조정 전치 자체의 노조법 위반 여부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말입니다.

# 르노삼성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한 결과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원은 조정을 거치지 않은 경우에도 반드시 파업이 불법이라 간주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고용노동부의 입장은 미묘하게 다릅니다. 고용노동부는 조정절차를 거치지 않은 파업은 일단 정당성이 없다는 일관된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조정 절차가 적법하게 종료되지 않은 상태로 노조가 파업한 경우 사측은 관할 고용노동청에 불법 파업에 대한 행정적인 조치를 요청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노조법 위반으로 노조를 고소·고발을 할 수 있게 됩니다. 만약 사측이 행정소송에서 승소하거나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는 경우, 노조원들의 사기가 저하되고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투쟁의 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습니다.

사측의 행정소송은 승소 여부를 별론으로 하더라도 제소 그 자체로 ‘정당한 쟁의권을 획득했다’는 노조원들의 인식을 저해할 수 있으며,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신호를 주어 파업으로 돌입하는 시점을 심리적으로 지연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특히나 이번 르노삼성 노조의 파업 찬성률이 2010년 이후 역대 최저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전술은 더욱 치명적으로 노조의 예기(銳氣)를 꺾을 수단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 조정제도의 실효성 확보와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

파업은 노사 당사자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매우 큰 비용을 발생시킵니다. 노조법상 조정제도는 이러한 점을 고려해 노사가 파국으로 치닫기 직전에 국가나 제3자의 조정 및 중재를 통해 분쟁을 조기에 종결시켜 사회적 비용의 낭비를 막고자 하는 취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완성차 업계는 대규모의 장치산업에 해당하는 바, 노사갈등으로 우리 경제에 초래하는 비용이 상당하므로, 조정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아울러 우리 자동차산업의 주요 경쟁력 저해 요인으로 불안정한 노사관계가 항상 지목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의 조정제도는 실효성있게 노사당사자 간 갈등 해소 창구로 기능하기보다, 이른바 쟁의권을 얻기 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이번 사측의 행정소송으로 인해 조정제도가 노조의 단결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조정제도가 실효성있는 제도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노사관계 당사자들의 조정제도를 대하는 인식의 변화가 절실하게 요구된다고 할 것입니다. 공적영역에서의 경직적인 조정 뿐만 아니라 보다 실효성있고 창의적인 조정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적조정제도를 적극 활용하는 등 기존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조정은 노사관계가 파업까지 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안전장치이므로, 조정제도의 내실화는 포기할 수 없는 숙제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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