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rin 칼럼] 일본에 늘어나고 있는 슬픈 차중박
  • 김준선
  • 좋아요 0
  • 승인 2019.10.29 09:30
[Erin 칼럼] 일본에 늘어나고 있는 슬픈 차중박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중박’은 우리나라에서도 유행 중인 자동차의 새로운 이용패턴입니다. 자동차를 일종의 캠핑카처럼 쓰면서 어디에서든지 머무는 여가방식이죠. 캠핑카와 같은 으리으리함이 아니라, 작은 차와 저렴한 장비로도 숙박을 할 수 있도록 꾸밉니다. 대중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는 이유죠. 이에 따라 차중박 아이템이 인기를 얻고, 차중박 이미지를 얻은 몇몇 차종의 판매가 뛰기도 합니다.

단어의 이질감에서 알 수 있듯 ‘차중박’이란 일본에서 건너온 단어입니다. 수레 ‘차’, 가운데 ‘중’, 머무를 ‘박’, 즉 자동차 안에서 잠을 자며 머문다는 뜻이죠. 자동차를 이용한 여가문화가 우리보다 앞선 나라이기 때문에 차중박 붐도 먼저 겪었습니다. 특히 SUV나 왜건뿐 아니라, 누구나 타는 경차에서 밥 해먹고 잠잘 수 있게 해주는 아이템들이 인기를 끌며 차중박 붐을 모두에게 넓혀나갔습니다.

그랬던 일본에서 최근 차중박 단어가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시 등장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여가나 낭만과 관련된 얘기가 아니라, 절박하고 힘든 사람들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된 것입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파산이나 해고 등으로 사회에서 내쳐진 사람들이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주택생활을 포기하고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자동차에서 생활하게 된다는 것. 20년간 이어진 불황으로 인해 소득의 양극화가 극심한 일본에서 사회적 보호망 밖으로 내몰리는 사람들이 매우 많은 것은 어제오늘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러나 낭만적 개념이었던 차중박이 집 없이 떠도는 극빈곤층 이야기로 회자되자 일본사회도 충격을 받은 듯 합니다.

일본은 전세개념이 없기 때문에 집을 구입하지 않는 이상 평생 월세를 지불하며 살아야 합니다. 고용형태에서 우리보다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단기 계약직 근무자들로서는 거액의 대출을 받아 집을 구매하기 쉽지 않죠. 이렇게 불안한 고용형태를 전전하며 살아온 근로자들이 나이를 먹고 계약해지라도 당하면, 다른 일거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월세를 지불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집 없이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에게 자신의 마지막 남은 재산인 자동차가 이동수단뿐 아니라 주거수단으로도 사용되는 것이지요.

이런 이들이 적지 않았나 봅니다. 사회적 이슈일 만큼 하나의 현상이 되었고, 이들을 지칭하는 ‘차중박 난민’이라는 단어까지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일본에도 이들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습니다. 전국의 무료 주차장을 찾아 떠돌이생활을 하기 때문에 소재나 규모를 파악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만큼 다음 일자리를 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지역을 가리지 않고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다 보니, 집 없는 떠돌이생활이 되는 것이지요. 지역의 각종 지원단체에서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 위해 그들과 접촉하려 해도, 당장 아르바이트자리가 구해지면 다른 지역으로 떠나기 때문에 교류가 이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몇 가지 특징은 있습니다. 혼자 살고 있는 50대 이상 중년층 중, 마련해 놓은 집이 없고 단기계약 근무를 이어온 사람들이 차중박 난민으로 유입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주차비를 지불할 수 없기 때문에 주로 국립공원 등의 무료주차장에 차를 세웁니다. 공원의 화장실과 수도를 이용하기 위함이기도 하고요.

인터뷰에 응한 어떤 남성은 한달 수입의 대부분이 편의점 음식과 기름값에 들어간다며, 기름값을 아끼기 위해 너무 더울 때나 추울 때에는 공중화장실에 이불을 펴고 자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편한 차중박을 위한 아이템이 시중에 많다는 것입니다. 원래였다면 즐거운 여가를 위해 사용했어야 할 신나는 소품들이지만, 어쩌면 차중박 난민에게 더 절실한 물건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 차중박에 난민이란 단어를 붙여 전혀 다른 느낌으로 사용하는 것을 보니 어딘가가 써늘합니다. 황당하지만 그리 멀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평생토록 불안한 고용형태를 전전하는 사람도, 집 한 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도, 자산이라고는 낡은 자동차 한 대뿐인 사람도, 우리에게 전혀 낯설지 않기 때문입니다.

차중박이라는 단어가 건너와 우리나라에 즐거운 붐을 일으켰지만, 차중박 난민이라는 단어까지는 넘어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거 너무 선택적 희망사항 일까요?


관련기사