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같은 차가 맞나 싶다
개인 업무상 시승차를 종종 타는 편입니다. 제게는 업무의 일환이기 때문에 시승하는 동안 최대한 그 차를 다양한 상황에서 경험해보려 노력합니다. 도로 정체가 극심한 출퇴근 시간에 시내를 지나거나 길이 뻥 뚫린 고속도로에서 마음껏 달려보며 일정에 따라 주행 패턴을 다채롭게 가져가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게 마음 먹은 것과 달리 잘 안될 때도 있습니다. 자동차의 콘셉트가 너무나 명확하고, 그로 인한 만족감이 하늘을 찌를 경우 이 루틴을 잊게 되죠. 그 특성에 심취할 경우 이성의 끈조차 내려놓게 됩니다. 물론 이런 경우는 정말 손에 꼽힙니다. 그만큼 강렬하고, 재미가 있어야만 실현 가능한 일이까요.
시승 당시 한동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빠져들었고, 시승 이후 오랫동안 생생하게 남아있는 차를 떠올려 봤습니다. BMW M2(F87)나 메르세데스-벤츠 AMG C63(W205), 쉐보레 카마로 SS 정도가 기억에 남습니다. 차고 넘치는 힘, 뛰어난 기술력을 바탕으로 완성된 주행성능이 인상적인 차들입니다. 운전을 즐기는 자동차 마니아라면 이 차들의 명성을 한 번쯤 접해 보셨을 겁니다. 물론 이보다 더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차들도 타봤지만, 앞서 언급한 차들을 탔을 때처럼 크게 와 닿진 않더군요.
다소 의외라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제게는 벨로스터 N도 그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이 차에 빠져든 사유가 앞서 언급한 차들과는 달랐습니다. 부족하지 않은 출력, 스포츠성을 강조하여 완성된 다양한 전자장비, 뛰어난 밸런스를 바탕으로 ‘누구나 쉽게 다룰 수 있다’ 는 이점이 절 강하게 흔들었습니다. 운전하는 즐거움도 크지만, 속도도 상당히 빨랐습니다. 그 결과, 시승차를 타는 내내 정말 원 없이 내달렸습니다. 주유소를 자주 가는 일조차 즐거움으로 받아들일 정도였지요.
차량 구매 이후, 당시 느낀 감동이 조금씩 잦아들며 벨로스터 N의 평범한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연애하던 때와 결혼 후 전혀 다른 모습을 보는 것처럼요. 주행거리가 누적됨에 따라 실연비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감을 잡을 수 있게 됐습니다. 시승차를 타는 동안 평균연비는 7km/l대에 줄곧 머물렀지만, 실제 소유 후 확인한 평균연비는 분명한 차이를 보였습니다. 다만 생각 이상으로 작정하고 밟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의 평균연비 차이가 너무나도 달라 놀랐습니다.
실연비를 확인하기에 앞서 공인연비를 살펴봤습니다. 벨로스터 N 공인연비는 2가지로 퍼포먼스 패키지 적용 여부에 따라 달라집니다. 퍼포먼스 패키지가 적용된 벨로스터 N 공인연비는 복합 10.5km/l(도심 9.5km/l, 고속도로 11.9km/l). 반면 퍼포먼스 패키지가 빠질 경우 각 수치가 0.2km/l씩 올라갑니다. 엔진 성능이 25마력 더 낮고, 공차중량은 30kg 더 가벼우며, 19인치 휠 & 타이어 대신 18인치 휠 & 타이어가 장착된 것에 비하면 생각보다 공인연비 차이는 그리 크진 않습니다.
직접 소유하며 확인한 실연비는 다음과 같습니다. 주행 모드는 모두 N 커스텀으로 당시 처한 주행 상황에 맞게 운전했음을 알립니다.
먼저 최고 평균연비는 13.3km/l입니다. 가장 조심스레 손발을 맞췄던 때지요. 신차 출고 직후, 울산에서 서울까지 고속으로 항속한 결과물입니다. 다만 100% 연비운전에 집중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평균연비를 최적으로 뽑아낼 수 있는 속도보다 더 높은 속도로 달렸고, 서울 도착 직후 퇴근 시간과 예보에 없었던 우박이 내리며 정말 극심한 정체에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당시 서울 삼성동에서 신월동까지 가는데 1시간 반이 걸렸습니다. 사실 서울에 도착할 때 평균연비는 15km/l 초반이었습니다.
반면 최저 평균연비는 1.7km/l입니다. 솔직히 글을 쓰는 지금도 이게 말이 되나 싶긴 합니다. 확실한 건 운전 스타일에 따른 평균연비 차이가 흡사 작전주의 폭락 수치를 숙연하게 만들 정도로 크다는 데 있습니다. 제 차로 처음 서킷을 들어가서 확인한 결과물입니다. 당시 ‘이번 랩은 흐름이 좋아’라는 말도 안 되는 희망 때문에 기름 잔량을 고려하지 않고 정말 시종일관 달렸었죠. 참고로, 쿨링과 어택을 병행하는 벨로스터 N의 서킷 주행 평균연비는 3km/l대입니다. 제가 미친 건지 제 차가 미친 건지 모르겠네요.
참고로 제 벨로스터 N은 출고 이후 모든 내용을 마카롱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별도 엑셀 파일에 일일이 기록했었으나 확실히 그 방법보단 덜 번거로워서 좋습니다. 다만 마카롱의 경우 주유 기록 저장 시 부분 주유가 아닌 가득 주유를 선택해야만 정확한 평균연비 계산이 가능합니다. 유종, 주행거리, 주유량 등을 기록하기 때문에 실제 수치와 큰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데이터를 기록하기 시작한 3월만 해도 매번 실제 수치와 비교를 했었지만 그 오차가 0.5km/l 안에 머무는 것을 보고 그 다음달부터 별도 계산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사실 차계부를 작성한다는 것 자체가 부담이자 번거로움일 수 있습니다. 저도 그랬거든요. 그런데 저처럼 1~2년을 주기로 꾸준히 차를 바꾸는 입장에서는 이런 데이터가 정말 값지게 다가오더군요. 사실 내 차라는 이유로 사진도 잘 안 찍고, 금방 무심해질 경우 정말 차를 타고 다니는 데 급급해집니다. 여러 사유로 차량을 매각한 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추억을 곱씹을 만한 자료가 턱없이 부족함을 느끼게 됩니다. 전 그로 인한 후회가 커서 시작하게 됐는데, 자료 적립과 차량의 시기적절한 관리를 할 수 있어 지금은 차계부 작성을 주위에 두루 권하는 편입니다.
잠시 이야기가 다른 쪽으로 샜네요. 다시 실연비 이야기로 돌아와 보죠. 앞서 제가 달성한 최저, 최고 연비 기록은 절대로 ‘최상의 수치’ 가 아닙니다. 한쪽의 수치(최저)는 당당히 자랑할 만하나 다른 한쪽의 수치(최고)는 일반적이다고 보기 힘들거든요. 실제 벨로스터 N 동호회에서 신적인 발 컨트롤을 활용해 실연비 18km/l대를 기록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인내심과 끈기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전 절대로 못 하거든요.
그간 소유하며 느낀 벨로스터 N의 실연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공유해봅니다. 크게 두 가지인데요. 첫째, N & N 커스텀 모드를 포기해야 합니다. N 모드 설정 시 엔진 회전수는 일반 주행 모드 대비 정확히 150rpm 더 올라갑니다. 그 차이가 엄청 큽니다. 둘째, 크루즈 컨트롤을 적극적으로 써야 합니다. 같은 상황에서 확실히 액셀 페달 조작양이 운전자 조작 대비 현저히 낮습니다. 결과적으로 덜 밟고, 더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이처럼 실연비를 높이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지만, 직접 실천하는 편은 아닙니다. 뻥 뚫린 도로나 터널만 보면 가속을 안 할 수 없더군요. 그 결과, 평균연비는 8km/l대를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실 연비를 중요하게 생각했으면 벨로스터 N을 사지 않았겠죠. 유류비가 매력적인 차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N 모드 키고 액셀 페달 밟는 맛에 벨로스터 N 산 거지!’를 속으로 되뇌며, 오늘도 낮은 실연비를 합리화하며 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